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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철학 해설

 


 

플라톤 철학 이해의 열쇠 : 수학

플라톤 철학의 이해는 플라톤이 수학의 모든 학문과 진리의 한 표준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시작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남두, 플라톤과 수학(1)>"즉 플라톤 철학과 수학 사이의 밀접한 상호연관을 적절히 고려함이 없이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 특히 기하학을 생각해 보자. 원과 삼각형과 직선, 그리고 기타의 도형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양으로 만들어진 각종 건물들, 바퀴들, 그리고 벽의 선들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제로 관찰하는 그러한 구조물들과 기하학 속의 원, 삼각형, 직선의 관계- 즉 달리 말하면 구체적인 사물들의 세계와 기하학적 관념의 세계의 관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동차의 바퀴는 실제로는 완전한 원이 아니지만 완전한 원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나무를 깎아서 곧은 막대를 만들 때 우리는 직선의 형태로 만들려고 한다. 실제로 완전한 직선이 되지는 않지만 최대한 그에 가깝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추상적인 기하학의 세계는 우리들 세계의 하나의 청사진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된다. 집을 지을 때 우리는 설계도를 그린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따라서 집을 짓는다. 그 집은 설계도대로 되지는 않지만 설계도와 가깝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집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 집의 설계도에 나타난 내용 이상의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설계도는 하나의 틀이고 건출물은 그것을 구현한 것이다. 기하학이 설계도이고 사물들은 그것을 구현한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가 있으며 그 그림자로서 사물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세계는 몇 개의 세계들로 구분되는데 이데아의 세계는 참되고 본래적인 세계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 세계는 존재와 무의 가운데 있는 모상이다. 그러면서도 플라톤은 단순히 구분에 그치지 않고 참되고 본래적인 존재인 이데아적인 존재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사물들이 기하학적인 관계로 구조지어지고 그에 따라서 변화하는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능하다. 던져진 돌은 포물선의 형태로 운동한다. 돌의 운동 속에 포물선이 숨어있다. 그것은 마치 돌의 움직임을 이끄는 하나의 규범과 같다. 기하학의 세계는 세상의 모든 것을 특징짓는 뼈대이고 그 모상인 사물세계는 본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를 덮은 엷은 껍질에 불과하다. 동물의 운동이 결국에는 그 피부가 아닌 뼈의 구조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되듯이 세상은 뼈와 근육과 같은 이데아의 세계를 살짝 덮은 가죽같은 사물들의 세계로 덮여있을 뿐이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만이 참되고 본래적인 세계라고 주장한 것은 일견 이상하게 들리지만 수학을 근거로 생각해 보면 이것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기하학적인 법칙에 의해서 우리는 사물의 운동과 구조를 예측하고 조작할 수 있다. 굽은 나무기둥들을 가지고 집을 지을 때도 이 기둥들이 '굽은' 것이 아니라 '직선'이라고 생각하고 직선의 형태만을 고려하여 집을 지으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한편 세상에 완벽한 원형을 만들 수도 없고 그에 완벽하게 접하는 직선을 그릴 수도 없지만 원의 이데아와 직선의 이데아를 생각하며 계산하여 우리는 접점의 위치를 언제나 매우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이데아들이 어떻게 실제적이고 참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바퀴를 만들고 기둥을 만들 때 그 둥근 바퀴와 곧은 기둥들의 사소한 일그러짐들은 무시할 수 있다. 즉 가상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데아들은 변하지 않으며 항상 모든 사물에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진리이다. 그러므로 수학과 논리학의 명제들은 절대로 보편타당하며 특히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떠한 현실보다 강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플라톤이 발견한 이데아의 세계는 곧 추상적 본질, 혹은 추상적이면서도 불변하는 공통성의 발견이며 곧 학문과 진리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이것을 형식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형식만이 선험적이며 감각이 인식 자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오히려 우리의 상식과 잘 일치하는 것 같다. 하지만 플라톤의 생각은 다소 극단적이다. 플라톤은 감각적 내용에 대해서도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갈색에도 완벽한 갈색(즉 갈색의 이데아)이라는 것이 있으며 따뜻함에도 따뜻함의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플라톤의 철학에는 몇가지 선험적 전제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1>참인 모든 것은 어떤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 자체와 동일하여 명확한 것이고 <2>진리는 영원불변하며 무시간적인 것이라는 두가지 전제이다.

