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있다고 믿으신다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좀 비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군요. 사실은 저도 그렇긴 해요.^^

내 말은, 저도 좀 비합리적인 생각을 한다는 거죠. 운명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길을 가다 문득, 어떤 사람이 이렇게 지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정말 사실과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건 운명과 관련된 것일까요?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길을 가다 문득"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답니다. ^^


<파깨비의>
아름다운 철학 이야기


질문과 대답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자주 들었던 질문은 두 가지이다.

“넌 왜 파란 옷만 입고 다니니?”

하는 것과,

“넌 왜 철학과에 들어왔니?”

하는 것.

두 번째 물음에 대해서 먼저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고등학교 시절의 성적에 맞춰서 지원을 하다보니 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노라고. 그리고 첫 번째 물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파란 옷 밖에 없어서 파란 옷만 입게 되었다고.

사람들은 이 말을 잘 믿지 않았다. 내가 성적에 맞춰 지원하다 철학과엘 입학했다는 말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영민하게 생기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파란 옷을 입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의 눈길을 보냈다.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답을 해 줘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파란 옷에 얽힌 어떤 ‘운명’이나 ‘전설’같은 것을 원하는 듯 하다. 아니면 내가 파란 옷을 입는 무슨 ‘철학적 이유’같은 걸 제시하든가. 이건 사람들이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는 사실과 결부시키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아마도, 나 역시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어떤 오해와 무지, 즉 철학에 대한 오해나 무지에 많이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나도 철학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렇게 잘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철학이 무얼까? 여기에 대해서 다르게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철학이 질문과 대답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겠다. 예를 들어 보자.

사람들은 내가 왜 파란 옷을 입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파란 옷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이 대답에 대해서 사람들이 항상 꼬집고 넘어간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한 말이 충분한 대답이 안된다는 것. 나는 이렇게 묻는다. 어떤 대답을 원하느냐고.

파란 옷 밖에 없다면 파란 옷만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이것은 대답이 충분히 된 셈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는 충분히, 혹은 제대로 된 대답이 제시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철학이 하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질문과 대답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질문과 대답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곧 생각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스스로와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란 곧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철학은 생각 자체에 대한 생각이기 때문에 그 속에는 딱히 알맹이라고 할 것이 없게 된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긴다. 첫 번째 어려움은 추상적인 생각의 어려움이고 두 번째 어려움은 공부 방법의 어려움이다.

추상적인 생각의 어려움이란, 철학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딱히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그래서 생각이 혼란스러워지기 쉬운 것이다. 대신에 이런 어려운 생각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훈련을 쌓게 된다면 여러분의 사고의 힘은 많이 커질 것이다. 그래서 웬만한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건 어려움 뒷면의 장점이다.

두 번째 어려움인 공부 방법의 어려움도 역시, 딱히 대상이 없으므로 어떻게 공부해아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방법은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여러 철학자들이 했던 생각을 잘 따라가 보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오래 동안 생각해 온 문제들은 대체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들이고 또 좀 어려운 문제들이다. 어렵긴 하지만 혼자서 생각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이 뛰어난 철학자들이 앞서 갔던 길을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수월한 점이 있다. 마치 앞서 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서 산을 오르는 여행객처럼 말이다.

이 책을 든 여러분은 철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철학의 역사 속으로 가는 짧고 간단한 여행을 안내하고자 한다. 그리고 여기서 ‘여행’이란 말을 쓰는 것도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한 방편이다. 철학에는 어떤 것이 분명히 옳고 그른가 하는 구체적인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에 대한 기웃거림만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이 “결국 어쨌다는 말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불평을 터뜨릴지 모른다. 그 때문에 나는 철학의 내용이, 훌륭한 집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집들을 찾아다니는 여행, 혹은 길 찾기에 비유를 하면서 설명할 것이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어디에 도달하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저기엘 가 보고자 할 뿐이다.

나는 그렇게 설명을 해 나갈 텐데, 그럼 여러분은 무얼 해야 할까?

물론 이 글을 읽어야 하겠지만, 그러면서 여러분은 필요할 때 때때로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해야 한다. 철학의 본성과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들은 생각함에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것 안에 있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이 내가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