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음양론과 천부경 연구의 문제와 이에 대한 선입견

삼재음양론 연구에서 주된 근거가 되는 문헌들은 "천부경", "삼일신고", " 회삼경" 등의 대종교 문헌들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다양한 후속 문헌들이 있다. 바로 이런 까닭으로 인해서 삼재론을 중심으로 한 한민족의 철학에 대한 연구에 많은 선입견들이 따른다. 사실 나마저도 연구를 하고 그 내용을 제시하기에 주저하게 되는 강력한 선입견들 말이다. 이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첫째, 종교성

가장 사소한 것부터 언급하자. 삼재론에 관련된 중요한 문헌들은 모두 대종교의 경전들이다. 그리고 대종교는 민족종교이지만 오늘날 교세가 큰 대중적인 종교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특히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종교적인 편파성을 드러낸다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불교철학이나 유교철학이 중요한 동양철학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고 또한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다른 종교들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는 다원적 사회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서로의 사유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존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세가 오늘날 크지 않은 종교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가치있는 철학적 사상이 들어있다면 이를 연구하고 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다른 이유들로 도외시되거나 비판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다음의 두 사항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는 천부경과 같은, 삼재론의 제일 핵심적인 문헌들은 때때로 대종교의 경전에서 배제되기도 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곧 천부경의 내용 자체가 특정 종교와 무관하게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문헌의 내용을 직접 들여다 보면 천부경, 삼일신고, 회삼경 등과 같은 중요 문헌들의 내용은 실제로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경전들은 신에 대한 경배, 종교적 신념에 대한 강조, 종교적 예법과 숭배의 대상에 대해서 지적한다. 불교에서도 삼보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천부경과 회삼경 등과 같은 문헌들은 사물의 이치에 대한 논의에 그친다.

둘째, 주술성

좀더 심각한 문제는 천부경과 같은 문헌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대부분 주술적인 성격의 연구로 이루어져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서 천부경에 대한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학 강단과 같은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근거없는 상상력과 그에 기댄 주술적인 추측에 기초한 사이비 연구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천부경에 대해서 기존의 연구 문헌들 대다수가 언급하는 바는 이것이 우주의 모든 원리를 그 안에 포함한 경전이라고 한다든지, 그리하여 현대 물리학의 원리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경전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그 경전이 수 천년 전부터 전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혹자는 이 경전을 수만번 암송하면 물위를 걸을 수 있다는 속설을 제시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해석에 음양오행 및 오운육기, 팔괘 등을 모두 결부시킨다. 가장 흔한 연구의 형태가 바로 주역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하도 낙서와 연관시켜서 천부경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다. '하도와 낙서'는 그 자체 주술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다른 동양철학의 연구에서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는 대체로 주역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서 곧 주술적 예언체계의 기초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술성은 장차에 있어서 천부경 연구에 대한 장애가 될 뿐 결코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천부경 연구는 그 안에 있는 "삼일철학"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내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곧 삼재에 대한 이해 이상의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이해한 내용이 상당히 심대한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먼저 가정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천부경의 내용이 어떤 주술적인 성격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는 천부경이 학술적으로 연구될 수 없는 것, 그래서 합리적인 가치를 갖지 않는 것으로 간정하는 것이 되고 곧 한국의 전통사상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정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비전문성

위에서 언급한 주술성의 근원은 아마도 연구자들의 비전문성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실제로 천부경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서 대학에서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없었다. 이로 인해서 비전문가들이 천부경을 연구함으로써 그 올바른 학술적 가치에 주목하고 그것을 해석해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런 모든 선행 논의들이 가치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 논의들이 없었던 것보다는, 상아탑의 학자들이 전혀 눈돌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전문가들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논의를 끊임없이 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천부경과 같은 문헌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책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린 모든 이들의 노고는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단지 나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그러한 방식으로만 연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접근방식이 가치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그늘에서는 단점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삼재강유론"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아직은 강단의 철학자들에게 내가 천부경을 중심으로 한 삼재론을 연구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능력도 부족하지만, 그랬을 때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근거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남의 관심사를 쉽게 폄하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특정인이 아닌 대중들의 편견은 또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두려움에 있다. 확실히 천부경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보다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외국의 어떤 철학자의 사상을 연구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에 어떤 대중들의 선입견은 더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나는 내가 분명히 확신하는 우리민족의 전통철학을 외면하고 그 가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으면서 철학을 공부했다면 거기에서 오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부탁하고 싶은 바는 이것이다. 이상의 문제점들이 문제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도 천부경에 대한 나의 연구가 주술적이지 않고 전문성을 띨 때, 그것을 우호적으로 봐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어렵고 따분한 논의를 이해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