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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덕적 정당화의 이론

VI. 가치와 도덕적 이유

16. 두 가지 근본적 이론(two radical theories)



16.1 정통적인 견해

1부에서 나는 가치 평가, 가치판단과 행위 이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섯 가지 기본적 주장을 옹호했다. 즉,


(i) 매우 적은 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X를 가치평가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가치 평가한다는 것은 행위 이유를 가진다는 것을 함축한다.
(ii) X를 합당하게 가치 평가한다는 것은 가치 평가에 특징적인 방식으로 다른 것들 혹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행위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
(iii) 합당하게 X보다 Y를 더 가치 평가하는 사람은 X를 증진하고,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하여 Y를 증진하고 보호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을 그만둘 이유를 가지고 있다.
(iv) 합당한 비개인적인 가치 판단은, 적절한 가치를 파악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고 결론내릴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행위 이유를 제공한다.
(v) 다른 사람이 X를 올바르게 가치 평가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혹은 그를 위해서 X를 증진하고 보호하거나 X를 안전하게 할 이유를 가진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함축하지 않는다.


이제 (i)-(v) 가 가치와 행위 이유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위 이유의 요약인지에 관한 문제가 일어난다. 만일 우리가 내가 가치와 이유들에 관한 정통이론이라고 부르는 견해를 채택한다면 (i)-(v)는 모든 행위 이유의 요약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견해에 따르면 모든 행위 이유는 가치 평가되는 것이나 가치있는 것의 증진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Rashdall은 사유(reasoning)는 이런 방식에서 결과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현대 철학자들은 모든 실천적 합리성은 가치고려들과 동일하거나 거기서부터 도출된다는 데 동의한다. 정통적인 견해의 핵심은 아래와 같이 파악된다.

(i) 엘프는 x를 하는 것 자체가 그에 의하여 합당하게 가치 평가되거나 그의 합당한 가치들을 증진할 때 바로 그 때에만 x를 할 이유를 갖는다.
(ii) x하는 것과 y를 하는 것 사이의 선택이 주어진다면 엘프는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x를 하는 것이 그의 합당한 가치를 더 잘 증진시킬 때 바로 그 때에만 y보다 x를 할 좋은 이유를 갖는다.

나는 이미 정통적인 견해의 한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즉 가치 평가된 것을 증진하는 것이 가치 평가에 대한 유일하게 적절한 반응이 아니다.

어떤 그럴듯한 가치이론에서도 (i)로부터 (ii)가 쉽게 따라 나온다는 것은 강조될 만하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충분히 합리적인 행위자를 가정해 보자. 엘프는 x와 y 사이의 선택에 직면하고 둘 다 엘프의 가치를 증진시키지만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x를 하는 것이 그의 가치를 더 증진시킨다. 그러나 (ii)를 부정해 보자. 즉 엘프는 x보다 y를 할 좀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부터 이러한 이유가 도출되는가? 비교 가치 평가로부터는 도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가설로부터 x가 그의 가치를 더 잘 증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비가치적인 이유가 고려된 듯하고 그것은 (i)에 위배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통적인 견해의 좀더 약한 해석을 옹호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어떤 행위 이유도 가치 고려를 포함해야만 한다. 그러나 또한 비가치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도 있다. 즉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비록 x를 좀더 가치 평가할지라도 x보다 y를 할 이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행위가 자신의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것은 행위 이유를 갖는 것의 필요조건이지만 비가치적인 요소들도 이러한 이유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통적인 견해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i)이 주어졌을 때 (ii)를 부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두 가지 행위 중의 어떤 것이 자신의 가치들을 더 잘 증진하는가를 결정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을 선택할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 때에는 자신의 가치를 증진시칼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더 가치평가하는 것을 증진시킬 그 이상의 이유를 갖고 있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견해는 이론이 가치 이유에 관한 행위자-중립성 혹은 행위자-상대성을 승인할 것인가에 의존하여 윤리학과 정치철학에 어려운 함축을 갖는다. 가치와 이유에 관한 정통적인 견해와 가치 이유의 행위자 중립성 둘 다를 수용하는 이론들은 결과주의적 윤리학에 강하게 언질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ㄷ. 왜냐하면 모든 행위 이유가 가치의 증진에 관련되고 그러한 모든 이유들이 행위자-중립적이라면 우리가 항상 전반적인 가치를 증진시킬 도덕적 이유를 갖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통적인 견해와 행위자-중립성 둘 다 수용하는 사람들은 철저한 결과주의를 피하기 위하여 그것들에 관한 가정들을 완화시켜야만 한다. 그래서 Samuel Scheffler는 개인에게 자신의 선개념에 추가적인 비중을 주는 것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가치평가가 자신에게 가하는 요구를 삭감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행위자-중립성의 요구를 완화시킴에 의해 철저한 결과주의를 피하고자 한다. David Lyons같은 사람은 공정성같은 행위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치와 이유에 대한 정통적인 견해를 거부함에 의해 철저한 공리주의와 거리를 둔다.

