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의문의 여지 논법(open-question argument)

 

 

V. Values and value system.

15.2. 의문의 여지 논법(open-question argument)


도덕 철학과 정치철학에서의 정당화 문제를 계속해서 고려하기 전에 가치의 감흥-인지이론(affective-cognitive theory)에 대한 두 가지 반론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가장 자주 제기되는 반론을 가지고 시작할 것이다. 즉 내가 제안한 노선을 따르는 가치에 대한 설명은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반론들은 전형적으로 Moore의 의문의 여지 논법에 초점을 맞춘다.

1) 만일 감흥-인지 이론이 합당하다면, “X는 가치있다”는 “X는 성향적 감정의 대상이다”를 의미한다.
2) 그러나 "성향적 감정읟 o상은 가치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항상 유의미하다.
3) 2)는 항상 의미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에서의 주장 - 즉 “X는 성향적 감정의 대상이다”는 “X는 가치있다”를 의미한다.-는 참일 수 없다.

이것은 가장 설득력있는 형태의 논변일 것이다. 그러나 (1)은 거짓이라는 것은 강조될 만하다. 더우기, 감흥-인지 이론은 본질적으로 단어의 의미에 관한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아래의 것들이 더 정확할 것이다.

1*) 감흥-인지 이론이 합당하다면, “X는 긍정적인 성향적 감정의 가치있는 대상(worthy object)이다.”는 “X는 본래적으로(inrinsically) 가치있다(valuable)"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이다.
2*) 그러나 “긍정적인 성향적 감정의 가치있는 대상은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는 것은 언제나 유의미하다.
3*) 2*)는 언제나 의미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1*)에서의 주장은 참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의문의 여지 논변이 설득력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감흥-인지 이론에 적용시키는 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대상이 감정에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을 요구함에 의해 2*)의 요점은 모호해진다. 2*)을 명료하게 하고 2)의 힘을 되찾기 위해 ‘가치있는 것으로서 worthy한 것(worthy as valuable)"으로부터, “감정에 적절한 것으로서 가치있는(worthy as appropriate to emotion)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8.4에서 나는 그러한 구분에 반대했다. 어쨌든 재정식화된 논변에서조차도 두번째 단계는 문제가 있다. 무어의 논변의 핵심은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완전한 “자연적인” 기술도 - 적절하고 지각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이 또한 좋은 것(good)인가라고 뭉릉 여지를 남겨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음(amusingness)”에 관한 우리의 분석(10.1-2)을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비개인적으로 그렇다고 믿을 때 “그것에 어떤 좋은 것이 있는가”라고 내가 묻는다면 그것은 의문의 여지를 제기한다기 보다는 공허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확실히 이상한 질문이다.

윤리학에서의 자연주의에 관한 문제를 잠시 유보한다면 의문의 여지 논변은 하나의 친숙한 개념(예를 들어, 가치)을 다른 개념(예를 들어, 감정)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일반적인 걱정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왜 우리는 하나면 충분할 때 두 개의 개념을 요구하는가? 그리고 이론이 우리에게 개념들이 어떤 의미에서 서로 같다고 말하고 있을 때, 왜 그 개념들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려고 하는가? 의문의 여지 테스트의 직관적인 힘의 한 부분은 “좋은9goodness)”은 “쾌락” 혹은 “감정”과 구별되는 개념이고 따라서 우리는 항상 후자에 의해 기술될 수 있는 것이 또한 전자에 의해 적절하게 생각되어질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 개념을 다른 개념에 의해 해명하려는 이론은 두 가지 대안을 갖는다. 1) 한 이론은 이러한 직관을 그릇되게 형성된 것이라고 간단히 일축해 버린다. 혹은 2) 개념들이 서로 다르다는 확신이 한 개념을 다른 개념에 의해 설명하는 것과 어떻게 양립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두번째 노선을 택한다.

관계적 개념(relational concept)의 본성을 고려함으로써 시작해 보자. David Wiggins는흥미있는 사례를 제안한다. 즉 가치는 색깔 개념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붉음은 “-의 아버지”가 관계적이라는 것과 가튼 방식에서는 관계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의 부모”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보자. “부모”라는 개념을 해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xRy라는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x와 y는 사람들이고 R은 “자식을 보다 혹은 아이를 낳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xRy를 기술하거나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 속에 있는 x를 특정하게 가리킨다. 즉 부모라는 개념은 xRy에 대한 언급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하더라도 “부모” 그 자체가 xRy의 이름이 아니다 더우기 “부모”는 그 개념의 해명을 위해 xRy를 언급하는 유일한 개념이 아니다. 즉 “자식”은 xRy에 있는 y를 언급함으로써 가장 잘 이해된다.

물론 “가치”가 “아버지”와 같은 방식에서 관계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긴스는 옳다. 그러나 부모의 예는 “가치”와 “감정”에 통찰을 제공한다. 감정상태는 감흥적 양상(affective mode)과 세계내의 항목을 가리키는 내용에 의해 분석된다. 이러한 상태들이 관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정말로 어떤 방식에서 연관된 감흥적 양상과 내용/대상의 두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A(C)]라고 하자. “부모”의 분석으로부터 끌어낸 교훈을 살펴보았을 때 우리는 감정어(emotion term)가 특정한 유형의 [A(C)]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복합체에서의 감흥적 양상인 “A"를 우선적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감정개념은 우선적으로 심적 상태들을 무리짓는다. 이것이 내적 감각이론이 첫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정확한 이유다. 감정은 느낌상태의 유형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름붙여진다는 것은 옳다. 내적 감각이론의 결점은 감정개념은 단순히 감흥적 상태에 의해 분석될 수 없다는 것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것을 가치평가(valuing)에 적용하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가치어(value term)는 [A(C)]에서의 내용/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가치 논의에서의 우리의 초점은 주로 느낌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의 유형과 특성에 있다. 우리는 감정 논의는 안쪽을 향하고 있는 반면에 가치 논의는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우기 모든 가치와 감정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기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때때로 그러한 관계가 성립하지만 감정과 가치있는 것들을 구분함에 있어서의 우리의 실제적인 관심은 당연히 좀 더 복잡한 관계에 이른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은 어떤 특정한 감흥의 복합체도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름다운 대상의 지각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감흥적 상태들-예를 들어 흥미있는, 즐거운, 심지어는 슬픈-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아름다운”은 일련의 감흥상태에 의해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가치 개념의 이러한 분석은 널리 견지되기는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견해를 설명할 수 있게 한다. i) 가치 개념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다. ii)우리가 한 대상을 “가치있는” 것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의 특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즉 가치 귀속은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과 그것들의 특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의 본성에 대한 분석은 (넓게 해석된)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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