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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shme-Pullyu 표상들

 

 

원저 : Edited by Larry May, Marilyn Friedman, and Andy Clark,

Mind and Morals, Essays on Cognitive Science and Ethics,

A Breadford Book The MIT Press(1995)

Cambridge, Massachusetts,

London, England.

제 8장

"Pushmi-pullyu 표상들"

Ruth Garrett Millikan

<이 글은 윤리학의 인지과학적 토대에 대한 글입니다.>


 

1. 개괄.

Anscombe 교수는 식료품의 목록은 무엇을 사야 할지를 나타내는 장보기 위한 목록으로 쓰일 수도 있고 혹은 무엇을 샀는지를 나타내는 재고품 목록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만약 장보기 위한 목록으로 사용된다면 세계가 그 표상(representation)에 일치해야 한다. 만약 그 목록이 식료품 가방 안에 있는 것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은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만약 재고품 목록으로 사용된다면 그 표상이 세계에 일치해야 한다. 만약 그 목록이 가방 안에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은 그 목록이다. 첫번째 종류의 표상과 같이 세계가 목록에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경우 그 표시는 지시적(directive) 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편 목록이 세계에 일치해야 한다고 가정하는 두번째 종류의 표상은 서술적(descriptive)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례(case)를 표현하거나 서술한다. 나는 동시에 이러한 두가지 (해석)방식을 나타내는 표상들이 있음을 제안하는 바이다. 나는 Doolittle 박사가 사용한 용례를 빌어서 그러한 표상들을 pushmi-pullyu 표상[PPR]들이라고 부르겠다.(그림 8.1)

PPR은 지시적 기능과 서술적 기능을 모두 갖고 있지만 그것들은 순수한 지시적 표상과 순수한 서술적 표상의 단순한 결합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둘 중 어느 것보다도 더 원초적(primitive)이다. 이러한 원초적인 표상들을 도입(employ)하기 위해 필요한 인지체계보다도 순수한 서술적 표상들과 순수한 지시적 표상들을 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지체계는 더 세련되어야 한다. 인지체계(cognitive systme)가 순수한 서술적 표상들을 사용할 수 있으려면 그 표상들은 실천적 추론(practical inference)의 과정을 통해 지시적인 표상들과 결합되어야 한다. 순수한 지시적 표상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서술적인 표상들과 결합되어야 한다. PPR을 도입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아마도 가장 명백한 PPR들은 새의 노래소리들, 토끼의 부딪힘, 그리고 벌의 춤과 같은, 여러가지 동물들이 같은 종의 동물에게 보내는 단순한 신호들이다. 하지만 PPR은 인간의 언어, 혹은 어쩌면 인간의 생각 속에서도 나타난다. 언어에서의 예를 들자면, “아니야, 쟈니, 우리는 완두콩을 손가락으로 집어먹지 않아.”와 모임의 회장이 말하는 “집회가 연기되겠습니다(The meeing is adjourned)”와 같은 것들이다. 아마 인간의 의도(intention)들도 생각 속의 PPR의 예가 될텐데, 그것들은 행위를 지시함과 동시에 그 사람의 미래를 서술하여 그것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 있게끔 한다. 우리가 수행할 사회적 역할들을, 우리가 그것을 수행하는 바와 같은 것으로서 이해하도록 해주는 우리의 내적 표상들도 아마 역시 PPR들이다. 우리가 “사람이 하는 것(what one does)”, “여자들이 하는 것(what woman do)”, “선생님이 하는 것(what teachers do)”와 같은 것들을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이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원초적인 생각의 방식들이 인간 사회들이 결합하도록 돕는 본질적인 결속매체(glue)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분야(Milikan 1984, 1993)에서 개발된 표상에 대한 일반 이론의 관점에서 PPR을 생각한다. 나는 시작에 앞서 그 이론을 조금 설명하도록 하겠다.

