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son의 철학 소개

 

Davidson의 철학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현대 상대주의를 비판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믿음-의미 상호의존성을 지적하고, 자비의 원리를 제시하며, 개념틀 거부하여 이러한 주장을 전개해 나간다.

현대철학에서 상대주의는 개념적 상대주의의 형태를 취한다. 이것은 곧, 지식이나 진리가 개념틀에 상대적이라는 주장이다. 데이빗슨은 이러한 '서로 상이한 개념틀'이라는 말은 의미론적으로 실질적인 내용을 갖지 못하는 공허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상대주의의 근본적 오류는 우리의 인식을 인식틀과 내용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바라보는 인식론적 관점 자체의 오류인 것이다.

1. 번역가능성 논증

번역가능성 논증은, 번역 실패에 근거하는 상대주의 논증을 논박하기 위한 데이빗슨의 논증이다. 즉 상대주의는 번역 실패를 통해서 개념틀이 서로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데이빗슨은 이러한 주장을 번역가능성 논증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은 다음의 세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1) 특정 개념체계는 특정언어와 동일시될 수 있다.
2) 상호번역가능한 일군의 언어들은 동일한 개념체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그 무엇이 언어로 불리려면 우리 자신의 언어로 번역가능한 경우에 한한다. 따라서 번역불가능한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상이한 개념체계라는 말에 일관성있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려면, 번역할 수 없으면서도 언어인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한 언어로 번역가능하지 않는데도, 그것이 또한 언어일 수 있기 위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 해독 못한 고대문자나 외계의 신호같은 것을 가끔은 언어라고 부르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번역불가능한 것은 왜 언어가 아닌가에 대한 옹호논증이 필요하다.

2. 데이빗슨의 해석론

해석의 문제는 언어를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을 포함한다. 해석의 문제는 다른 언어권뿐 아니라 동일한 언어권 내에도 존재한다. 즉 동일한 언어의 화자들에게 그들의 언어가 동일한지를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문제이다. 해석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원초적 해석의 문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은 모두 원초적 해석을 포함한다. 원초적 해석문제는 해석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이론이다. 따라서 해석론에서 개념 상대주의의 성립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함축이 유도된다. 즉 개념 상대주의는 해석론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콰인의 상대주의도 원초적 해석에 대한 불확정성을 근거로 삼고 있다.

데이빗슨은 타르스키의 진리론을 수정하여 해석론을 수용한다. 그러나 수정한 후에도 원초적 상황은 우리에게 의미, 번역, 동의성 등에 관한 어떠한 지식도 전제할 수 없다는 요건을 부과하기 때문에, 언초적 상황에서의 규약은 다음과 같은 변태적 형태도 허용하게 된다.

(S)"Snow is white"는 풀이 푸르면, 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참이다.

데이빗슨은 이러한 변태적 문장을 제거하기 위해 자비의 원리를 도입한다. 자비의 원리란 해석대상이 되는 화자를 해석자의 관점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행위자로 여겨지게끔 해석해야 한다는 해석방법론상의 준칙이다. 이 자비의 원리는 믿음-의미간의 상호의존성 문제에서, 믿음을 고정시켜 의미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화자의 믿음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면, 그가 어떤 문장을 참으로 여기는 태도로부터 문장의 의미를 추론할 수 있다.

데이빗슨은 화자가 어떤 문장을 '참으로 여기는 태도'를 해석론의 증거자료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 안에는 명제적 태도들이 문장의 의미와 상호의존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데이빗슨은 화자가 어떤 문장을 참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는 믿음과 의미의 벡터라고 보았다. 해석론에 있어서 믿음과 의미는 동시에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자비의 원리에 의해 가능하다.

자비의 원리는 화자가 참이라고 믿을 때 그 문장은 사실상 참이라고 최대한 인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문장을 참으로 여기는 화자의 태도를 가능한한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든다는 의미인데, 그 올바름의 여부는 해석자인 우리의 기준에 따른 올바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비의 원리가 성립한다. 자비의 원리를 채택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이 거짓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우리와 동일한 믿음을 최대한 부여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합리성, 정합성의 기준을 초대한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그들이 과연 이성적인지, 믿음을 가지고나 있는지, 말을 하고나 있는지를 전혀 판단할 수 없다.

3. 해석과 상대주의

이제 상대주의를 비판해 보자. 현대 상대주의는 지식이나 진리가 개념틀에 상대적이라는, 개념적 상대주의의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다른 개념틀을 사용한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은 다시언어들 간에 해석의 실패가 발생함을 증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데이빗슨에 따르면 이러한 해석의 실패는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논증을 위해서 데이빗슨은 해석의 실패를, 전면적 해석의 실패와 부분적 실패로 나누어거 고찰한다.

- 전면적 실패: 해석의 전면적 실패라는 것은 시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어귀이다. 해석의 실패는 그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언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어떤 행위가 우리 언어로 해석, 번역될 수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행위가 언어행위이기는 하다는 증거가 과연 있을 수 있는가? 즉 우리 언어에로 번역가능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언어임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증거는 없는 것이다.

- 부분적 실패: 믿음-의미 상호의존성과 자비의 원리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다른 부분보다 훨씬 많은 부분이 서로 합치해야 한다. 즉 해석에 있어서 광범위한 의견일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해석의 부분적인 실패 부분이 개념 체계상의 차이가 아니라 이른바 유의미한 믿음상의 차이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부분적 실패라는 개념 또한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4. 경험주의의 제 3의 독단

이상의 고찰을 통해서 볼 때, 개념틀에 관한 한 그것들 간의 상이성을 말할 수 있게 하는 어떠한 유효한 기준도 없다는 것을 결론짓게 된다. 즉 해석의 기본적 방법론이 주어질 때, (원초적 해석, 믿음-의미 상호의존성, 자비의 원리)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것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나 믿음들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개념 상대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에는, 모든 개념틀 외부에 존재하는 중립적이고 공통적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즉, 개념틀이 존재하고, 그것과 독립적으로 개념화되는 내용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틀/내용의 이분법적 전제를 의미한다. 데이빗슨은 이것을 경험주의의 세번째 독단이라고 부른다. 데이빗슨이 상대주의를 거부하는 핵심논증은 우리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개념틀이 있다고 확인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개념틀 간의 상이성을 유의미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 상이성을 의미있게 해 줄 공통된, 그리고 우리의 개념틀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미해석된 증거'라는 개념 또한 의미를 상실한다. 상대주의의 진정한 오류는 우리의 인식을 개념틀과 내용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에서 바라보는 근대 이후 인식론적 관점 자체가 갖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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