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이 아니라 '질문'에
대하여
"논리와
비판적 사고" 과목에서 따지는 생각은 진지한 문제거리에 대한 생각이다.
그렇지 않은 생각은 단순한 상념들이다. 백일몽같은
것 말이다. 이런 상념들은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혹은 자기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어떤 법칙은 없다. 있다면? 멋징 상념이 떠오르도록 하는 심리학적 기술들이 있을 수는 있겠다.
모든 진지한 생각은 질문과 답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의외로 친숙하고 당연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자.
질문과 답의 관계로 정리될 수 없는 진지한 생각이란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한번 찾으려고 해 보면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초점은 두 개에 모아진다. 하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답'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2천년 정도의 철학사에서 처음(탈레스와
소크라테스)부터
강조되었던 것은 '질문'의 중요성이다.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
하지만 강의를 해 보면 현실은 반대이다. 학생들은 답에 더
관심이 많다.
이것은 많은 부분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마도 태어나서부터
지금(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은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만을 훈련받았다. 이제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루 아침에, 그리고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조금씩이라도 바꾸어가야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를
안다면 그 쪽을 천천히라도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물론 더 빨리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만.
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준다.
선생이 말하는 것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다.
강의에서 설명된 것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자극적으로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 '퀴즈쇼'같은
것을 예로 든다. 퀴즈쇼에서 1등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등한 이 사람보다
반드시 더 영향력있는 사람이 있다. 특히 이 '1등짜리'가 중요하고 가치있을수록 그러하다. 그 사람은
바로 '퀴즈쇼'의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이다.
이제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누가 문제를 출제할 권리를
가지는가?
학생은 문제를 출제하면 안 되는가? 굳이 퀴즈쇼의 문제 출제가
아니라도 좋다. 자기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나가면 안 되는가? 안 될 이유가 없다.
하나의 질문이 있으면 그에 뒤따르는 모든 답은 그 질문에 매달린
것이다. 그 질문에 의존한다. 질문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그 질문이 사라지는 순간, 그 답들도
사라진다. 무의미해진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이러한 무의미에서 자신을 구제할
수 있다. 어려운 생각, 진지한 생각을 한다면, 그럴수록 그 질문이 자신의 질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무의미한 질문에 뒤따르는 무의미한 답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던진 질문이라는
것은, 반드시 자신이 먼저 던진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던진 질문일지라도, 내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납득한 질문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줄
것이다.
왜 그런 걸 따져야 하죠? -라고
묻는다.
자기가 선택한 질문이라면, 수업이
끝난 후에도 계속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심심풀이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선생이 제시하는 질문(내용) 이외의
다른 것을 수업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틀렸을지도 모르는 대답(대개, 선생의
입장에서 '틀린 대답')을 두려움없이 말한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이 글 전체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남의 생각의 노예가 되지 말고 여러분 자신의 생각의 주인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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