2. 표상에 대한 배경 이론(The Background Theory of Representation)

브렌따노는 지향성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하는(intend)” 마음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수년 전부터 그가 이 점에서 옳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표상에 대한 모든 이론의 핵심적인 내용에는 어떻게 잘못된 표상(misrepresentation)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나는 오기능(malfunction)이 무엇인지를 더욱 일반적으로 설명해 주는 기능 이론(theory of function) 속에서 지향성에 대한 이론을 구현해야만 잘못된 표상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언급된 바와 같이, 재생산(reproduce)된 개체(entity)의 형질(type)이 갖는 생존 가치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일반화한 기능개념을 사용한다. 나는 이러한 일반화된 종류의 기능을 “적절한 기능들(proper functions)”이라고 부르겠다.(millikan 1984, 1993)

어떤 형질(type)의 적절한 기능이란 그 형질이 지속적인 재생산을 보장하기(account for) 위해서 (작동)해 온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잘못 표상할 가능성은, 상징(token)이 그 형질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게끔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서 도출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하게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 적절하게 기능하는 것보다 통계적으로 더 일반적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많은 생물학적 메카니즘들은 자주 경우적절한(occasional propitious) 효과를 발휘하는데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species) 안에서 그 형질들이 증식할 수 있도록 작동한다. 따라서 어떤 물체가 눈에 너무 가깝게 움직일 때 나타나는 눈깜박임 반사는, 그 반사작용이 이물질이 눈 속에 들어가는 것을 실제로 방지하는 모든 횟수에 비해 훨씬 많은 횟수를 불필요하게 깜빡인다. 많은 경우에 어떤 형질은 증식하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작동하는 횟수에 비해서 적절히 기능하는 빈도가 적더라도 오직 어떤 결정적인 경우에만 적절하게 기능할 필요가 있으며 그 빈도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의 메카니즘 속으로 들어오는 다른 요인들에 관련해서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적절한 기능이란 개념을 자연 언어에 직접 적용할 수 있다. 전체 문장들은 거의 재생산되지 않지만 음소들과 낱말들은 재생산되며 그 음소와 낱말들이 그 안에서 재생산되는 구문론적 형식들도 재생산된다. 그것들은한 세대(generation)의 화자들(speakers)에서 다음 세대의 화자들에게로 복제되며 다양한 사례(occasion)들 속에서 같은 화자에 의해 재생산된다. 만약 보편 문법이란 것이 있다는 이론이 옳다면 매우 일반적인 어떤 문법적 특징들이 역시 유전자들(genes)을 통해서 재생산된다.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immediately), 이러한 양식(pattern)들이 청자들에게 끼친 효과들은 화자들이 재생산하고 싶어하는 효과들과 대단히 큰 빈도로 일치한다는 이유 때문에,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이 양식화된(patterned) 낱말들을 어떤 다른 형태(forms)가 아닌 바로 그 구체적인 구문론적 형태에 맞추어 재생산해 낸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효과들은 언어의 의미론적 규칙들과 관례적인 화용론적(pragmatic) 규칙들을 언급함으로써 서술된다.

언어 형태들(language forms)이 청자들에게 끼치는 적절한 효과들-이러한 형태들에 대한 청자들의 적절한 반응들-도 역시 재생산된다. 이러한 일은 때때로 청자들의 모방에 의해서 발생하기는 하지만 필연적으로 청자들이 다른 사람의 반응들을 직접 복제(copy)하기 때문에 효과(반응)들이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반응들이 재생산되는 것은 최소한 충분한 빈도로 자신들이 듣는 문장들에 청자들이 적절하게 반응함으로써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 언어의 규칙에 의거해서 문장들로부터 믿음이나 행위들로 전환한 덕분에 청자들은 충분히 자주 유용한 지식을 얻거나 그들의 행위들이 보답을 받는다. 그러한 까닭에 더욱 그 언어규칙들에 일치(conformity)하려는 경향이 재생산된다. 따라서 모든 세대(generation)의 청자들은 그 전 세대의 화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반응하는 것을 배우고 화자들의 각 세대는 그 전 세대의 청자들로부터 동일한 반응을 기대하는 것-즉, 언어 형태들을 충분한 빈도로 유지하는 것을 순환(circulation)적으로 배운다. 유사하게, 뻐꾸기의 노래에 대한 뻐꾸기의 반응과 같은 동종의(conspecific) 노래에 대한 새의 적절한 반응은, 대부분의 종에 있어서 새들이 서로 모방을 통해 학습하는 반응은 아닐지라도 역시 재생산되는데, 이 경우에는 유전적으로(genetically) 재생산된다. 학습에 의한 증식과 유전을 통한 증식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상징들의 증식과 그들에 대한 적절한 반응들의 증식은 각각 다른 한편에 의존하고 그에 따라 학습된 내용과 유전된 내용은 서로 아귀가 맞게 된다.(tailored to)

