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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메타 윤리학의 몇가지 문제들

 

후배 학부생들이 잡지에 글을 써 달라고 해서 쓴 글입니다. 후배에게 말하는 투로 되어 있습니다. 이해하시길...


1.

일반적인 경우에 흔히 철학적인 내용에 대해서 거론을 할 때는 중요한 난제들과 관련한 논변들을 위주로 따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서 깊이있게 따져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지면의 제약이 너무나 심하다. 대신에 나는 여기서 일반적으로 누구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가지 철학적인 문제가 현대의 철학사조 안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논맥 안에서 문제를 가지는가 하는 점을 가볍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렇게 다룰 수 있는 문제들도 여러가지 있겠으되 여기서는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대 윤리학과 그와 연관된 분야에서의 문제들을 다루기로 하겠다. 아마도 극히 개인적인 입장이나 생각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갈지도 모르니 미리 이해를 구해 두고자 한다.

 

2.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꼭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던져보는 물음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막상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독단적으로나마 확고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 문제의 겉 모양은 좀 다를지 몰라도 결국은 같은 문제로 생각되는 것, 즉 윤리적 당위의 객관적 근원은 무엇인가?-하는 문제가 역시 현대 윤리학에서의 난제로 주어져 있다. 사실 이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이 문제의 바로 앞에서 이 문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문제, 자유의지의 문제가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다른 많은 중요한 문제들이 또한 거론될 수 있겠으되 이 두 문제가 그래도 현대 윤리학, 즉 메타 윤리학에 있어서의 매우 핵심적인 두 문제라는 데에 대해서는 그리 큰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 두 문제들이란 도대체 어떤 내용의 문제들인지를 알아 보도록 하자.

논의상 자유의지의 문제가 앞서는 것이 순서이지만 직관적으로 문제가 발견되는 상례를 따라서 당위의 근원 문제를 먼저 다루기로 한다. 윤리적 당위의 객관적 근거에 대한 문제를 제일 처음 (논리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 이전까지의 일반적인 윤리학자들의 학설들에서 일반적으로 저질러지는 문제점들을 지적하였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윤리학을 이야기할 때 주장하였던 방식이 곧, 세계가 이러이러하고 인간은 이러이러하고 ... 그리하여 이러이러하게 살아야(행위해야) 한다라는 논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흄이 지적하고 나중에 무어가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로 정식화한 그 주장들의 문제점이란, 곧 단순히 "...이다"라는 내용을 내포한 사실명제들만 가지고는 "...해야 한다"라는 가치명제를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없다는 점을 무시하고 비약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돈을 훔치면 안된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를 "만약 모든 사람이 돈을 서로 훔친다면 사회가 혼란해지니까"라는 식으로 제시한다면 그는 단순히 "...이다" 형식의 사실명제들로부터만 돈을 훔치면 안된다는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사회는 혼란해지면 안된다"라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치판단 역시 다른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만 하는데 일반적으로 먼저의 경우에는 무한소급의 절벽에 다다르고 나중의 경우는 흔히 윤리적 가치판단에 대한 직관적 정당성이나 자명성에 호소함으로써 윤리적 상대주의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어느 쪽이나 윤리적 당위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상과 같은 내용과 관련하여 몇가지 다른 입장들이 있거니와 이모티비즘이라고 하여 윤리적 가치명제들이란 것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명이나 탄성을 발하듯이 감정을 표출한 명제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윤리적 당위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 회의주의적 입장이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가치명제를 사실명제들만 전제하고 논리적으로 연역하려는 몇가지 시도가 있기도 하고 그 중간적 입장-헤어를 중심으로 한 처방론자를 예로 들 수 있으리라.-을 견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다양성을 가진다 해도 이른바 윤리라는 도덕규범을 가지지 않은 시대나 사회가 명확히 존재한 것 같지도 않으매 윤리적 당위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 회의론은 별로 타당한 입장이 될 수 없을 듯 하며 지금까지 가치명제를 추론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중간적 입장은 실제적으로 객관적인 윤리적 당위에 대한 회의론의 다른 형태, 약한 형태일 뿐이다.

 

3.

윤리적 당위의 근거 자체도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비록 그것이 해결되든 그렇지 않든 자칫 그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 또 다른 선결 문제가 있거니와 그것이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좀더 내용을 파악하기 쉽게 표현할진대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라 할 수 있으리라. 그 내용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이러하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필연적인 인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의지의 존재라는 것은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즉, 우리가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우리 의지와는 관련없이 세계 안에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그러한 인간의 행위란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리고 윤리적인 책임의 주체인 자유의지란 것은 있지 않다...

예를 들어서 갑돌이가 돈을 훔쳤다고 하자. 그 때 갑돌이는 윤리적인 비도덕성에 대해서 문책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당하다고 갑돌이는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바로 위의 결정론의 입장이다. 만약에 갑돌이가 문책에 대한 답변으로서 세상의 모든 일은 인과적 필연성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비록 자신이 돈을 훔칠 것을 의지했지만 그 의지 자체도 역시 유전인자와 환경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상황에 있어서의 심리적인 인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는 따라서 만약에 책임이 있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보다는 그런 유전인자를 물려준 조상, 그리고 자신이 자라 온 환경, 심리적 작용 법칙 등에 물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러한 갑돌이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갑돌이의 주장의 전제 조건인 세계의 인과적 필연성이란 것은 또한 현대 과학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옹호되는 듯하며 비록 양자역학에서의 불확정성 등의 도피처가 남겨진다 하더라도 윤리적 자유의지를 옹호할 수 있기에는 충분한 요건이 되지 못하는 듯 하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의 발전은 인간행위의 인과관계를 또한 분석하고 있다.

