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3. 가능세계 의미론이 대두되는 역사적 맥락

가능세계 의미론(PWS)의 발전사에 대해서 고찰하기 전에 먼저 양상논리에 대한 PWS가 나타나는 전후 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양상 논리 역사의 출발점은 “필연적인”과 “가능한”이라는 말을 포함하는 진술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이다.(Goldblatt[2003], 310쪽) 양상적 진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 연구나 프라이어(A. Prior)의 연구에 동기를 제공한 메가라 학파의 양상논리 등, 서양 고대와 중세의 양상논리사는 흥미롭겠지만¹⁾ 현대 논리 이전의 다른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기호체계를 사용하지 않았고 그 접근법이 체계적(systematic)이지 않았다. 따라서 기호적(symbolic) 양상 논리의 PWS에 초점을 맞추는 이 논문의 관심과의 관계는 매우 간접적이다.

현대 양상 논리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루이스(C. I. Lewis)의 엄밀함축(strict implication)에 대한 논리에서 시작된다. 엄밀함축에 대한 논리에서 루이스는 화이트헤드와 러셀이 『수학원리(Principia Matematica)』에서 사용한(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표준적인 명제 논리 체계에서 사용하는) 실질함축(material implication)의 개념을 비판하였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자신들의 논리 체계에 대한 비공식적 언급에서 가 를 ‘실질적으로 함축한다’라는 구문을 로 표시하였으며,

가 의심의 여지없이 타당한 추론 도식이라 가정하고 정당화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실질함축은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함축을 포함한다. 즉, 거짓인 명제는 모든 명제를 함축하며 참인 명제는 모든 명제에 의해서 함축된다.

루이스는 이런 역설적인 실질함축을 대체하기 위해 그의 엄밀함축을 발전시켰다. 엄밀함축에서 가 를 엄밀 함축하는 경우 그 경우에만 가 참이고 는 거짓인 것이 ‘불가능’하다. 루이스는 이것을 “―3”라고 표시했다.(Kneale & Kneale[1962], 548-549쪽) 초기 논문들에서 루이스는 때로는 엄밀 선언(strict disjunction)을, 때로는 엄밀 함축을, 그리고 때로는 논리적 불가능성을 원초적 연산자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1932년에 랭포드(Langford)와 공동 저술한 『기호 논리(Symbolic Logic)』에서 엄밀 함축의 체계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comprehensive) 연구를 제시하면서 가능성(possibility)을 원초적 양상 연산자로 택하였다. 이 책에서 <S1>과 <S2> 체계들이 상세하게 제시되었고, <S3>-<S5>는 부록에 실렸다.(Hughes & Cresswell[1996], 197-198쪽) 그 후에 파이스(Feys[1937])가 <T>라고 불렀던 체계, 그리고 폰라이트[1951]가 <M>이라 불렀던 체계들이 제시되었다.

이런 연구의 관심사는 주로 명제적 양상 논리 체계들에 주로 집중되었는데, 이에 대한 주목할만한 예외적 연구가 마르쿠스(R. Barcan Marcus)에 의해 이루어졌다. 마르쿠스는 카르납(Rudolf Carnap)과 함께 양화 양상 논리(QML)의 증명이론적 연구 및 공리체계를 형식화한 최초의 연구자이다.(Lindström[1998]) 하지만 양상 논리에 대해 형식화된 의미론적 연구를 한 사람은 카르납이 최초였다. 불과 세저버그(Bull & Segerberg[1989])는 양상논리 전체의 발전사를 구문론적 접근법, 대수적 접근법, 그리고 의미론적 접근법의 세 맥락으로 구분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루이스에서 마르쿠스에 이르는 연구들은 구문론적 접근법에 속한다.

대수적 접근법에 따른 양상논리의 연구에는 루카치비츠(Jan Lukasiewics)가 다치 논리체계로 연구한 것과 맥킨지(McKinsey)의 연구들, 그리고 존슨과 타르스키(Jónsson and Tarski[1951])의 “연산자들이 있는 불 대수”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이 중에서 존슨과 타르스키[1951]는, 많은 사람들이 이 논문을 읽었더라면 양상 논리의 역사가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평가될(Bull & Segerberg[1989]) 정도로, 특히 크립키적 가능세계 의미론(PWS)과 관련된 선구적인 연구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존슨과 타르스키 논문은 양상 논리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 논문과 양상 논리의 연관성을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캥어(Kanger)이며 나중에 크립키 역시 존슨과 타르스키의 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하였다.(Copeland[2002], 130-131쪽)²⁾

하지만 대수적 접근법과 모형이론적 접근법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매킨타이어(Angus Macintyre[1981])는 “모형이론이 수학에서 구조물(constructions)을 가져 와서 그것들을 일반화하고, 그리고는 응용법(application)들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수학적 대수(algebra), 즉 보편대수는 예를 들어서 보편 동일성, 관계 기호들이 없는 식들과 같은 한정된 식들의 집합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모형이론과는 구분된다.(Angus Macintyre[1981], 45-46쪽)

양상논리에 대한 모형이론적 접근법이 바로 이 논문에서 상세히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가능세계 의미론(PWS)이며 그것은 대략적으로 카르납(R. Carnap)에서 시작해서 크립키(S. Kripke)에서 완성된다. 크립키가 PWS를 완성함에 따라서 술어 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고전논리체계와 마찬가지로 구문론적으로 발전되어 온 여러 양상 논리 체계들이 구문론과 의미론의 2원적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 이전에 맥킨지나 존슨과 타르스키가 제시했던 대수적 연구와 양상 논리와의 연관성이 해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