공공 언어(public language) 속에서 어떤 표현의 적절한 기능(혹은 기능들)과 화자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그것을 의도한다는 기능은 대조적으로 다를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쓰임에 있어서 화자의 의도가 어떻게 적절한 기능들에 추가적인 언어 장치의 상징들(tokens)을, Gricean Implicature의 경우에서 처럼(Millican 1984, 3장) 빌려주는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추가적인 기능들은 공공 언어 형태들의 기능들은 아니다. 공적인 기능과 사적인 기능의 두 층위(layer)는, 의도적인 거짓말과 어떤 기생적인(parasitic) 언어 사용의 경우에서와 같이 때때로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은 옳다. 여기서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복잡한 내용을 모두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그 존재를 주장하는 바와 같이 pushmi-pullyu 형태들이 공공 언어 속에 존재한다면 이것들을 Gricean implicature의 잘 알려진 현상과 혼동하지 않도록 미리 경고할 필요가 있다. 공중의(public) pushmi-pullyu 형태들은 기능의 첫번째 층위-공적인 언어 층위-에 대해서 두가지 측면을 갖는다(double-aspected). pushmi-pullyu 효과를 생산하는 것은 단지 사용자의 의도만은 아니다.

내적 표상들(지각들, 생각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기능이란 개념을 그 표상들 자체에 직접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표상들을 산출하고 사용하는 기능을 갖는 메카니즘에 적용한다. 적절하게 기능할 때 내적 표상을 산출하는 메카니즘들(inner-representation-producing mechanism)은 개별 유기체가 처한 상황들에 부응하는, 그리고 그에 적당한 표상들을 산출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믿음과 욕구 형성, 개념 형성, 추론, 의사결정과 행위의 메카니즘을 함께 포괄하는 이러한 메카니즘들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전체 체계가 적절하게 기능할 경우에 믿음을 형성하는 메카니즘들은 참된 믿음들을 생산하고 욕구를 형성하는 메카니즘들은, 충족될 경우 유기체에게 이익이 되는 욕구들을 산출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내적 표상들 자체가 적절한 기능들을 가진 것[주장]으로 보일텐데 그러한 방식으로 “적절한 기능”의 개념을 엄밀하게 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많은 생물학적 메카니즘들은 쇰환경의 어떤 측면에 따라 유기체를 변형시키고 그리하여 쇱그런 측면에 동물을 적응시키거나 일치시키도록 하며 그럼으로써 쇳그 환경 속에서 몇개의 심화된(further) 기능들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간단한 예 하나는 쇰피부 속의 색소를 재정열(rearrange)하여 쇱주위 환경의 색상과 일치하도록 하는 카멜레온 피부 속의 메카니즘이다. 그러면 이 메카니즘는 쇳약탈자로부터 카멜레온을 숨겨주는 심화된(further) 기능을 한다. 카멜레온의 특정한 색상변화 각각은 어떤 기능-즉 카멜레온을 약탈자로부터 숨겨주는 것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유사하게 과정의 형태(shape)쇰가, 그리하여 어떤 상태쇱의 형태가 환경의 어떤 특징들이 주는 입력[환경의 색상이 녹색쑵갈색으로 변함]에 의해서, 그리고 그 특징들의 기능으로서 결정되면 (적절한) 기능적 과정 속의 단계를 구성하는(constituting) 모든 상태쇱는 그 자체가 적절한 기능쇳들을 갖는 것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논거]

