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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들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자기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는 싶지 않은 자랑거리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도 그런 것에 대해서 얘기를 늘어놓고 싶다. 음... 하지만, 남의 자랑거리를 시시콜콜 듣고 있는다는 것은 대체로 재미없고 따분한 일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흔히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사람은 항상 상대가 자기만큼 재미있게 들어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바라기 때문에, 그것도 절실히 바라기 때문에, 대체로 상대도 재미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우를 나도 범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변명을 하자면,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나와 인간적으로 마주 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따분함을 느낄 때는 즉시 마우스를 딸깍거림으로써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아무도 이 란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듣는 사람없이 혼자서 자기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일을 하는 셈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 김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 놓고 싶은 자랑거리가 지금부터 하고 싶은 얘기이다. ^^

만약 여러분이 혹시 아이들을 좋아한다거나, 혹은 한국의 태권도가 외국에서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나의 민망스런 자랑이 덜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2001년 2월의 시간으로 간다.

본론을 먼저 꺼내자면 내가 그 2월에 만났던 포르투갈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거기서 만난 아이들(지금 왼쪽 사진에서 보는 아이들이다.)이 얼마나 예뻤던가 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얼마나 나를 좋아했던가 하는 것- 그것을 여기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2001년 2월에 난 원래 포르투갈에 볼 일이 있어서 유럽엘 간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그 친구는 한번도 본 적은 없었고, 다만 인터넷을 통해서만 친분을 가졌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의 책을 스페인어로 다 번역했기 때문에 그 출판 문제를 상의하러 바르셀로나에 간 것이다.

한 동안 한국을 떠나있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메일을 주고 받던 여러 친구들(외국의 친구들 포함)에게 사정을 알렸다. 그랬더니 포르투갈에 있는 "페르난도"라는 분이, 포르투갈이 바로 스페인 옆이니 일정을 조절하여 와서는 태권도에 대해서 세미나를 같이 하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1차적으로 포르투갈에 들른 후 바르셀로나엘 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나의 천사들을 만난 것이다.

위의 사진은 그 아이들 및 부모님들과 같이 쇼핑을 하다가 맥도날드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맨 왼쪽의 여자 아이가 "까따리나", 페르난도씨의 큰 딸이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는 두 여자 아이는 "알렉산드라"와 "수잔나"이다. 이 두 아이는 쌍동이이고 페르난도씨의 딸들인데, 나는 결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생겼고, 그리고 너무너무 예뻤다. 맨 오른쪽에 있는 남자 아이는 "안드레"인데 태권도 사범님의 아들이다.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이 아이들이 모두 너무너무 예뻤고, 또 나를 너무너무 좋아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나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나를 잘 따르는 경우는 몇번 있었다. 하지만 까따리나, 수잔나, 알렉산드라, 안드레의 경우는 좀 특별난 정도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저 사진 속의 모습을 봐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포르투갈어만 하고 영어는 거의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포르투갈어는 완전 깡통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거의 안된다고 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눈짓과 몸짓이 전부였다. 게다가 외국인인 나에게 아이들이 쉽게 호감을 갖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국의 경우에도 내가 아이들을 꼬드기는 방법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화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이 뭐야?^^" "나이 몇 살?^^" 정도의 얘기는 해야 아이들을 꼬드길 수 있는 것이다.

몇가지 추측이 되는 이유가 있기는 있었지만, 어쨌든 알 수 없는 행운으로 인해 나는 포르투갈에서 지낸 열흘 동안 나는 행복에 겨워 죽는 줄 알았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낙원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너무 많지만, 모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일지도 모르므로 별로로 란을 만들어서 하기로 하겠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나의 유치한 자랑을 더 듣고 싶은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혹은 나처럼 포르투갈에 가서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다면 ) 다음 페이지를 읽기 바란다.

포르투갈의 천사들


포르투갈에서의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자.

포르투갈에서는 아이들만 나를 좋아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나에 대해서 무척 친절한 호감을 표시하고, 여러가지로 정성을 다해서 나를 대접해 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모두 태권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이었고 내가 태권도의 나라 한국에서 온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태권도 사범이었던 것이다.

