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 님이 제가 쓴 책을 읽고 생각을 적어 주셨군요.
참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끝에 질문도 제기하셨더군요.
철학하는 사람들은 질문이 제기되면 그 질문에 대해서 정확히 답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저도 그렇긴 한데... 그래서 억지로 반대의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그냥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얘기만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이지요.
김주형 님은 책 전체에서 "철학은 전쟁이다"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더군요. 이 구절은 뒤에 나오는 것인데 이 구절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다니 조금 의외입니다. 전체적으로 제가 내세운 설명의 축은 "철학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고 이런 측면에서 철학사를 이해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사실 철학은 하나의 전쟁이다라는 것은 제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원래 이 책은 여러번 다시 쓴 원고입니다.
처음에 저는 철학에 대해서 세 가지 특징을 강조하면서 설명하려고 했었습니다. 하나는 철학이란 것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 둘째는 철학의 핵심에는 대화가 있다는 것이었으며, 셋째는 철학사를 이해해 보면 그 속에는 전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세 측면을 골고루 강조하려니 책의 원고를 짧고 간단히 하려는 의도와 어우러졌을 때 좀 난잡해 지더군요. 즉 독자들 입장에서 제가 하려는 말을 따라잡기가 어려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책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을까? -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 하나는 이것이었지요. 하나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여러 예를 통해서 풀어 써야 한다는 것. 이 힌트를 "누가 내 치즈를 가져갔는가?"라는 베스트셀러에서 얻었습니다. 말하려고 하는 바는 간단한게 이야기는 길더군요. -_-;;
그래서 원래 원고에서 말하려고 했던 설명의 세 축을 하나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축을 살리고 다른 측면들은 슬쩍 숨기기로 했지요.
전체적으로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부각시키고 다른 가지들도 잘라 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책이 좀 재미있거나, 혹은 다른 측면에서라도,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글은 잘 못쓰지만, 그래도 욕심은 많이 부리거든요. ^^
원했던 것이 뭐냐면, 대중들을 독자로 쓰는 책에서, 글이 단지 쉬운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가속도가 붙어서 끝까지 읽히게 되는, 그런 흡인력이 있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게 참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데... 어쨌든.
그래서 저는 그 중간에 읽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딱딱한 설명에 신선함을 불어 넣는 장치를 찾게 되었고, 시들을 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원고를 다시 쓰고 다시 쓰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시들을 예를 들면서 사랑 얘기를 축으로 집어 넣기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다시 구조가 복잡하다고 해서 사랑 얘기는 빼고 시만 남겼지요.
그렇게 대략, 완성된 원고를 3번째 다시 쓰면서 정리가 된 것이 현재의 "엄청 간단한 서양철학사"입니다.
다시 김주형 님의 감상문으로 돌아와서,
제가 원고를 이런 과정으로 쓰게 되었는데...
김주형 님이 지적하신 바대로 철학이 하나의 전쟁이라는 것은 철학사를 이해하는 데에 핵심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철학이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점은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요소이구요, 그런 철학의 역사가 왜 그런 방식으로 흘러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 속에 하나의 전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 것이지요.
그것을 굳이 "전쟁"이라고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하겠지만, 단순한 갈등이나 투쟁 이상의 매우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특히 긴 역사 속에서 철학이 움직이는 과정을 보면 그 투쟁은 단순히 상념의 장난 이상이었다고 보지요.
어쨌든 제 책을 읽어 주신 데 대해서 감사드리고,
감상문까지 사이트에 올려주신 데에 대해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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