[즉 카멜레온의 예에서 피부 색상 변화 과정과 그 색깔 상태가 환경의 입력, 즉 녹색쑵갈색의 변화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 환경 색깔의 변화는 곧 환경의 특징들의 기능이 된다. 즉 환경과 그 속의 카멜레온을 하나의 기능체로 간주한다. 그 때 그 환경 전체의 기능적 과정 속의 단계를 구성하는 모든 상태들은 그 자체가 적절한 기능, 즉 카멜레온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전체 체계[환경 속의 카멜레온]가 계속 적절하게 기능한다면 이 상태의 적절한 기능[환경의 변화에 따른 카멜레온 색깔의 변화]들은 이 상태가 유발할 과정[카멜레온의 보호] 속에서의 추가적인(further) 다양한 단계들을 산출[카멜레온의 지속적인 생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법 독특한 어떤 내적 상태들, 즉 유기체-환경 관계들이 그 내적 상태들을 유발하기 때문에 독특한 내적 상태들조차도 적절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논거] 이러한 방식으로 에베레스트 산을 [위험한] 뒷길로 오르고자 하는 어떤 사람의 욕구나 감나무가 유행성 이하선염(mumps)을 치료한다고 하는 누군가의 믿음과 같은 그러한 표상들조차도 적절한 기능들을 가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비합리적이고 터무니 없는 욕구나 믿음들도 적절한 기능들을 가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적절한 기능들, 즉 내적 외적 표상들이 적절하게 기능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3. 서술적 표상들과 지시적(directive) 표상들.

다른 곳에서 나는 어떤 표상의 내용-그 충족조건(the satisfaction condition)-이 어떻게 도출되는가(derived)에 대한 설명을 제안하고 옹호했다. 그 설명을 다시 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서술적인 표상들과 지시적인 표상들에 대한 설명과는 무관하다. 여기서 나는 여기서 단지, 내가 서술적인 것들과 지시적인 것들 간의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설명하는 내용과 그 관련 개념을 가정할 것이다.

표상은, 그것이 메카니즘들이 그 충족조건을 산출하도록 하기 위한 적절한 기능을 가질 때 지시적이다. 청사진처럼 그것은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보여준다. 욕구들은 지시적인 표상들이다. 표상이 어떻게 지시적일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어떤 항목(item)의 적절한 기능은 그 항목이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하지 않을 기능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아마도 슬픈 사실이란 압도적인 대다수의 우리 욕구들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많은 것들(예를 들어, 네모난 원을 원하는 것)은 충족될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르고 혹은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오기를 바라는 욕구) 욕구 충족을 돕도록 구상된 그러한 메카니즘들[욕구 주체의 마음과 신체 등]의 정상적인 작동에 의해서 충족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물들이 “적절하게” 전개될 때, 즉 욕구들을 만들고 사용하는 그러한 통합된 체계들이 생존하고 증식하도록 보장하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전개될 때, 욕구들이 충족된다는 주장을 포함하지 않는다. 확실히 이러한 체계들의 일이란 것은, 첫째로 충족시키면 그 체계에 유익할 욕구들을 산출하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어떤 추가적인 적절한 내적 외적 조건들이 주어지면 그 욕구충족을 위해서 그 조건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다.

명령법의 문장들은 범형적으로(paradigmatically) 지시적인 표상들이다. 그 문장들은 그것들이 (충분히 자주) 그 충족조건을 만족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 일차적으로 언어 공동체 안에서 증식한다.

지시적 표상들과는 달리, 서술적 표상의 기능이 서술적 표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술적인 표상들의 진리조건은 그 문장이 해석자들이나 사용자들이 적절히 기능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에게 적용하는 조건들이다(Millikan 1984, 6장; 1993, 4장~6장). 만약 쇰표상이 해석자를 쇱안내하는 (적절한) 방식이, 해석자가 쇳의도한 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라면 그 쇼조건은 옳은 것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믿음들은 서술적 표상들이다. 만약 현관 벽장 속에 우산이 있다는 쇰나의 믿음이 그것이, 쇳나의 욕구-에를 들어서 비를 피하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기능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도구여서 내가 쇱의사결정과 행위지침으로 삼을 수 있으려면 쇼그 현관 벽장 속에 우산이 있을 필요가 있다. 만약 그 표상이, 예를 들어 수잔이 내 우산을 돌려주었는지 여부와 같은 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인지 체계들이 제대로 구성되고 작동하기 때문에 내가 올바른 추론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려 하더라도 그 현관 벽장 안에는 여전히 우산이 하나 있을 필요가 있다.

