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하나
이 책은 정치현상 전반에 대하여 총체적 일관성을 지니는 보편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씌어 졌다.
이 책의 제목은 「생존의 소묘」이다. 제목이 의미하려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하나의 그림으로서 제시한다. 그 그림은 내 눈에 비친 인간행위의
다양한 모습이고 따라서 나의 주관성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만-그런 의미에서 이 내용은
구성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본모습은 사실 자체에서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둘
내가 이 책을 쓴 직접적인 까닭이 기존의 정치학 전반에 대한
나름대로의 불만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솔직한 고백이리라.
하나의 이론은 보편적 이해기준을 제공하는 논리체계 위에서 구체적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조건에서 자체의 완벽성은 예측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함축할
것이다. 내가 접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정치학설들은 이념적인 것이거나 현실, 즉 사실에 대한
서술적인 설 명체계, 또는 현대의 정치현상에 대한 제약된 효용성을 가지는 논리체계들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정치현상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구분되는 사실들에 대해서 일관된
설 명을 하는 이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나의 요구는 현상에 대한 이론에서의 보편성, 필연성,
상호관련성의 3가지로 요약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일부의 사람들이 나에게 동감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나의 요구와 불만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리라. 여기서
나는 이 문제, 즉 나의 불만의 원인과 그 정당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셋
정치현상의 대부분, 아니 어쩌면 전부가 그 현상주체인 인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러할 때 우리는 정치현상을 논의하는 광장으로
나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문으로서 하나의 커다란 철학적 문제에 부딪힌다.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떠한 존재인가? 이 문제는 곧 다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을
파생시킨다. 더 이상의 문제는…? 적어도 우리의 단순한 직관에 의할 때, 없다.
이상과 같은 간략한 논의는 두가지를 결정한다. 하나는 정치현상에
대한 앞에서의 세가지 조건, 즉 보편성, 필연성, 상호관련성을 만족하는 이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대답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금의 것과
같은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의 출발점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까닭으로 나는 이 책에서 나름대로의 일관된 관점에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고 파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원래 전적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고자 쓰여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논의는 인간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만을 가능한 간략하게 다루었고 또 인간에 대한 논의는 나중에 설명할 사회와 정치현상을 이야기하기
위 하여 요구되는 사항들을 기준으로 다루었다. 이상과 같은 문제, 즉 세계와 인간에 대한
문제 는 철학사 안에서 워낙 많이 다루어진 것이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므로,
나는 나의 주장을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주장들로부터 직관에 의해 연역하거나 추론해 내는 방식을
취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들의 간략성은 또한 주장들의 허술성을 수반한다는 것 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내가 모든 사유를 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그 기본적인 입장으로 삼은 것은 동양철학적 입장이며 특히 한국 철학적 입장이다.
넷
내가 바라보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세계와 분리된
자체적인 인간의 본질적 측 면이나 특정한 측면에서의 다른 존재에 대한 우월한 모습이 아니라
정치, 사회현상들, 더 나 아가서 세계와 관련한 모든 인간행태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한 선행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인간의 객관적인 모습이므로 그 주장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 적 사유의 특성을 강조하는 평면적이고 정태적이며 제한된 모습에 주어지지 않고
원래 총체 적으로 지향적 존재로서 주어졌다는, 입체적이고 동태적인 모습에 주어진다. 그리고
출발점 으로부터 논의를 진행하여 나는 현대의 철학적 논란거리 중의 하나인 생명의 문제와 마음과
몸의 문제 등에 대한 새로운 입장을 천명할 것을 시도하였다.
확실히 본문 첫부분인 인간의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철학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또한 그 러한 철학적 난제들을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윤리 적 당위의 근원과 기억이라는 인간의 인식과정, 그리고 어떻게 착각이 가능한가
하는 등의 문제는 윤리학, 인식론 등에서의 중요 문제들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 위에서도
인정한 나 의 주장들에 대한 빈약성은 또다른 논의의 기회에 충분히 보완되리라.
다섯
두번째 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의 시도는 기존의 정치학설들에
대한 불만과 그 한계성에 대한 반발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존의
학설들을 모두 거부하 거나 그 가치를 부정하고자하는 것임은 아니란 것도 강조하고 싶다. 나의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에 더 가깝다. 즉 기존의 많은 학설들의 타당한 부분들을 모두 살릴
수 있도록 그 바탕 을 마련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기존의 학설들이 암암리에 전제하는 내용들의 허실을 살피고
그 내용 자체의 한계와 전제의 타당성을 파악한 후 그 토대들의 조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 업의 연장은 구체적 현실의 설명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책에서의 내용은 당연한 명제들을 다시 언급하고 그 논리적 정당화와 그들의 상호연관성을 확인하는
것에 치 중하며 개별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는 좀 소흘하다. 나 혼자의 생각은 그러한 설명의
많은 부분이 다른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으므로 나의 작업의 목표에서는 1차적으로
제외되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을, 다양성보다는 공통성을,
그리고 임의성보다는 불변성을 그 특성으로 가질 것을 지향한다.
