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대명사(代名詞).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라의 이중성.
<남진우의,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앞에서, 경험론과 합리론의 논쟁을 보았을 때, 여러분들도 양자의 입장에서 장점을 뽑아서 하나로 합치는 칸트 식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즉 주관과 객관이 결합하여 모든 지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이것이 변증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사라의 이중성을 변증법이라는 말로 표현하듯이, 오늘날에는 시인들도 곧잘 쓰는 그 유명한 말, “변증법”의 철학자가 바로 헤겔이다.

헤겔의 철학은 칸트 철학을 약간 엉뚱한 방향으로 엎어 치면서 발전하기 시작한다. 칸트의 철학에서 물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헤겔은 물자체라는 것, 그래서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지 않은 순수한 객관이라는 것은 원래 없다고 말한다. 대신에 칸트 철학에서의 주관의 힘, 그래서 생각의 법칙이 곧 세상의 법칙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그 때 말하는 생각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변증법이다. 그리고 주관과 세상이 일치하기 때문에 변증법은 만물의 법칙이기도 하다. 이것이 헤겔 철학의 중심에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헤겔의 철학은 굉장히 난해한 표현과 어려운 용어들로 이해하기 복잡하다. 그러므로 다소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헤겔 철학의 네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다. 그 특징들을 표현할 말은, 첫째 관념론, 둘째 이성주의, 셋째 전체론, 넷째 변증법이다.


첫째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인 특징을 살펴보자.

우리의 생각은 세상과 일치하는가? 적어도 대부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과 나는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틀릴 때도 있다. 그건 불완전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해 나왔다. 그리고 틀린 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은 전반적으로 세상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세상과 우리의 생각이 별개의 것이라면 양자가 그렇게 일치한다는 것은 참 신비롭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래서 헤겔은 생각 자체가 곧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조금 표현을 바꾸자면 정신이 궁극적인 실재라고도 말한다. 플라톤 철학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삼각형, 동그라미 등의 개념(이데아)은 정신적인 것이지만 그 자체 세상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듯 하다. 헤겔은 그런 생각을 더 확장했다. 실제로 헤겔은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헤겔은 결국 세상 자체가 곧 정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각각의 정신들은 세상의 부분을 구성하고 그 생각들이 모인 세상 전체도 하나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누구의 정신인가? 신의 정신인 것이다.

헤겔 철학의 두 번째 특징은 이성주의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성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쉽게 이해하려면, 말도 안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다음의 시를 보자.

 

꽃이 피고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멀어졌다가도 금방 회귀하는 계절과는 달리
다가서도 도무지 다가설 수 없는 간격으로
같은 하늘 아래 어긋난 운명,
만족할 수 없는 불멸의 음률로
속절없이 걷기만 해야 할지 모릅니다.
<권선환의 “봄편지2”에서>

 

여기서 “같은 하늘 아래 어긋난 운명”이란 말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좀 말이 안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왜 그런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정해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긋날 수 있을까? “어긋난 운명”이란 것은 말이 안된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곧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 합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것은 비이성적인 것이고 그래서 제대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 논리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까 존재한다면 이성적인 것이 된다.

간단한 서양 철학사 <8>: 헤겔

헤겔 철학의 세 번째 특징은 전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분은 불완전하고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전체 안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전체만이 완전해진다. 빠진 것이 없으니까. 혹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와 같이 작동하는 것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전체론을 이미 생각해 본 셈이다. 기계의 부품, 즉 부분을 떼어내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즉 불완전한 것이다. 전체만이 완전하다.

그렇다면 전체론과 이성주의가 결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따져 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생각해 보면 세상 만물에는 다 법칙이 있고 그래서 그 법칙대로 움직이며,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하나의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즉 이 쪽 단추를 누르면 저 쪽에서 물건을 자르는 기계처럼, 세상도 그렇게 하나로 짜 맞춰져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될까? 존재하는 것은 이성적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잘 짜맞춰진 한 덩어리이다. 그렇다면 그 전체도 이성적일 것이다. 그리고 작은 것이 이성적이기보다는 큰 것이 이성적으로 잘 짜맞춰지는 것이 어렵다. 그 대신 그 만큼 완전할 것이다. 그래서 전체의 합리성을 헤겔은 “절대 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불렀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 거리가 남아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불합리한 것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전쟁터에서 적군에 있는 친구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사람, 부모가 독재를 하면서 만든 검은 돈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독재자의 자식들,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한 이성적이라고 헤겔은 말하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이성적일까? 서양 철학에서는 이성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이성적이라는 말은 올바르고 훌륭하다는 뜻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헤겔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런 까닭에 헤겔은 모든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으로서는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들은 서로 연관되면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것들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가? 앞에서 헤겔은 정신이 궁극적인 실재라고 말했기 때문에 정신이 발전하는 방식과 같이 발전해 나간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실제로 헤겔의 설명도 그렇다. 그리고 그 정신의 발전 방식이 곧 “변증법”이다. 이것이 헤겔 철학의 네 번째 특징이고.

변증법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정?반?합’의 세 단계의 발전으로 설명된다. 예를 들어 보자.

 

- 정: 돌은 돌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 반: 돌이 돌이라는 것은, 돌이 아닌 것과 비교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른 것과 관련시켜야 알 수 있다.
- 합: 그러므로 돌에 대해서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돌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같이 알게 된다.

 

즉, 처음의 생각(정)이 성립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것과 대립되는 생각(반)이 성립한다. 그러면 이 양자를 통합해서 더 나은 생각으로 나아가고 인식은 넓어진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의 발전이다.

이제 정리해 보자. 우리의 생각이 세상의 부분이고 세상 전체도 하나의 생각이라면 생각의 법칙이라고 하는 변증법은 모든 것의 운동?변화의 법칙이 될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이 변증법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역사를 설명하며 더 나아가 물리적인 현상까지도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생각(관념)을 객관화시켜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였으므로 때때로 “객관적 관념론자”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