진술적 구문론적 양식(declarative syntactic pattern)에 따른 전형적 문장들은 서술적인 기능을 갖는다. 그 문장들의 기능은 청자들의 믿음을 산출하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청자들의 참된 믿음들을 산출하는 것이다. 청자들이 듣는 것 중 일정 비율 이상이 참이고, 그리하여 청자들에 의해서 참된 믿음들로 해석될 경우에만 청자들은 지속적으로 영어(공적인 언어)를 믿음들로 해석하는 어떤 규칙들에 일치하고자 노력한다. 사람은 그가 들은 문장들 중 너무 많은 부분이 그 해석 규칙들 안에서 거짓이라면 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을 배울 수 없다. 진술적 구문론적 양식의 기능은 청자에게 참인 믿음을 주는 것이므로 진술적 구문론적 양식은 서술적이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이 양식에 따른 문장들은 해석자들의 진리 조건들인 조건에서만 적절한 방식으로 그들의 해석자들에게 영향을 준다.[예:청개구리 이야기]

초기에 나는 표상들의 충족 조건들(satisfaction conditions of representations)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충족조건들이 결정되는 방법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내가 제시한 분석에서 표상의 충족 조건은 그 기능과 관련하여 도출된다. 그 표상의 내용은 그 표상이 구현하는 어법(mood)나 명제적 태도를 내재적으로 포함하는(intrinsically involving) 더 완전한 사건으로부터 도출한 추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곧 보겠지만 당연한 귀결(corollary) 중 하나는, 하나의 표상이 동시에 두개의 다른 내용들, 동시에 그 표상을 구현하는 두개의 서로 다른 태도들이나 어법들에 각각에 관련되는 내용들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4. pushmi-pullyu 표상들

제일 먼저 매우 원초적인 표상을 고찰해 보자. 암탉이 모이를 먹으라고 병아리를 부르는 것이다. 이르한 부름(call)의 적절한 기능은 병아리들이 먹이가 있는 곳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 병아리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이것이 그 부름이 병아리에 대해 갖는 적절한 효과일 뿐이라고, 즉 그 부름이 오직 그 효과를 위해서 선택되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 부름은 “지금 여기에 와서 먹어라!”와 같은 어떤 것을 말하는 지시적인 것이다. 하지만 암탉이 부를 때 먹이가 있다는 것은 그 부름이 적절히 수행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므로 그 부름은 역시, “여기에 지금 먹이가 있다”와 같은 어떤 것을 말하는 서술적인 것이기도 하다.(이 표상의 서술적 내용들과 지시적 내용들이 다르다는 점에 주의하라.) 더 나아가서 다시 합리적으로, 병아리들을 부르는 것이 순전히 목적을 가진 인지적 메카니즘에 의해서 여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하자. 이 인지적 메카니즘이란 첫째로 순수한 서술적 표상(저기에 먹이가 있다는 믿음)에 의해서 작동하고(operate) 그리고 나서는 관련된 지시적인 표상(먹으려는 욕구)를 회복(retrieve)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실천적인 추론을 함으로써 그리고 결국에는 결론에 근거해 행위함으로써 작동하는 메카니즘을 가리킨다. 오히려 그 부름(call)은 행동에 직접 연관된다. 그 기능은 특정한 종류의 행태의 산출을 매개하는 것(to mediate)이어서 그 기능은 환경 속에서 직접적인 기능이 특정하게 변화함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하며 따라서 환경의 형식(shape)을 그 환경과 일치하는 (conforming) 특정한 종류의 행위의 형식으로 변환한다. 암탉이 먹이를 발견하는 곳에 병아리가 가게 된다. 그 부름은 PP표상이다.

원초적인 PPR의 또 다른 예는 (아마도) 다른 새의 부름들, 다양한 생물종들이 사용하는 위험 신호들, 닭과 비비 원숭이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약탈자 신호들, 그리고 꿀벌의 춤이다. 예를 들어서, 벌의 춤은 어디에 꽃의 꿀이 있는가 하는 것과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동시에 말한다. 적절하게 기능한다면 그 벌의 춤은 환경에서의 지시 기능의 변형태에 따라서 행태의 변형태를 산출한다. 실제로 벌은 머리 속에 환경에 대한 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춤이 첫째로 그 지도 상에서 꿀의 위치를 나타내게 한다(induce)라는 증거가 있다(Gallistel 1990). 여전히, 벌이 자신의 내적인 지도 상의 꿀의 위치를 표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꿀을 수집하기 위해 표시된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벌들의 내적 지도 상의 꿀은 그 자체 PPR이다. 그리고 내적인 PPR을 산출하는 것만을 유일한 직접적인 적절 기능으로 갖는 표상을 그 자체로서 PPR로 간주하는 것은 이성적인 것 같다.