이상의 난제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심신 이원론이나 세계의 인과적 필연성의 부정 등이 그 대표적인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도 다 그것대로 문제점을 가지고 있거니와 -그 문제점들은 각자 생각해보도록 하자- 핵심적인 것 한가지를 지적을 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약에 임의의 어떤 사람의 행위가 인과적 필연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그 행위의 책임은 앞에서 이야기된 바와 같은 이유 때문에 추궁받기 힘들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의 행위가 인과적 필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책임 추궁은 정당할 수 있느냐 하면 역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갑돌이가 돈을 훔친 것이 자신의 의지와 관련없이 우연적으로 행사된 것이며 또한 인간이면 누구나 다 그러하다할진대 누구를 탓할 수 있으리요? 뿐만 아니라 만일 갑돌이가 돈을 훔친 것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한 것이면서 갑돌이의 의지가 극히 우연적으로 그러기로 결정하였던 것이고 누구나 또한 그러하다면 또한 어찌 갑돌이를 탓할 수 있으리요? 이러한 진퇴양난의 입장이 현대 윤리학에 있어서의 자유의지와 관련된 난제이다.

 

4.

이상의 문제들에 대한 가장 속편한 해결책이란 아마도 윤리적 당위란 것도 없으며 인간의 의지란 자유롭지도 못하고 그래서 책임추궁이란 것도 모두 논리적 모순 속에서 남발되는 헛소리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또한 그렇게 속편하기만 한 소리일지도 의문스럽고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삶의 모습들과 관련해서 철학적 입장의 하나로서 바람직하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은 곧 결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별로 내키지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 속에 틀림없이 어떤 오류가 있으리라는 직관이 너무나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또한 이상의 결론이란 것이 하나의 철학적 결과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듯 하다는 것이다. 만약 철학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삶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할진대 그것은 우리의 삶 안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 문제를 논리적 오류라고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모든 윤리적인 문제, 가치평가의 문제를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삶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철학적 논변의 결론이 그 문제를 무시하는 이제 포기되어야 하는 것은 그 철학적 논변이지 철학적 논변의 토대로서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진리는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의 자가당착적 문제에 집착하여 진리를 내팽개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해서 우리가 반성적으로 관심을 가져볼 만한 문제로서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그와 관련한 언어의 본질문제가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진리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답하는 내용은 '참인것' '또는 실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 등으로 대답하는 입장이 있다. 다른 입장들도 있지만 이 입장이 우리가 처음에 문제의 시발점으로 삼았던 윤리적 당위의 근원에 대한 위기와 관련한 입장이며 또한 일반적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이므로 이 입장에 대해서 주로 검토를 하기로 하자. 이러한 입장에서 말하는 진리라는 것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주관이 있으며 그 사이에 둘을 매개하는 매개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매개체가 언어이다. 언어는 주관이 실재를 알 수 있도록 세계의 모습을 그린다.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서 타당하게 긍정되는 언어의 기능이란 것은 대체로 사물을 기술하는 기능 뿐이다. 그 외의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거나 잘못 말해진 것이다. 그것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럼 진리는 무엇이냐 하면 참인것, 정확하게 실재와 일치하는 것 등으로 기술될 수 있는 것 안에 있는 것이며, 곧 언어 안에 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언어가 없다면...? 진리도 있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실재만 있고 실재와 일치하여 참일 수 있는 그것이 없기 때문에. 강조하자면 진리란 것은 언어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좀 더 나아가서 문제를 생각하면 이러한 입장에 있어서 주관이란 시종일관 사물을 바라보는 주관이다. 곧 수동적이고 정태적인 주관이다. 그런데 윤리적인 주관이란 행위하는 주관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런 행위도 없는 곳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행위하는 주관과 관련하여서는 서술문보다는 또한 명령문이 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윤리적 가치평가를 내포하는 모든 문장은 명령문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와, 그 문제와 관련된 입장과의 불일치를 볼 때 알 수 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입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뒤로 하고서는 윤리적 당위에 대한 객관적인 논증, 특히 몇몇 철학자들이 시도하였다가 실패한 가치명제를 연역해 내는 논증 등의 모든 것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서술문만이 옳게 이야기될 수 있는 입장을 전제하고서 출발하는 것이며 그 때 결론으로서 가치명제가 나온다는 것은 곧 그 과정에 논리적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5.

지금까지 우리는 윤리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 문제의 맥이 어떻게 언어의 문제에까지 이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간략하게 그리고 일상적인 논의의 분위기로 살펴보았다. 물론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철학, 특히 영미철학에서 언어의 문제는 모든 철학의 문제와 함께 달리고 있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도 적은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심신문제가 그러하고 논리의 문제가 그러하다. 윤리의 문제는 인류사와 같이 내려온 문제로 알려져 있고 따라서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할진대 현대의 철학적 입장에는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수정이 가해져야만 할 것이나 그와 함께 지금까지의 성과를 최대한 건설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리라 본다.

나는 이 글을 주로 철학과 후배들이 읽을 것으로 알고 쓰거니와 이 글에서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는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자신이 가진 철학적 문제의 상호 연관성과 그 얼개 등을 아는데 다소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체적인 이야기도 주를 달고 엄밀하면서도 조심그럽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가벼운 분위기로 썼다. 그리고 줄곧 문제점을 지적하기만 했지 그에 대한 대안은 거의 말하지 않았다. 스스로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 글을 보는 후배들 각자가 나름의 생각을 발전시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듯 하여 그랬던 것이다. 앞으로 공통의 관심을 가진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가 있기를 바라고 현재의 내가 가진 해결책에 대한 비판에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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