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역 논증

 


연역 논증에 있어서 내가 제일 먼저 설명할 내용은 ‘기호 논리학’의 내용이다. 여러분들이 이미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거쳤다면 내가 설명하려는 기호 논리학의 초보적인 내용을 이미 공부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바로 수학에서이다!

수학 교과서의 내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마 (2010년 현재의 관점에서 판단할 때) 웬만해서는 앞으로 100년 정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수학의 내용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집합이다. 그 다음이 바로 ‘명제’란 단원인데 그 내용이 기호 논리학의 내용이다. 물론, 다시 강조하자면, 초보적인 내용이지만 말이다.

실망감을 느끼면서 이 내용을 건너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연역 논증에 있어서 가장 앞에 놓는 이유가 있다. 첫째, 이 내용이 가장 논리학에서의 첨단 분야이고, 둘째 이 내용을 먼저 알면 논리학의 다른 모든 내용들을 쉽게 이해하고 머리 속에서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대부분의 설명에서 내가 취하는 방식이 이 ‘연역 논증’의 단원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 어려운 것을 먼저 한다. 그래서 내용이 설명될수록 점점 더 쉬워진다.

기호 논리학은 철학, 특히 현대 논리학의 핵심 내용이다. 그 내용은 간단히 살펴보면 별 것이 없지만, 상세히 따지고 들어가자면 한이 없다고 할 정도로 깊고 심오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바둑과 비슷하다. 바둑은 검은 돌과 흰 돌로만 구성이 된다. 규칙도 매우 간단하다. 장기와 비교하자면 장기는 여러 종류의 말이 있고 말이 움직이는 길도 여러 가지이므로 다양하고 더 흥미로울 것 같다. 하지만 양자를 다 즐기는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바둑이 더 깊고 심오하다고 한다. 단순하지만 오히려 더 깊고 심오하다. 기호 논리학도 역시 그러하다.

여러분이 철학, 특히 논리학을 기호 논리학을 전공한다면 1차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은 ‘명제 논리’와 ‘1차 술어 논리’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을 전공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선적으로 명제 논리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하겠다. 명제 논리가 더 단순하고 쉬운데 반해, 1차 술어 논리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우며 명제 논리를 포함한다.

명제 논리의 내용은 고등학교 수학에서 배웠던 내용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시작하면 된다. P, Q, R과 같은 알파벳 기호들이 있고 부정기호 ‘~’가 있으며 이것들을 연결하는 기호 ∧, ∨, →, ↔들이 있다. 이 기호들은 각각, ‘아니다’, ‘그리고’, ‘또는’, ‘이면’, ‘…와 같다’ 등을 의미한다.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지만 다 아는 내용이라고 간주하고 핵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다음의 표로 대신하겠다.

기호

의미

명칭

P, Q, R 등

명제 혹은 문장을 나타낸다. 문장이 들어가야 하는 ‘빈 칸’

명제 기호

부정을 의미한다. “…가 아니다”라는 뜻.

부정

“…이고 …이다”라는 뜻이다.

연언

“…이거나 …이다”라는 뜻이다.

선언

“…이면 …이다”라는 뜻이다.

조건

“…인 경우 그 경우에만 …이다”라는 뜻이다.

쌍조건


예를 들어 보자. P가 “비가 온다”를 Q가 “소풍을 간다”를 나타낸다고 해 보자. 그러면 ~P는 “비가 오지 않는다”를 의미하며 P∧Q는 “비가 오고 소풍을 간다”를 의미하고 P∨Q는 “비가 오거나 소풍을 간다”를 의미한다. 또 P→Q는 “비가 오면 소풍을 간다”를 의미하고 P↔Q는 “비가 오는 경우 그 경우에만 소풍을 간다”를 의미한다. 보기 쉽게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P

연결사

Q

기호

전체 문장의 뜻

비가 온다

소풍을 간다

~P

비가 오지 않는다.

P∧Q

비가 오고 소풍을 간다.

P∨Q

비가 오거나 소풍을 간다.

P→Q

비가 오면 소풍을 간다.

P↔Q

비가 오는 경우 그 경우에만 소풍을 간다.

혹시나 고등학교 때 수학에서 이 내용을 배웠지만 어떤 의문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 두 가지 추가 설명을 하겠다.

