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같은 것은 믿지 않으신다구요?

그렇죠? 운명에 기대기 보다는 합리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이 더 가치있는 생활태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태도를 유지해 보려고 항상 이것저것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생활을 한답니다. 뭐, 그렇다고 제대로 훌륭한 생활을 한다고 장담은 못하겠지만...^^

합리적인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것이 어울릴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철학도 어울릴 것 같아요. 다른 것도 어울리겠지만. 그래서 제가 철학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을 좀 설명해 드리지요.

재미있을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철학을 공부한 방식

나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 편이다. 있었던 일들, 그리고 어느 순간순간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 그런 사소한 것들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처음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려 할 때의 그 막막함을 역시 기억한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울 정도로 순진하고 유치한 목표들. 그 중 하나는 멋진 사랑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것저것 공부를 많이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공부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를 옥죄었던 입시를 위해서 억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공부가 아니라 내 마음을 잡아끄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공부들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수강하는 시간들 사이의 빈 시간들에는 학점과는 상관없이 다른 강의실에 찾아 들어가 이런저런 강의들을 들었다. 나중에야 이것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냥 노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런 면에서 대학 초년생 때 오히려 진정 도움이 되었던 것은, 더 많은 것을 배워야지-라는 집착에서는 시간낭비일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대화, 토론이었다. 그리고 열띤 토론 속에서 나는 내 생각이 막힐 때마다, 그래서 친구들의 주장을 제대로 논박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논박당할 때마다 골똘히 생각을 해야만 했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어떤 문제에 바닥칠 때마다 다른 것을 제쳐두고 그 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이 나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여러분에게도 제일 강조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한 문제에 대해서 집중하지 않고 여러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여러 교과목에서 다양한 지식을 배우면서 거기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이 때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하나는 그것이 남에 의해 주어지는 지식이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를 수박 겉핥기로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공부 내용이 스스로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남의 문제이다. 나에게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문제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그 내용에 대해서 구경꾼이 된다. 그리하여 두 번째 문제가 나타난다. 그것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외우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고 그 문제 안으로 들어가지를 않는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러한 공부 방식의 장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 변명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여러 가지를 하나도 진정으로 배우지 못하는 결과가 생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살아 움직이는 산길의
넝쿨 같은 미로 속에서
지혜로운 자만이
한 길을 감으로써 모든 길을 다니느니

 


하나를 깊이 있게 배움으로써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게 된다. 그건 낯선 마을의 여기저기를 한두 번 다녀 보더라도 그 마을의 지리를 익히지 못하는 것과 같다. 대신에 낯선 마을에서도 자기가 잘 다니는 길을 하나라도 얻고 나서야 다른 길들이 그 길을 중심으로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생각함으로써 전체 지리를 쉽게 익힐 수 있다.

여러분도 철학의 숲 속에서 길을 얻고자 한다면 한 길을 감으로써 모든 길을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에게 진정으로 문제 거리가 되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함으로써 말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철학 공부는 단지 이 책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친구들과 진지한 토론을 할 때나, 심지어 길을 걸으며 상념에 잠길 때조차도 이어질 것이다.

대학생 때 나의 또 다른 목표였던, 사랑을 해 보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제가 쓴 시입니다. “하얀 도복에 검은 띠를 매고”의 <태백>에서. 이 시를 보시려면 저(이창후)의 『태권도의 삼재강유론』이란 책의 서시를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