그 곳 시각으로 밤 10시쯤에 리스본 공항에 도착했다. 그 때 난 가슴이 조금 두근그렸다.

2년 전 후배 한명이랑 유럽 배낭 여행을 할 때가 생각났다. 그 때 난 여러가지로 준비를 했지만 기대만큼 훌륭한 여행을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현지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해 보지도 못했고 각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지도 못했었다. 본 것이라곤 거리거리의 건물들과 박물관들 뿐이었고, 먹은 거라곤 대부분 햄버거와 피자 뿐이었다. 이국적인 정서와 문화를 경험할 수 없었다. 그 때 난 혼자서 속으로 다짐했었다. 미래의 내가 다시 유럽에 올 때는 배낭여행 때와 같지는 않으리라고. 미래에는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평범한 배낭객에 머물지 않고 이곳 사람들과 사귀고 무엇가를 가르쳐주고, 마음 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그 사람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 그리고 2년이 채 되기 전에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리고 동서양의 큰 문화적 차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쉽게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오자, "Mr. Blue"라고 쓴 피켓을 든 남자 두분을 볼 수 있었다. 페르난도씨와 태권도 사범님인 파울로씨였다. 우리는 그 늦은 시간에 자동차를 타고 2-3시간을 달리며 리스본으로 갔는데, 자동차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태권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그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나는 거침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대답을 신뢰했고, 나에 대해서 엄청난 호감을 표시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내가 도착하던 날 오랫 동안 내리던 비가 그쳤었는데, 그들은 내가 햇빛을 가지고 왔다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첫날은 호텔에서 잤지만, 다음날부터는 포르투갈 분들의 가정집에서 잤다. 그들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호텔이 아닌 가정집에서 지내기를 권고했는데, 그것으느 내가 그렇게 바라던 바였다. 태권도 사범님인 파울로씨와 페르난도씨, 그리고 필립씨, 세분이 서로 친한 친구분들이었는데, 처음에 나는 필립씨 집에서 지냈고, 그 다음에는 줄곧 파울로 사범님 댁에서 지냈다. 페르난도씨 댁에서는 자지 못했는데, 그 때분에 까따리나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위 사진들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페르난도씨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 사진에서 나랑 같이 선 사람이 각각 필립씨와 파울로씨이다.

사진들에서 보듯이 나는 그 곳에서 포르투갈의 전형적인 음식들을 맛보고 와인(포도주)도 종류별로 맛을 보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유혹이다. 그 때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현재를 깜빡깜빡 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꿈꾸었던 것이 그렇게 빨리 성취될 줄은 몰랐다.

사실 나는 포르투갈에 도착하기 직전까지는 나름대로 많이 긴장을 했었다. 혼자서 하는 외국여행이었고, 안면있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그래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고립무원"의 장소)으로 가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태권도를 비롯한 무도의 세계라는 것이 그렇듯이, 막상 사람들을 만나서는 실력으로 서로 인정받지 못하면 초라해지기 십상인 것이다. 물론 선배님들로부터 포르투갈 사람들의 정서가 한국이랑 비슷해서 인정이 많고 친절하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은근한 우월감정, 그리고 서양 사람들이 대체로 신체가 더 크고 근육이 더 발달해 있어서 완력으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을 쉽게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어떻게 나의 실력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이모저모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었던 것이다. 잘못해서 "별 것 아니군!"하는 인상을 주게 된다면 나 개인의 망신도 망신이지만, 태권도의 나라 한국의 이미지도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기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곳 사람들은 거의 존경에 찬 눈빛으로 나를 대했고,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상대방을 기세로 제압하기 위해서 맛뵈기로 한 명을 한 방에 눕혀야 한다든지 등의 필요성은 전혀 없었다. (지금에라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미안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니까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저녁 포르투갈의 고급 음식점에 가서 최고의 요리를 맛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곳 가정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서 여러 가족들과 함께 푸짐한 저녁 식사를 먹었다. (오른쪽의 사진은 페르난도씨 댁에서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하던 날의 모습이다. 저녁 식사 후 후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때의 모습이고 내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 때문에 초기에 서로 간에 사소한 불화까지 생기기도 했었는데, 그 까닭은 그 곳에서 태권도 도장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나에게 자기 도장에서 태권도를 지도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 조정된 것인 줄 알고 무조건 허락했고, 또 내가 그 곳에 간 까닭은 태권도를 지도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일정들이 돌발적으로 제시된 것이었기 때문에 조정하는 와중에 사소한 마찰이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얼마나 감격할 만한 일인가?