첫째는 선언, 즉 P∨Q에 대한 것이다. 의문 혹은 불만은 주로 P와 Q가 모두 옳은 경우도 포함한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할 때 “이것은 사과이거나 배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뜻은 이것이 사과이거나 배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P∨Q가 “P와 Q 둘 다 옳은 경우도 포함한다”를 의미한다는 것은 이러한 우리 경험과 상충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고”와 “또는”을 서로 다른 의미로 구분하는데, 그 때문에 ‘또는’은 ‘그리고’가 아닌 것이 된다. P∧Q는 P와 Q 둘 다인데, P∨Q는 P∧Q와 다른 뜻이니까 P와 Q 둘 다 옳은 경우는 빼야한다는 생각이 직관이 뒤따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Q를 지금처럼 P와 Q 둘 중의 하나 혹은 둘 모두를 의미하는 까닭은, P∧Q처럼 둘 중의 하나만이 옳다는 의미도 표현하고, 더불어서 P와 Q 둘 다 옳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기호도 만들어 두는 것이 논리기술적으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어, 그런데 내가 방금 한 말을 생각해 보자. 나는 이 글의 3줄 위에서 “P∨Q를 지금처럼 P와 Q 둘 중의 하나 혹은 둘 모두를 의미하는 까닭은”이라고 말했다. 즉 P∨Q는 P와 Q 둘 중의 하나(P) 혹은(∨) P와 Q 둘 모두(Q)를 의미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하지 않은 우리말이다. P∨Q가 P와 Q 모두 옳은 경우도 포함한다는 것이 실제로 그렇게 우리말의 직관에 어긋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예증이다. 말이 너무 꼬였나? 하지만 여러분이 찬찬히 생각해 본다면 잘못된 점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조건, 즉 P→Q에 대한 것이다. 핵심은 P∨Q에 대한 것과 비슷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미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겠다”라는 예를 보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가 P이고 “미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겠다”가 Q이다.(흔히, →나 ∨와 같은 기호의 앞에 있는 것(P)을 “전건”이라 부르고 뒤에 있는 것(Q)를 “후건”이라 부른다.) P→Q가 옳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P가 참일 경우) 미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할 것이다.(Q도 참일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경우에 있다. 만약 그 때에도 미국이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면 어떻게 되는가? 기호 논리학에서는 P→Q의 의미를, 이 때에도 참인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말의 어감을 따져보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지원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조건’으로서의 이런 의미는 우리말에도 들어있다. 아빠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고 해 보자. “네가 성적이 오른다면 선물을 주겠다.” 이 때 아들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는데, 생일이 돌아왔다면 약속을 지키는 아빠가 아들에게 선물을 해야만 하는가 하지 않아야 하는가? (올바른) 상식에 따르면, 성적이 올라서 선물을 사 주는 것과 생일 선물을 사 주는 것은 별개이다.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고 생일에도 선물을 사 주지 않으면서, “나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아빠야”라고 여러분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면 여러분은 그 ‘말’이 곧이 들리겠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때 아빠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것은 아들의 성적이 오르면 반드시 선물을 사 주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아들의 성적이 안 올랐을 때 어쩔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편 아들의 성적이 오르면 선물을 주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선물을 주지 않고자 한다면 아빠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네가 성적이 오르면,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선물을 사 주겠다.” 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이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기호로 표현하자면 P→Q가 아니라 P↔Q이다.

그래도… 이런 기호 논리학의 지식은, 첫째 너무 딱딱하고, 둘째 너무 제한적인 것 같다. 그 밖의 다른 불만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따위’의 지식이 왜 그렇게 ‘현대 논리학’이고, 그래서 가장 발전된 내용이라는 뜻인 ‘첨단’ 논리학인지 금방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의 역사를 간단히 알아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

논리학의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된다. 벤슨 메이츠라는 학자가 쓴 논리학책은 세계적인 논리학 교재로 쓰이는데, 거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우리는 논리학의 역사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로부터 시작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지적 발견이 결코 오직 한 사람만의 업적일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들 사이에 거의 상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기하학을 세움에 있어 유클리드는 에우독서스와 다른 사람들의 업적을 이용했다. 역학의 경우 뉴턴은 데카르트, 갈릴레오, 케플러 등의 어깨를 딛고 서 있다. 그 외에도 거의 모든 경우가 이러하다) 하지만 참고로 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이란 학문을 완전히 무(無)로부터 창조했다. 그는 「소피스트적 반박(SoPhistical Refutations)」의 끝부분에서 이 사실을 스스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의 이 보고의 정확성을 의심할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창조의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험적 근거에서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싹을 찾아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배들의 저작, 특히 플라톤의 저작을 샅샅이 더듬었다. 하지만 이 탐구는 거의 전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1)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흔히 “3단 논법”이라고 불린다. 3단논법이란 무엇인가? 대표적인 예가 다음과 같은 논변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소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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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


여러분들이 어영부영 철학책을 읽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대해서 듣게 되는 내용이 이거다. "에게, 겨우 이거야?" 불만이 생기는가? 정당한 불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대해서 잘못된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충분히(9요소) 정확하지(9요소) 않을 뿐이다. 지금까지 P∧Q, P→Q와 같은 재미없는 얘기를 많이 했으니 외도 삼아 철학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철학을 보다 정확히 이해해 보자.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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