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1탄.

영화와 철학을 연관시켜서 논의하고 설명하는 것이 하나의 강력한 '붐'이 된 계기는 영화 <매트릭스>가 상영된 이후인 것 같다.

<매트릭스>를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는가? 아마도 인상적인 액션 장면들이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매트릭스> 1탄의 첫부분을 장식했던, 트리니티가 뛰어오르는 장면...

혹은 문지기 프로그램이 총알을 피하는 장면,

그리고 그보다 더 유명한,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

하지만 <매트릭스>가 유명한 것은, 그리고 아마도 사람들을 '재미'로서 매혹시키는 것에 있어서도,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철학적인 것들 때문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매우 철학적인 영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물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매트릭스>에서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글에서 나는 바로 그것을 설명해 볼까 한다.

<매트릭스>의 어떤 점이 철학적인가? <매트릭스>는 그 사건의 구조와 대사가 모두 철학적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영화 속 '사건의 구조'가 철학적이라는 것에 개인적으로 매우 큰 점수를 준다.

여기서 "철학적이다"라는 것, 어떤 점에서 철학적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트릭스>와 비교해서 말하자면 별로 철학적이지 않은 영화를 사람들은 "철학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은 <인셉션>이 철학적이라고 하더라.

<인셉션>?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인셉션>이 철학적이라는 데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마음 속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서, 종횡무진 상상의 나래를 편다고 모두 철학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상상력은 어떤 점에서 철학과 연관되지만 정확히 철학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철학적"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먼저 말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비판적인 사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특히 당연하게 생각하는 어떤 사고방식에 대해 의심해 보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는 바로 이렇게, 우리가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할 때 당연하게 가정하는 것을 의심하는 생각 자체가 세계관으로 되어 있고, 또 이야기 속의 갈등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비교해서 <인셉션>에서는? 생각과 기억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을 혼동시킬 수 있다는 것 이상의 것이 없다.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어떠한가? 그것은 다음의 장면에서 인상적으로 시각화된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세계상은 이렇다. 보통의 인간은 20세기 후반의 평범한 지구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사실은 기계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인간을 사육하고 있는데, 기계는 이런 인간의 사육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인간의 두뇌에 적절한 전기자극을 가하여, 실제로는 캡슐 안에서 사육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일상생활 속에서 달리고 웃고 먹고 활동하는 착각을 정교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기계들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그 속에 주인공이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소하고 다른 하나는 중요하다.

첫째, 사소한 것이 더 친숙하다. 이런 사고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의 과정에서 일찍이 '꿈'으로 표현된 적이 있다. 꿈 속에서 괴물을 만나면 우리는 무서워하면서 피한다. 그것은 그것이 진짜 괴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어보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꿈에서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지금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혹시나 꿈이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이렇게 데까르트 철학의 핵심적인 물음과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그래서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이것은 사소하다.

왜 사소한가? 어떤 철학자의 생각이, 혹은 어떤 철학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 영화 내용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서 철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정' 철학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 '중요한' 이유로 넘어간다.

둘째, <매트릭스>의 세계관이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 제시되는 것과 같이 생각하든, 혹은 데카르트와 같이 '꿈'에 비유해서 생각하든, 우리 자신이 "이것은 당연히 옳지(예를 들어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 같은 것)"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정말 그런가?" 내지는 "왜 그렇다고 믿을 수 있는가?"라고 의심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이다.

혹시나 노파심에서 강조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의심해서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해 보는 것'이다. 의심해 보고, 그런 믿음이나 생각이 옳다는 이유를 찾아서 그대로 다시 믿는 것도 중요한 철학의 한 부분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의심했기 때문에 거부하기만 한다면 '철학자'가 아니라 '미친 사람' 된다. -_-;(이와 관련해서 "비판적 사고란 무엇인가"를 보라.)

<매트릭스>는 3편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는데, 적어도 2편까지는 각 작품에서 중요한 2개의 철학적 물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매트릭스> 1탄에서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물음이 그것들이다.

먼저 인식론적 물음. 그것은 지금까지 여기서 설명한 것이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상식들이 정말 모두 거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이다.

둘째는 존재론적 물음이다. 그것은 "진정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이것은 진실을 보고 나서 네오가 매트릭스 안으로 다시 들어온 후 모피어스에게서 설명을 들을 때, 모피어스의 대사에서 전형적으로 설명된다.

- 모피어스: 뭐든지 이 안에서 로드할 수 있지.옷, 장비,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우리가 필요한건 전부 다. - 네오: 우리가 지금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 있다구요? - 모피어스: 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이나 잭도 없어. 머리모양도 다르고... 지금 자네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화 한 거지. - 네오: 이건... 이건 실제가 아니죠? - 모피어스: 그럼 무엇이 실제일까? 자네는 실제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 내리지?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단순히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여기서 밑줄 친 대사가 지금 설명에서 가장 핵심적이다. 상황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 이해할 것이다.

이 설명은 철학 강의에서 그대로 써도 될 만큼 정확하고 교과서적이다. 철학전공자 입장에서 '잘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교과서적인 문장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들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야기 구성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존재론적 개념은 다시 네오가 예전자 오라클을 만나러 갔을 때 다시 강조된다. 언제? 숟가락을 구부리는 아이를 만났을 때 말이다. (이 부분은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에서 헤겔 철학을 설명하면서 말했듯이, 선불교의 예화와 관련지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2011년) 가장 철학적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매트릭스>1탄의 맨 마지막 대사이다.

네가 거기 있다는걸 안다.
이젠 느낄 수 있지.
네가 두려워한다는 것도 안다.
우리가 두렵겠지.
넌 변화가 두려운 거야.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난 어떻게 끝나는지를
말하러 온게 아닌건 확실하다.
난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말하러 온 것이다.
이제 난 이 전화를 끊을 것이고,
네가 보여주기 싫어하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
나는 네가 없는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규칙과 통제가 없는 세상.
국경과 구속이 없는 세상.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을 말이다.
그 후의 일에 대해선,
네 선택에 맡기겠다.

왜? 어떤 면에서 소크라테스적이지 않은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앎에 대한 반성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반대로는 단지 앎에 대한 반성일 뿐인데도 거기에는 많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

<영화로 읽는
서양철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