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3.4. 폰라이트와 메르디쓰, 프라이어의 가능세계 의미론에 대한 평가

폰라이트와 프라이어가 양상 논리의 발전사에서 성취한 것으로서 우리는 가장 먼저 양상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확장시켜서 그 다음의 학자들에게 PWS을 다양한 양상들에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폰라이트는 포괄 양상 체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분명히 하였고 이를 토대로 프라이어는 시제 논리에 기초한 양상 논리 체계를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PWS에 있어서 프라이어가 많은 발전적 발상들을 제공하였다.

이 점은 PWS의 발전사를 조망하는 여러 학자들이 별로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서 코플랜드[2002]와 골드블라트[2003]가 공히 폰라이트를 다루지만 PWS의 전체 발전사를 평가할 때에 빠뜨리는 부분이고 발라린(Ballarin[2005])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아마도 폰라이트 자신은 PWS의 발전에 있어서 그 형식적 의미론의 발전에 대한 직접적인 기여는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폰라이트는 “양상의 연구는 논리적 증명의 연구와 연관되며 따라서 수학의 기초(foundations)와도 연관된다”(von Wright[1951], 4쪽)라는 견해를 피력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는 양상의 이해의 문제를 모형이론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초점을 모으는 PWS의 발전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카르납 이후, 그리고 크립키 이전의 단계에서 폰라이트보다는 메르디쓰와 프라이어의 연구에서 더 많은 성과들을 찾게 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폰라이트 자신이 구문론적 연구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더라도 이 논문에서 필자가 초점을 맞추는 어떤 부분은 PWS의 발전사에 중요한 기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므로 의미론적 맥락에서도 분명히 평가하는 것이 옳다.

한편 1956년에 쓴 메르디쓰와 프라이어의 1쪽짜리 짧은 자료는 명제 양상 논리에 대한 가능 세계 의미론의 핵심 요소들을 포함한다.(Copeland[2002], 115쪽) 비록 거기에 가능세계적 해석은 결합되어 있지 않았지만, 형식체계로서 그 내용을 고찰하면 명제 양상 논리체계의 중요한 생각들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물론 메르디쓰는 의미론적 고찰을 구문론적 고찰과 구분해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차 술어적으로 표현된 -연산은 분명히 의미론적 고찰이다.

다른 한편 PWS의 발전단계에서 카르납 이후에 프라이어가 기여한 바는 상세한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상세히 나열하면서 평가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라이어는 가능세계의 집합들을 모형에 명시적으로 도입하였다. 불과 세저버그(Bull, R.&Segerberg, K.,[1989])가 이 점을 강조하는데, 프라이어는 카르납 모형 <��,>에서 가능세계들의 비명시적인 집합이었던 사태기술들의 집합 ��를 시점들의 집합을 나타내는 특별한 집합 ��로 대체한다. 그리하여 “프라이어 모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구조 <��, >를 구성하게 되고 새로운 연산자들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인 경우 그 경우에만 ,

  인 경우 그 경우에만 .

둘째, 프라이어는 카르납의 정렬되지 않은(unordered) 가능세계들(실제적으로, 사태기술들)의 집합을 정렬된 가능세계들(실제적으로, 시점들)의 집합으로 대체했다.(Bull.&Segerberg[1989]) 그리고 정렬된 가능세계들의 집합은 곧 가능세계들의 2항 관계에 대한 형식화와 결합된다.

앞에서 언급된 가능세계(시점)들의 명시적 집합을 모형에 도입하는 것과 더불어서 가능세계들에 대한 2항 관계를 결합하는 프라이어의 의미론 체계는 크립키보다 수 년 앞서서 명제 양상 논리에 대한 PWS의 결정적 요소들을 발명한 것이다. 이것은 PWS의 발전사에서 불과 세저버그[1989] 및 코플랜드(Copeland[1996], 10쪽)가 공히 매우 중요하게 평가하는 부분이다.²⁸⁾

