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러브레터>(1995)는 1995년에 나온 영화인데, 나는 2002년에야 보았다. 비디오 빌려서 말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 보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드는 영화는 아니다. 나같은 남자라면 더욱 그렇다.

이 영화를 본 후의 느낌은 반대다. 상당한 명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영화의 기본 정석인 시나리오와 연출에 있어서 그러하다. 배우들도 일본 배우들로서는 그럭저럭 부족함이 없는 것 같고.

나는 영화에 대해서, 특히 영화 제작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러브 레터>같은 영화 시나리오는 그 자체가 기본 흥행을 보장한다."

한 편의 영화가 필요로 하는 재미와 감동을 위한 모든 요소들을 다 갖춘 영화라 할 수 있다.

또 달리 감정적으로 말한다면, "나도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 이런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

여기서 '쓰고 싶다'에 주의하길 바란다. '쓰겠다'라든가, 혹은 '쓸 수 있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러브 레터>가 왜 재미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면서 분석해 보았다.

그 분석의 기본 방법이자,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은, 철학적 반성이다.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적 사고의 핵심- 두겹의 생각"을 참조하거나, "철학의 본성과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참조하기 바란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언제 어떻게 어떤 재미를 느끼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형식화를 한다. '형식화'라는 어려운 말을 써서 좀 그런데, 생각을 정리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재미있다. 이현비의 "재미의 경계"라는 책에서도 지적되었는데, <러브 레터>의 이야기 구조가 <올드 보이>의 이야기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미리 말하건대, 여기서는 <올드 보이>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지만, 관객들의 흥미를 강력하게 자아내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 죽은 연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편지를 보낸 사람이 어떻게 하겠는가? 계속 편지를 보낸다. 설레임을 안고.

그 다음에, 영화를 보던 나는, 이 장면이 지지부진하게 계속될 줄 알았다. 좋은 소재니까.

그런데 곧 한 쪽에서 묻게 된다. (당연하다.)

"누구냐 넌?"

(<올드 보이>스럽다. 하지만 이 대사가 <러브 레터>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_-)

상대가 죽은 연인(후지이 이츠키)이 아니라 그냥 동명이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상대방에게 같은 반 동명이인 친구였던 자기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어릴 적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 반에서 놀려댄 이야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넘겨 짚고 장난치던 이야기들. 도서담당 선출의 이야기 등이 그 핵심이다.

결국 도서담당으로 선출된 두 사람은 도서관에서 일하지만, 남자애는 일은 안 하고 맨날 책을 빌려서 자기 이름을 도서 카드에 적는다.

이 과정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기 연인이 중학교 때 동명이인 친구랑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했다고 생각하고, 연인이 죽은 겨울산으로 찾아가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한편 러브 레터를 주고 받는 상대방은, 그 동안 앓던 감기가 심해져서 위험에 처하고 눈보라 속에서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여기서, 영화를 요약한 나의 이야기에 중요한 부분이 빠졌다. 어쨌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떤 장면인지 알게 될 것이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을 말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 장면은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서도 영화를 직접 보았을 때의 감동은 충분히 남겨야 할 테니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와타나베 히로코)이 자신의 편지를 모두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돌려주면서 '이 편지의 추억이 당신(여자 후지이 이츠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전에 먼 산을 향해서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요?)를 외쳐대는 여 주인공의 유명한 장면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컨대 그 장면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영화 이야기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장면은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다. 맨 마지막의 결정적인 장면과 함께.

그 장면에 대해서 말하자면,

"가슴이 아파서" (사실은 스포일러 안 하려고) 그 장면을 여기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장면은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관객으로서 가슴 저미게 동감이 된다.

초등학교 시절이든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시절이든, 어린 시절에 이성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야기의 상황도 그렇고, 배경 음악이나 연출도 적절하다. 연기도 나쁘지 않고.

그만큼 전체적으로 연출이 훌륭한 영화이다.

일본 영화에서 흔한 '가식'과 만화영화 같은 '감정의 과장'이 거의 없다. 자연스럽다.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 영화 중간의 주요 장면들에 대한 연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고 보면 위의 예고편 동영상에는 이 영화에서 연출이 뛰어난 장면들은 모두 모아 놓았다.

병원에서 졸면서 기다리다가 의식에 떠오른 장면, 자전거타고 가다가 돌아보는 장면, 동명이인 후지이 이츠키를 만나러 와서는 집 앞에서 편지를 쓰면서 기다리는 장면 등.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로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는 나의 세속적인 욕망으로.

그래서 이런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러브 레터>와 <올드 보이>가 이야기 구성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두 영화의 이야기가 구조가 형식적으로 같다는 말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발전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 많은 경우에 성공 사례를 따라하는데, 그 때 정확히 우리가 하는 것은 동일한 형식을 따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형식적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여전히 설득력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따라한다면 어떨까?

나도 <러브 레터>처럼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그 내용을 따라 한다면? 나도 '죽은 연인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오는 이야기'를 따라해야 한다.

뭐, 만든 나는 만족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욕을 할 것이다. 다른 영화 표절했다고 말이다.

<러브 레터>처럼 좋은 영화를 만든다 - 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내용을 따라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언가를 따라 한다는 것은 대부분 어느 경우든지 형식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다.

-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

이 속담이 뜻하는 바도 똑같다. 사과 하나에 사과 둘을 더하면 사과 셋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는 이것이 바나나, 복숭아, 더 나아가서 모든 물건에 적용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잘 하고 싶을 때, 그래서 어떤 것에 대해서 바르고 정확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결국 형식성에 도달한다.

형식성은 이데아이고, 이것을 다루는 것이 추상적인 생각이다.

추상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철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재미는 없지만 말이다.

철학은 재미가 없다...

와타나베 히로코님,

가슴이 아파서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_-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