그러나 우리는 행위자-중립성의 경우가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고 Sheffer의 문제를 공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즉 내가 옹호했던 가치 이유의 행위자-상대성에 대한 강한 해석은 각 개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로 귀결된다. 만일 우리가 가치 이유의 행위자-상대성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가치와 이유에 관한 정통적인 견해를 가정한다면 우리는 홉스의 자연상태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홉스는 최소한 자연상태에서는 가치 이유는 철저하게 행위자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우리가 가치 이유의 행위자-상대성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가치와 이유에 대한 정통적인 견해를 둘 다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연 상태의 무질서를 피할 수 있는가를 알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만일 나의 유일한 행위 이유가 내가 가치평가하는 것을 증진시키는 것이고 너의 유일한 행위 이유가 너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도덕적 혹은 정치적 원리들에 의해 합리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가를 알기가 어렵게 된다. 그것은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식이 제안되었는데 그 하나가 무질서보다 도덕이 낫다는 논변(the morality is better than anarchy)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각자가 어떻게 자신들의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규제를 하는 규칙들의 체계 하에서 생활하는 것이 각자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들에 순응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시키는 것이 나리 때 정통적인 견해의 범위 내에서 그러한 규칙들에의 순응의 합리성을 옹호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주목해 보라. 확실히 앨프의 목표는 무질서의 상태에서 보다 앨프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도덕원리들에 순응할 때 더 잘 증진된다. 그러나 이것은 기껏해야 앨프가 규칙들을 따르기 위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정통적인 견해의 (i)이 만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차라리 앨프에 관한 한 앨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규칙들을 따르고 그는 아무 제한없이 자신이ㅡ 가치를 추구하도록 놔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비순응이 순응보다 그의 가치를 더 잘 증진시킨다면 정통적인 견해는 순응이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비록 순응이 비순응보다 적은 범위에서 그의 가치를 증진시키기는 하지만 순응이 (자연상태와 비교해서) 그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비록 초코렛을 더 좋아하고,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바닐라 아이스크림보다 초코렛을 더 즐길지라도 초코렛보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선택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선택은 그의 선택이유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다. 도덕과 정치철학은 어떤 규칙과 원리들이 보편적인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것에 근거하여 비교가치의 문제에 대한 합당한 고려없이 이러한 규칙들과 원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의 많은 예들을 제공한다. 보편적인 가치가 어떤 원리에 의해 증진된다고 말하는 것은 순응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에 대한 강한 논변이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것이 보편적으로 가치평가된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높게 가치평가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순응의 문제 대한 두번째 해결책은 도덕에 관한 일반화된 가치평가 논변(the generalized valuing of morality argument)이다. 이 논변은 도덕감(moral sentiment)과 정의감 혹은 도덕적 행위의 가치평가에 의존한다. 우리가 인간의 사회성이 주어진다면 각자가 도덕적인 것을 가치평가하게 될 것이다와 같은 심리학적 법칙을 허용한다할지라도 확립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각자는 도덕적으로 행위할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통적인 견해의 (i)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좀 더 강한 것이 필요하다. 즉 그러한 행위 즉 도덕적 행위는 항상 혹은 최소한 전형적으로 어떤 대안적 행위보다도 더 가치평가된다는 것이 보여져야만 한다.