셋째, 앞에서 언급된 첫째와 둘째 성과로 인해서 프라이어는 메타언어적인 차원에서 이해되던 양상을 대상언어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이에 따라서 형식적인 의미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양상을 최초로 의미론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한 카르납은 메타언어적인 차원에서 양상을 정의했었다. 하지만 프라이어는 “p임이 이다”라는 일반 양상 형식을 갖는 모든 문장들에 대해서 메타언어적 분석을 만족스럽게 제시할 수는 없다고 확신하였다.(Copeland[1996], 8쪽)

넷째, 프라이어는 폰라이트와 함께 중첩된 양상성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에 대해 충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카르납은 사태기술들의 집합에 기초해서 양상을 메타언어적으로 이해했는데, 이런 방식에는 중첩된 양상성에 대한 해석을 분명하게 형식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 폰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혼합된 양상의 문제와 관련된 것은 중첩된(super-imposed) 혹은 고차 양상의 문제들이다. 특정 명제가 필연적, 가능적, 혹은 불가능적이라는 명제는 다시 필연적이다, 가능적이다, 혹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질 수 있다. 그러면 이 둘째의 그리고 고차의 양상들이 첫 번째 양상들로 ‘환원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환원성의 문제) 예를 들어서 필연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단순히) 필연적인 것과 같은가? 가능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단순히) 필연적인 것과 같은가? 이 문제들과 유사한 문제들이 악명 높게 불투명(obscure)하며 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에 대해 제시한 답들은 심각하게 다양하다.(von Wright[1951], 3쪽)

프라이어는 현대의 PWS에서 가능세계들 간의 접근가능성 관계에 대응할 수 있는 시점들 간의 U-연산을 통해서 중첩된 시제 연산자들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메르디쓰와 함께 개발한 이 U-연산은 그 형식 체계에서의 의미론적 함축은 PWS에서의 접근가능성 관계 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하여 중첩된 양상이란 시점들 간의 선후 관계가 중첩된 것으로 이해되었고 이는 후에 가능세계들 간의 접근가능성 관계의 중첩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폰라이트와 프라이어의 성취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포괄 양상의 체계에 대한 입장 역시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포괄 양상 체계를 구성하는 여러 계열의 양상들은 유비에 의해서 서로 연관된다. 그리고 이 유비의 근원에는 두 가지 직관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양화적 유사성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유사성이다. 양화적 유사성은 폰라이트[1989]가 자서전에서 말했듯이 각 계열의 양상들이 “어떤”, “아무 것도 아닌(no)”, 그리고 “모든”과 같은 양화를 그 의미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리키며, 언어적 유사성은 각 계열의 양상들이 언어적으로 “임이 이다”라는 언어적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리킨다.

필자는 여러 양상들의 양화적 유사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언어적 유사성에 대해서는 양화적 유사성에 대해서만큼 호의적이지 못하다. 즉 폰라이트와 프라이어가 제시한 것과 같이 포괄 양상의 모든 양태들이 “임이 이다”라는 일반 양상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류이지만 포괄적인 ‘양상’에 동일하게 속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것 자체만으로는 일상 언어의 표현적 동일성에 기초한 의미론적 동일성을 가정하는 것으로서 정당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상 언어의 표현형식의 동일성을 근거로 의미론적 형식의 동일성을 가정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운 시도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동물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라는 두 문장 역시 일상 언어의 표현 형식에 있어서 동일하다. 즉 두 문장이 모두 “X는 Y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술어 논리에서 두 문장은 다른 의미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사람은 동물이다”는 “”이거나 “”의 의미를 가지는 데 반해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는 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단순히 일상 언어의 표현적 동일성에 기초했기 때문에 포괄 양상의 체계에 대한 생각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포괄 양상의 체계들에 포함되는 여러 양상의 종류들을 형식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의미론에 기초해서 일괄적인 해석을 제공하려는 시도에 대한 충분한 정당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프라이어와 폰라이트, 그리고 메르디쓰는 지금은 많이 탐구된 이른바, 일반 내포 논리학의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여기에서 구문론과, 나중에는 의미론이, 유사 양상 개념들의 폭넓은 영역을 분석하는 데에 유용한 진리적(alethic) 양상들의 연구를 위해 개발되었다. 폰라이트의 의무 논리와 프라이어의 시제 논리는 이 분야에서의 첫 번째 주요 성공사례였다.(Copeland[1996],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