플라톤이 학문과 진리의 세계를 발견하였다는 말은 철학의 관심을 생활에서 순수히 학문적인 내용으로 돌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후로부터 철학은 항상 생활에 직접적인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내용들만을 다루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학문적인 내용들을 통합시키려 하였다.

 

플라톤의 진리

플라톤은 영원 불변한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우리와 같은 한국 사람이 플라톤의 '영원 불변한 진리'를 이해할 때에는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국 사람은 동양적인 전통 안에서 '영원 불변한 진리'라고 할 경우에 포괄적이고 심오한 도(道)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플라톤의 진리란 이것과는 다소 다르다.

플라톤의 진리는 변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이 영원 불변한 진리가 곧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도 플라톤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플라톤은 2+2=4, 혹은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것과 같은 내용을 영원 불변한 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연장하여 세상의 모든 것에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갈색과 따뜻함, 책 등의 이데아가 있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면 우리가 책과 비슷한 물건을 보고 "이것은 책과 닮았다"라고 말하고 어떤 색을 보고 "이것은 갈색과 비슷하다"거나 "갈색과는 너무 다르다"거나 하는 주장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책인지를 알고 있어야 어떤 것이 책과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 둘 중의 어느 것이 더 책과 닮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며 갈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기설이란?

플라톤이 생각할 때 우리는 이러한 이데아들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면 우리의 정신(영혼) 속에서 발견한다. 즉 "영혼이 완전히 그 자체로서 고찰을 시작할 때에는 순수한 것,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 죽지 않는 것 및 자기 자신과 동일한 것을 향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즉 우리가 그냥 생각에 잠기면 그 안에서 우리는 순수히 추상적인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추상적인 내용인 '책'이나 '갈색'과 같은 것은 책과 비슷한 것, 혹은 갈색과 비슷한 다른 색깔과 결코 혼란되지 않고 순수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플라톤은 정신이 본성적으로 항상 이 진리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태어나기 전부터 원래 알고 있지만 잊고 있다가 태어난 후에는 교육 등을 통해서 다시 기억해 낸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곧 "상기설"이다.

상기설이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한 순수한 사상을, 영혼이 신들 곁에 미리 존재하고 있을 때는 이미 보았으나 이제는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감각적 지각을 통해서 자극을 받음으로써 다시 이 순수한 사상을 상기(회상)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것.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수학과 같은 내용의 경우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어릴 때 1+3=5, 3+7=10과 같은 것은 배우지만 모든 수의 계산들을 배우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계산을 틀리지 않고 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본질적인 것 자체에 관한 지식(예: 동일한 것, 큰 것, 작은 것, 선한 것, 인간, 거문고 등)은 통틀어서 인간 안에 깃들어 있다"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플라톤이 진리가 감각적인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적인 것에서는 결코 진리를 발견할 수 없으며 진리의 원천은 정신(영혼)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플라톤은 단호한 합리론자이며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다.

 

이데아론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이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이데아란 항상 자기동일적인 것, 생득적이고 선천적인 진리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형식이나 기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내용이다. 그것은 갈색이나 책의 이데아도 존재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감각적인 대상도 아니고 시공간적 대상도 아니며 심리적인 대상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관념적인 실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데아는 영원불변하는 이상형으로서 우리의 생각의 대상이 된다. 이데아가 영원불변한 것이므로 우리는 영원불변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신념과 지식이 이데아까지 이르지 못하고 감각적인 직관에만 얽매여 있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억설일 뿐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실재한다는 것은 수학과 논리학이 타당한 것을 통해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플라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어떠한 현실보다 수학과 논리학의 현실성이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에 있어서도 현대 문명의 기술이 수학과 논리학에 근거해 있으며 따라서 그런 면에서 수학과 논리학은 현실의 토대를 이룬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같다. 플라톤은 이것을 매우 극단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

