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서양 철학사 <4>: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면 그럴 듯 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가? 적어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의구심을 느끼는 바로 그 부분은 동그라미 그 자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더 참된 존재자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을 가장 힘있게 비판한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중이지만, 꼭 그럴 필요 없이 우리끼리 솔직한 생각을 말해 보자. 둥근 차 바퀴가 있지만 그보다 동그라미 그 자체가 더 참된 존재자이고 그것이 차 바퀴를 떠나서 존재할까? “플라톤이 유명한 철학자니까 그 사람 말이 맞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은 집어치우자. 대신 바로 우리 자신의 자연스러운 생각을 한번 말해 보자. 그것이 틀린 것이어도 좋다. 그렇다면, 적어도 상식적으로 말해서 우리 자신의 생각은 아마도 동그라미 자체가 존재한다기보다는 바퀴가 동그랗다는 것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동그라미가 있다면 바로 그 차 바퀴에 있는 것이지 동그라미만 따로 떨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바로 이것이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심 생각이다.

어떤 것이든 발전할 때는 대체로 그 이전에 있던 것의 장점에 새로운 장점을 결합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사람의 머리 속에만 있는 생각과 같은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에는 동감했다. (이건 플라톤 생각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걸 무시하면 우리는 바퀴가 둥글기 때문에 굴러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이데아가 개별적인 사물 바깥에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는 반대했다. 그래서 그는 이데아가 개별적인 사물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사물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형상(이데아)과 질료(재료)가 결합하여 사물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동그라마의 형상에 고무가 재료로 쓰이면 고무 바퀴가 되고 나무가 재료로 쓰이면 나무 바퀴가 된다는 식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해서는, 왜 그런 생각이 그럴듯한가 하는 것을 다소 길게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개념에 대해서는 별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들이 가진 생각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당연한 것에 대한 주장이다. 다만 그 당연한 것을 명료하게 설명한 것일 뿐이다.

사물들이 질료와 형상의 결합으로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그 다음에 설명해야 할 것은 사물들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인설’을 제시하였고 변화의 바탕에는 실체가 있어야 한다면서 서양철학의 발전에서 한 축이 된 실체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런 사고방식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경험들을 존중하며 서양의 모든 학문들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 거기에는 정치학, 물리학, 생물학, 미학 등 포함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여기는 설명이 좀 어려웠나? 어려운 건 빨리빨리, 짧게짧게 넘어가자.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 이론체계를 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혹시 대학에서 어떤 분야를 전공하고 공부하더라도 그 학문의 역사를 배울 때에는 대체로 이 사람의 이름을 꼭 한번은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훌륭한 점은 단지 그가 많은 학문을 이루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생각체계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이 곧 논리학이다.

이 점을 잠깐 이해해 보자.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으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이어지는 철학의 전통을 이해할 때 가장 큰 맥락은 바로 상대주의와의 대결이다. 즉 이 세 철학자들은 객관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제시했었다. 즉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 말이다. 그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을 제시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을 체계화했다고 할 만큼 다양한 경험들을 존중하면서 각 분야의 이론들을 만들었다면 그는 상대주의에로 가기 쉽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경험들을 존중하다 보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경험들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서로 다를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포함하고 있음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것이 논리학이다.

얼핏 생각해도 확실히 논리는 모든 학문에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학문이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일단 앞뒤 말이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곧 논리적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 철학에서 이데아론이 중심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는 그의 논리학이 중심이다. 여러분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개론서를 볼 때마다 맨 처음에 그의 논리학에 대한 설명부터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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