제임스 깁슨은 내적 표상들에 대해서 사유하는 것을 옹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각에서 우리가 어떤 허용치(affordance)(행위를 위한 기회들)를 지각한다는 그의 개념은 지각 표상들(perceptual representations)이 PPR들임을 제시한다. 지각된 표상들을 단순히, 직접적으로 말단 환경의 어떤 변형태들에 따라서 변화하는 유기체의 상태로서 생각해 보자. 말단 환경의 지각된 층위(layout)은 첫째로 사물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에 대한 표상- 서술적 표상이다. 그것은 역시 그 환경 속에서 가능한 움직임의 경로들에 대한 표상들, 즉 그것을 통과하는 경로들, 오르는 방법들, 그 위를 걷는 경로들, 파악할 수 있는 사물들, 그것들을 파악할 시점(angle)들 기타 등등이기도 하다. 층위의 다양성은 가능한 계획들(projects)과 그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운동 경로들의 다양성에 상응한다. 행위 가능성에 대한 표상은 지시적인 표상이다. 이것은 그 지시적인 표상이 실제로 그에 따라 행위할 때, 그리고 그 경우에만 적절한 기능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때때로 그 행해지는 바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표상할 이유가 없다. 욕구들이 경우에 따라 만족을 산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기능을 다하는 욕구들을 비교해 보자. 물론 지각된 허용치들의 경우에 그 만족을 지향하는 행위는, 지각된 표상(percept)과 환경의 다양태들에 의해서 직접 안내되며 그리하여 지각된 표상(percept) 안에서 지각자의 운동의 다양태로 직접 전환된다.

원숭이의 아래쪽의 운동전위 피층(inferior premotor cortex)에는 어떤 세포들이 있는데, 그 세포들은 원숭이들이 실행하려고 하는 손 동작과 같은 직접적인 목적들(작은 먹이 조각들을 손가락으로 잡는 것과 같은)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활성화되고(fire) 또한 원숭이들이 다른 원숭이가 그와 같은 목적에서 같은 동작을 수행하는 것을 볼 때도 역시 활성화된다(Rizzolatti et al. 1988).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모방적인 행태들은 아주 어렸을 때 나타난다. 태어난지 42분이 지난 한 유아가 얼굴 표정들(입을 멀리고, 혀를 내미는 것)을 모방하는 것이 실험실에서 관찰되었다(Meltzoff and Moore 1983). 원숭이에 대한 유비에서 우리는 이러한 어린이의 원초적인 모방 메카니즘이 PPR들을 도입(employ)하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묘사하는 동시에 그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지시하는 기능을 한다. 이와 양립하는 내용으로서, Jeannerod(1994)는 자신이 어떤 운동을 수행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들을 수행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두뇌의 동일한 할당 영역에 연관되며 그리하여 사람이 행위하는 것을 상상(picturing)하는 것과 그것을 하려고 의도하는 것은 같은 것을 표상하는 동전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일지도 모른다는 견해에 대한 증거를 인용하였다. 정말, 그가 제시한 것 중 하나는, 어떤 행위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정상적인 운동경로들의 결합을 억제함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이다.

PPR들이 서술적 표상들과 지시적 표상들의 단순한 덧셈 결합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들은 순수한 지시적 표상들이나 순수한 서술적 표상들보다 원초적이다. 어떤 사례의 서술적 내용만을 말해주는 표상들은 그것들이 목적들에 대한 표상들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효용성을 갖지 않으며 당연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표상들은 그것들이 사실들에 대한 표상들과 결합되지 않으면 아무런 효용성을 얻지 못한다. 매개된(mediate) 추론들, 최소한 실천적인 매개된 추론들을 하는 능력은 동물이 순수한 서술적 표상들이나 순수한 지시적 표상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직접 사용하는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순수한 서술)과 사람이 아직 어떻게 그에 따라 행위할지를 모르는 목적들을 표상하는 능력(순수한 지시)은 확실히 PP 표상들을 사용하는 단순한 종류의 능력보다 더 진보된 것이다.

 

<영화로 읽는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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