이 두 번째 논변의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도덕적으로 행위하고자 하는 동기를 이타주의적 감정(altruistic emotion)에 두는 해석이다. 이타주의적 감정에 대한 Lawrence A.Bluem의 설명은 그것이 감흥-인지 이론과 합리하기 때문에 특별히 흥미롭다. 그는 (i)우리가 감정을 경험함이 없이 감정에 적절한 모든 믿음들을 가질 수 있으며, (ii)감정은 기본적인 감흥적 차원을 가지고 있고 (iii)감정, 태도, 가치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iv)우리는 우리자신의 관심과 다른 사람들이 관심 사이에서 공명정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어떤 노력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결과적으로 Blume이 어떤 사람을 이타적이라고 기술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내가 다른 사람의 선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가치평가에 의해 행위하는 것으로 특징짓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Blume도 내가 고려하기를 원하는 완전한 보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칸트적인 원리 규제적 행위의 여지를 허용하면서 모든 도덕적 행위 이유를 이타주의에 근거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려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타주의가 합리적인 도덕적 행위의 유일하고 근본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많은 고려들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공리주의자들은 때때로 일반화된 자비감에 호소를 하지만 강한 이타주의적 느낌은 개인적 애착을 포함하고 결과적으로 본질적으로 비일반적이다. 그리고 연구결과들은 이타주의가 도덕적 규칙들을 위반함으로써 이익을 얻고자 하는 유혹에 저항하는 도덕적 속박과 그렇게 높은 관련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도덕적 동기에 관한 본질적으로 이타주의적인 이론들을 옹호함에 있어서 도덕적 사유의 측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남을 돕는 행위에 열심인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정의에 관해 사유하는 능력이 이타주의적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결코 정의에 관한 사유 혹은 도덕적 사유 일반이 그 자체로 이타주의적이란느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보고된 관련성은 정의에 관한 사유와 이타적 행위 모두 어떤 공통적인 인식적 성취를 전제한다는 가설과 부합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할 수 있는 인식능력은 정의나 도덕성에 관한 사유에 대한 Kohlberg의 분석에 기본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이러한 능력이 이타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있다. 따라서 정의에 관해 복잡한 사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타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까지 고찰한 두 논변은 순응의 문제(compliance problem)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도록 고안되었다. 순응의 문제는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이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시키지 않을 때 그렇게 해위하는 것이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잇는가의 문제이다. 가치와 행위 이유에 관한 정통적인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저어도 한 가지 의미에서 대답은 간단하다. 즉 그것은 합리적일 수가 없다. 가설로부터 모든 행위이유는 가치 이유이고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시키지 않는 도덕적 행위는 합리적일 수 없다. 그 때에는 정통적인 견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떤 다른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가치 이유에 대한 행위자-상대성을 수용한다면 그들의 노력은 도덕적 행위는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는 합리적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향해져야만 한다. 나는 이러한 시도를 조화의 문제(coordination problem)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삼는다고 기술할 것이다. 즉 가치이유는 행위자-상대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정통적인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은 도덕적 규칙과 원리에 따른 행위가 그들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시키기 위해 그들의 행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는 가치평가자들에게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줌에 의해 도덕적 행위의 합리성을 증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한 조화의 문제는 나의 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지만 정통적인 견해를 따라 행위자-상대성의 어떤 해석이 수요오딜 때에만 합리적인 것으로서의 도덕성의 옹호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떠 맡는다. 정통적인 견해와 보조를 맞추어 우리가 순응의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면 즉 도덕적으로 행위하는 것이 모든 것이 고려되었을 때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증진시키는 데 실패할 때에도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는가를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합리적인 도덕적 행위를 조화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에 언질하지 않을 것이다. 가치가 이유에 관한 정통적인 견해를 거부함에 의해 우리는 조화의 문제보다는 순응의 문제의 분석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영화로 읽는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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