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해석, 어떻게 할 것인가?

삼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헌은 아마도 천부경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천부경은 한민족의 고유한 전통철학의 중심에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천부경에 대한 해석과 이해 역시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천부경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여러 모로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는 그 문제들 중에서 가장 흔히 눈에 띄이고 가장 심각한 문제 둘을 지적해 보겠다. 그 두 개의 문제는 각각 "역술적 해석"과 "신비주의적 해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겠다.

먼저 역술적 해석이란 주역에 근거한 천부경 해석이다. 이러한 역술적 해석은 하도,낙서 등을 기초로 해서 주술적인 수 개념을 도입한다. 그리하여 1은 기수, 2는 화수, 3은 성수라는 등의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1은 곧 태극을 가리키고 2는 음양을 지시하며 3은 삼재를 의미하고 4는 사상, 5는 오행, 6은 육기 등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모두 주역이 성립한 후에 생겨난 것이며 특히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는 오행은 주역 이후에도 잡다하게 꿰어맞춰져서 생겨난 개념이다.

오행은 먼저 사행(木, 火, 土, 水)이 먼저 생기고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들어서 일상생활에서 金을 사용하게 되면서 金이 추가되어 오행이 되었으며 오행이 陰陽보다 먼저 있었다.

문헌상으로는 箕子(殷末~周初)의 洪範九疇를 장식함으로써 처음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陰陽과 五行이 따로 존재하였으나 전국시대 전기의 菅子의 四時篇과 황제내경(黃帝內經; 戰國時代~漢나라 때까지 의학지식을 담은 醫書)을 거쳐 後漢의 白虎通義(후한의 章帝가 백호관에서 학자들이 五經의 異同에 관해 논의한 내용을 적어 놓은 책)를 통해 확정적으로 陰陽과 五行이 陰陽五行으로 합해졌다.

五行은 주로 왕위의 계승 및 찬탈에 악용되었는데 조조의 위나라에서 이를 금하여 잠시 세상에 들어나지 않았다.

그후 진단(陳?; 唐末~宋初)의 無極圖에 이은 주돈이(朱敦?)의 太極圖設을 거쳐 程朱理學(程; 北宋의 程?, 程顥 형제. 朱; 南宋의 朱熹)에 이르러서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진단의 무극도는 道敎에 영향을 미쳐 「道→陰陽→五行→萬物」이라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http://myhome.naver.com/hwangs707/original%20text.htm 에서)

그러므로 오행이나 음양의 개념을 가지고 천부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나중에 나타난 것을 가지고 먼저 나타난 것을 해석하는 셈이다. 이것은 시기적으로도 그러하지만 논리적으로도 그러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특히 주역의 체계에 기대어서 천부경을 이해해서는 안되는 중요한 까닭이 바로, 천부경에서 언급하는 삼재론이 주역의 성립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주역의 체계를 언급할 때에는 천부경의 해석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되어야 하며 천부경 해석의 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둘째 신비주의적 해석이란 천부경에 모든 세상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고 한다든지 혹은 오늘날 밝혀진 현대과학의 이론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는 등의 황당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다. 천부경의 역사적 근원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대과학의 결과가 알려지기 이전에 씌어졌다는 것이며, 그 논의는 철학적인 것이지 과학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천부경 안에 아주 깊이있는 철학적 통찰이 들어있을 수는 있다.(나는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 현대과학의 이론이 들어있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보자. 2000년 이전에 서양의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는 현대의 원자론과 거의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것은 만물이 원자들의 이합집산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곧 현대과학과 맞아떨어진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단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적 사고 방식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을 뿐이고, 그러한 뛰어난 사고방식이 보편성을 지닐 뿐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천부경의 내용이 현대과학과 맞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주장은, 데모크리토스와 현대 원자론과의 일치성보다 더 애매모호한 내용들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을 운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다. 현대과학은 시대적 산물이다. 그것은 과학이 더 발전하면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뉴톤 물리학도 그랬고 그 이전의 플로지스톤 이론도 그러했다. 한편 그와 달리 시대를 초월해서 보편성을 갖는 이론들은 과학이론이 아니라 순수 철학이론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같은 것 말이다. 동양의 주역이론도 그에 속할 수 있다. 나는 천부경의 내용이 그러한 계열 속에 있다고 믿는다. 마치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무시받지 않는, 불교의 통찰이나 유교의 이념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천부경을 해석해야만 설득력이 있다. 특히 천부경이 신라시대 이전에 씌어진, 그래서 대체로 인정하듯이 고조선 시대에 씌어진 아주 오래된 경전이라면 말이다.

그러면 81자라는 너무나 짧은 구절 속에 함축적으로 포함된 천부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이와 유관한 몇몇 주변 문헌들을 같이 해석함으로써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거기에는 주역이 1차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이 말은 기존의 해석자들을 위해서 강조한 말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천부경을 해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대종교의 여러 경전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이들 경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하나와 셋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음양이나 오행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간혹 그와 같은 언급처럼 보이는 것이 조금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조선 말쯤에 씌어진, 해설서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신리대전(神理大全)이다. 거기에서는 다섯 종족과 다섯 가르침 등의 '다섯'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핵심적인 논의는 아니다. 회삼경(셋을 모은 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글은 단애 윤세복이 1948년에 쓴 책인데, 그 전체 내용 속에서도 음양에 대한 언급조차 거의 없다.

이러한 문헌들이 공통적으로 하나와 셋의 관계에 집중해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특이하면서도 공통적이다. 이 공통점으로 인해서 이들 문헌들은 모두 내용적으로 상관성이 있다고 볼 근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하나와 셋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동양의 다른 여타 문헌들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내용이므로 이 공통점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내가 생각할 때 천부경 해석을 위해서 꼭 참고해야 할 문헌들은 다음과 같은 문헌들이다.(이 문헌들은 삼성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민속, 종교사상"이라는 책에 모두 모아져 있다. 나도 이 책을 보고 연구한다.)

1. 천부경

2. 삼일신고(세 한얼 말씀)
2.1 세 한얼 말씀의 머리말
2.2 임금님 지은 세 한얼 말씀 기림글 첫째
2.3 임금님 지은 세 한얼 말씀 기림글 둘째
2.4 세 한얼 말씀 읽는 법
2.5 세 한얼 말씀 간직한 글

3. 신사기(한얼일 적음)
3.1 한글 풀이 한얼일 적음의 뒷말

4. 신리대전(한얼 이치 책)

5. 회삼경(셋을 모은 글)

그 밖에, 내가 볼 때 천부경 이해를 위해서는 유교, 불교, 도교에 대해서 조금은 익숙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최치원이 천부경 사상에는 유불선 삼교가 통합되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때에도 그런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여기에 유교와 불교, 도교의 이론들이 모두 다 온전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유불선 삼교의 공약수가 천부경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불선 삼교의 이론을 다 섞어서 하나로 만든다고 해서 천부경의 원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불선 삼교의 근본 통찰과 같은 심오한 통찰이 함축적으로 드러나있는 것이 천부경이고 이 천부경에서도 드러나는 통찰을 여러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이 유불선 삼교라고 본다.

이 밖에 천부경 해석을 위해서는 이러한 문헌들을 토대로 논의를 진척시키면서도 동시에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입장으로 귀절들을 해석하기 위한 철학적 소양이 필요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적 소양이 없이 천부경을 해석했기 때문에 역술적인 해석이나 신비주의적 해석이 남발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