수학과 논리학을 보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작동한다. 즉 수학과 논리학에 근거해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기계가 움직이고 건물이 건설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학과 논리학은 어떤 '실재하는 것'에 대한 학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플라톤에 따르면 이데아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실재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수학과 논리학은 공상과 다름없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삼각형을 칠판에 그렸을 때 그 그려진 삼각형은 참된 삼각형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참된 것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감각적인 실재적인 사물들은 모두 이 이데아들을 본뜬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순수한 삼각형을 생각하기 때문에 칠판에 그려진 삼각형을 삼각형으로서 이해하게 되듯이 이데아의 세계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과 세계를 '그것이게끔 하는 것', 즉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를 통해서 다른 존재들이 존재를 갖게 된다, 즉 존재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러한 이데아가 진리 인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고 학문을 탐구함에 있어서는 항상 '현실을 초월한' 이데아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감각적인 세계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감각적인 세계의 근저에 있는 것을 이해하고 그래서 감각적인 세계를 한꺼번에 질서정연하게 이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

이러한 이데아론을 이해하고 나면 플라톤의 선분의 비유와 동굴의 비유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선분의 비유란 대상들이 참되게 존재하는 순서를 선분으로 나타낸 것인데 가장 참된 대상으로서 이데아가 있으며 그보다 덜 참된 것으로서 동식물이나 침대 등과 같은 인간이 만든 것들이 있고 마지막에 다시 이것을 모방한 그림자나 모상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한편 여기에 아래 그림과 같이 사유, 추론적 사고, 의견, 억측 등이 순서적으로 대응된다.

 


가 시 계

가 지 계

대 상


그림자, 모상

동식물

제작물

이데아



A


D


C


E


B



영혼의 상태


억측

의견

추론적 사고

사 유


선분의 비유는 이데아에서부터 그림자까지의 존재자들의 참된 정도를 보여준다.

한편 동굴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인간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와 같다. 우리들은 땅 밑에 있는 동굴 안에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의자에 붙들어 매여 있어서, 뒤돌아볼 수도 없으며, 항상 출입구와 맞서 있는 벽 밖에 볼 수가 없다. 이 갇혀 있는 자의 뒤쪽에, 즉 입구 족에, 동굴을 가로질러 사람키만한 벽이 있고, 그 뒤에서 불이 타고 있다. 그런데 이 불과 벽 사이를 인간들이 지나다니며, 이 때 이 벽보다 높은 사람의 모습과 형체, 동물의 모습 및 도구 등을 짊어지고 다니게 되면, 불 때문에 생긴 이 사물들의 그림자가 동굴의 벽에 비춰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의 울림도 갇혀 있는 사람들의 귀에 들리게 된다. 이 갇혀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와 울림 외의 다른 것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이런 모사를 참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들이 뒤를 돌아볼 수 있고, 여태까지는 그 그림자만 보고 있던 대상 자체를 직접 불빛 속에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울림 대신에 소리 자체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이러한 새로운 현실에 관해서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이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동굴에서 빠져나와, 태양 광선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 살아있는 동물 및 진짜 사물들 자체를 보게 된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런 현실 때문에, 눈이 부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동굴에 머물러 있는 죄수들에게, 너희들이 보고 듣고 하는 것은 본래적이고 참된 현실이 아니라고 설명해 준다면, 아마 아무도 이들을 믿지 않을 것이며, 이들을 비웃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갇혀 있는 죄인들을 풀어 주고, 참된 세계의 빛으로 인도해 주려고 노력한다면 이 사람은 죽음을 당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갇혀 있는 죄인들을 동굴 밖으로 끌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을 가상의 세계와 비유의 세게에서 해방시켜, 참된 존재에로 인도해 주는 것이 철학자의 과제이다. 그런데 이 참된 존재란, 물론 이 지상의 세계의 태양 밑에 있는 소위 실재적이고 시간공간적인 세계는 아니다. 이러한 세계도 역시 일종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로 존재하고 있는 세계는 이데아의 세계 뿐이다.

 

이데아의 여러 가지 의미들

이상과 같은 플라톤의 이데아에는 여러 가지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이것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논리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따라서 이데아는 보편적인 개념이며 사고의 수단이다.

둘째, 이데아는 항상 실체이며 따라서 참된 존재로서의 사물 자체이다.

셋째, 사물들의 이상형 혹은 원형을 의미한다.