당시 나의 많이 어려 보이는 외모와 왜소한 체격 등을 고려하면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 노심초사했던 나로서는 감격에 감격을 더했던 일들이었던 것이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오전에 태권도 수련을 하고 점심을 먹으로 갈 때였다. 학생들이 많은 대학 식당으로 갔는데, 내가 사람들과 걸어가자 학생들이 날 보고는 자기들끼리 "꼬레아누, 꼬레아누"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걸 또 페르난도씨가 웃으며 내게 얘기를 해 주었다. 글쎄... 이것이 뭐 대단하냐고 그럴지 모르지만, 내가 1999년에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어느 나라서든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Chinese or Japanese?"라고 물었다. 한국이란 나라는 그들의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한 20-30년 전쯤에 한국 사람들이 백인만 보면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2001년 2월의 어느 때, 20세기 초 세계 열강 중의 하나였던 포르투갈의 한 도시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 못지 않게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었던 것이다.(나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지만...^^)

내가 떠날 때에도 나에게는 매우 감격적인 몇가지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먼저 까따리나가 (아, 그 귀엽고 예쁜 까따리나가^^) 내가 1주일만 머물고 떠나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하면서 다음에는 꼭 2주일 이상 있어야 한다고 투정을 부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원래는 8일만에 떠날 계획이었는데, 포르투갈 사람들이 비행기 표를 사 주는 바람에 이틀 더 머물러서 10일 동안 있었다는 것도 자랑거리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약속이 정해져 있었고, 그 곳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기차로 2일 이상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페르난도씨가, 자기들이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 준다면 이틀 더 머물 수 있느냐고 제안했던 것이다. 이틀이나 해야 하는 길고 힘든 기차 여행을 줄이는 것도 반가왔지만 그 보다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호감을 가져주는 그들에게 정말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그 때는 지나치게 감사를 해서, 즉 겸손이 지나쳐서 오히려 실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느라고 다소 무덤덤하게 감사하다고 말했었다.)


지금까지 나의 자랑거리를 떠벌렸는데... 끝까지 읽은 분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몇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외국인들과 교류하기 위해서 영어를 배우고, 또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런 것은 기본적인 정도만 하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지금 당장 태권도를 하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문화에는 태권도 말고도 많이 있다. 유교도 있고 불교도 있으며, 무속신앙도 있고 국악도 있고 탈춤도 있다. 김치나 한국 요리도 좋다.

그리고 영어는 기본이다. 이것에 대해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노력만 제대로 한다면 어렵지 않다. 여러분이 정말 좋은 의도로 한국을 외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3달 정도만 노력해서(물론 집중적으로) 외국인과 필요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1달만에도 가능하다.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외국인들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대체로 한국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더라도 그들의 것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일본이나 중국의 것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에게서 듣고 신뢰하고자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의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잘 아는 것보다도,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면 충분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미국에서 온 사람이 한국의 민속에 대해서 잘 알고 얘기를 하면 "대단하다!"라고 감탄은 하겠지만 여러분은 그들의 이야기에 크게 신리를 하거나 관심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한국의 민속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미국 사람이라면 우리가 모르는 그들의 것에 대해서, 우리가 흥미를 느끼도록 얘기하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갈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많다. 내 주위의 몇몇 학생들은 그것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것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시켜줄 수가 없었다. 외국에 나가서도 이것은 통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의 것만 떠받들지 말고, 그렇다고 배격하지도 말고, 다만 동등하게 서로 가르쳐주고 배울 수 있는 자세와 준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이긴 한데... 쓸데 없는 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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