여섯
이상에서 이야기한 대로 그 내용을 전개하고자 할진대 그 성격상
논리적 타당성과 정합성의 요구는 필연적이다. 여기에서 내가 논문의 내용들을 서술할 때 사용한,
비트겐슈타인의 TRACTATUS의 서술방식을 빌어서 응용한 방법의 필연성이 생겨난다. 단순한
문학적 표현 과 낱말의 힘만으로는 그 논리적 얼개를 정연하게 객관적으로 밝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도로 생각된다. 더군다나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때 생겨날 언급의 많은 부분은
불필요 하게 주장들의 분량을 증가시키고 주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방해하리라.
반면에 숫자표기를 병행함으로써 나는 다음의 유용성을 얻는다.
첫째로 주장들의 논리적 구 성을 정연하게 배열할 수 있고 설명대상인 정치현상 자체의 상호인과적
연관성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으며, 둘째로 반복이 불필요한 부분은 괄호 안의 문장번호로써
반복을 회피하 여 기존 주장과 새 주장을 명확히 구별하고, 셋째로 전체적 주장의 진행을 수월히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결과로서 이 책에서의 논리적 구성은 숫자들의 사용으로 그물식 구성을
이루었다.
아울러 그러한 설명체계는 내가 관련서적을 많이 인용할 수 없다는
개인적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주장을 함에 있어서 그 주장의 근거는
다른 학자의 권위 에 의하지 않고 논리적 구조의 권위에 의지하여 주장의 타당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일곱
정치현상을 수량화하여 수학공식 등을 통한 수학적 체계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회의적인 것으로 안다.
사회과학 중에서 수량화되어서 수학적으로 설명되는 유일한 학문은
경제학임을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두는 경제학이 수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까닭을
경제활동의 중요 한 도구이며 지표이기도 한 화폐가 이미 양화된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의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화폐의 운동에 의해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분명히
정치현 상에는 경제현상에서의 화폐와 같은 양화된 체계로서 인간의 활동을 반영하는 도구와 지표
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정치현상은 수식과 같은 수량화된 논리체계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음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개인적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정치현상도 수식과 같은 양화된
논리체계에 의해서 설명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원래 이 책은 그러한 시도의 준비단계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즉 내가 생각하기로는 수식적 설명체계 이전에 일단은 수식을 통해서는
아니더라도 일관된 설명체계가 선핸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애초에 수식에 의한 설명을 시도한 사실의 잔재는 본문에서 몇몇
찾을 수 있다. 이렇나 부 분들에 대한 반론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그 시도들을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떤 사건 C가 변수 A와 B 의 함수이다"라는 주장은 "사건 C는 적절한
이론적 조작에 따라서 변수 A와 B에 의한 수 식 C=k×A×B에 지배된다"라는
주장보다 적은 반론에 부딪히겠지만 또한 동시에 설명으로 서 적은 의미를 지닌다. 이 때 학자적
양심은 나름대로의 신념을 기준으로 둘 중의 어느 하 나만을 택할 수 있을 것이며 두번째의
선택은 정치현상을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노력의 한걸음에 해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의 내용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타당하다고 인정받는다면
내가 다음 기회에 정치 현상을 수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가 객관을 파악하는 내용의 객관성이 확인되었으므로 나머지는 그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 그림은 수식으로 칠해져서 안될 까닭이 없다.
여덟
이 글은 생존에 대한 소묘이다. 따라서 모든 구체적인 정치 현상들에
대한 설명체계로서 자 세한 변수들과 그 관계들이 고려되지는 않았고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변수들을 중심으로 어떤 필연성의 탐구에로 노력이 집중되었다. 이제 만약 이 책에서
이야기되는 내 용들이 다 옳다고 하더라도 방금 언급한 문제들이 남겨진다. 또한 전체의 주장들이
보다 확 고하게 서기 위해서는 첫부분의 철학적인 명제들의 엄격한 정당화는 반드시 요구된다.
이 문제들도 이제 다음 기회로 남기기로 한다.
만약 나의 이론이 정치학의 발전에, 그리고 한국의 많은 학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나의 노력이 결코 헛수고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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