넷째, 이데아는 사물의 근거가 되므로 이데아가 근거짓는 사물들의 존재 원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에는, 연필 장난감이 연필을 흉내낸 것이라면 연필은 연필 장난감의 원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다섯째로 이데아에는 목표요 목적이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한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뜻에 의하여 항상 어떤 보다 높은 것에 이끌려진다.

 

플라톤의 가치론(윤리학)

이데아의 마지막 다섯 번째의 특징인 목표요 목적이라는 의미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것을 설명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플라톤의 윤리학을 이해하게 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참된 진짜 존재는 이상적인 존재뿐이며 이것이 곧 이데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를 하자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인형이 있다면 두 개 중에서 더욱 사람을 잘 흉내낸 인형이 훌륭한 인형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비교를 이데아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확실히 우리가 (구체적인 이 책이 아닌 '그냥') 책과 연필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의미있게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이데아들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뻗쳤는데 그에 따르면 어떤 사물이 훌륭하거나 훌륭하지 못한 가치가 본성적으로 이데아에 매달려 있고 이데아의 가치는 역시 다른 더 상위의 이데아에 매달려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마침내 우리는 최고로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을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이와 같은 최고 가치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가 어떤 것인지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으며 대신에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비유는 선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 비유를 좀더 자세히 보면 눈에 보이는 세계에 있어서는 태양이 모든 것들에게 가시성과 생명과 성장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왕국에 있어서는 선의 이데아가 존재자가 인식되고 본질을 갖도록 하는 궁극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선의 이데아 자체는 이미 존재가 아니며(태양이 다른 사물들처럼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듯이) 존재의 저편에 있고 힘과 품위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통해서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치 순서대로(즉 좋고 나쁜 순서대로) 질서지으려고 시도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생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생겨났을 것이다. 즉 플라톤은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또 그 세상의 근저에 있는 진정한 존재인 이데아를 발견하였으므로 이제 이데아 역시 질서있게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데아들의 질서란 그 가치순서를 매기는 것이다. 이로써 플라톤은 무엇이 참된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무엇이 좋고 가치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동시에 답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플라톤의 철학사상은 고대 철학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체계적이고 방대한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 철학의 영향력

플라톤 철학은 서양철학사 전체에 대해서 일관되게 영향을 미치는 이념사적 근원이다.

1> 플라톤은 참된 존재인 이데아와 이의 모상인 감각적 대상을 구별하고 이데아는 절대적 존재이며 감각적 존재는 우연적 존재라고 구별하였는데 이러한 절대적 존재와 감각적 존재의 구별은 그 후 많은 철학자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되었다. 이것은 때때로 스스로 있는 존재와 다른 것에 의존해 있는 존재라는 구분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실체 개념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곧 서양의 존재론적 이원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플라톤은 모든 대상들이 이데아에 근거하여 이데아를 그 존재 원인으로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다시 이데아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가 그 존재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그 최종, 최고의 세계 존재 이유를 생각하는 사고 방식은 후세에 항상 반복되었으며 특히 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많이 이용되었다.

3> 신의 세계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신을 세계의 의미(혹은 목적)라고 보는 해석이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선의 이데아에서 이데아로, 그리고 다시 사물들과 그림자로 이어지는 존재의 전개는 곧 신이 세계에 전개되어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의 근원이 되었다.

4> 가장 완전한 존재자의 개념이 플라톤에서 생겨났다. 이것은 선의 이데아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리고 선의 이데아를 신으로 대체해 보라.

5>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의 전체 내용은 플라톤 철학에 대한 해설에 불과하다고 평했다. 그만큼 서양철학에서의 플라톤 철학의 영향력은 크다. 그리고 서양철학의 모든 문제는 이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논하고 문제삼았던 문제들의 범위 안에 제한되었다.

 

플라톤 철학의 문제점

먼저 논리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자. 모든 것에 대해서 이데아가 존재하고 그 이데아가 참된 것이라면 '악마'의 이데아는 어떻게 될까?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것 역시 참된 것이고 진정한 것이며 선의 이데아를 존재근거로해서 존재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악마의 이데아는 완전하지 못한 것, 그래서 결여된 것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상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종교적인 교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 굉장히 흔히 사용되었다.

플라톤 철학의 다른 문제점들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자세히 논하도록 하겠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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