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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좀 알자'... 제발.-_-;
파깨비  2011-09-04 14:07:05, VIEW : 2,520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독단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라고 말한다고 해 보자.
이 말은 대부분의 경우에 옳은 말인 것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 '공부'라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옳을 수도 있다.

아래의 '30억을 투자받은 디자이너'는 어릴 때부터 만화영화 감독이 꿈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라는 말은 옳지 않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알아라!'라는 말도 이런 문제점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은 주로,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과다한 희망을 갖지 말라는 것을 함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화 <타이타닉>에서 주인공 잭이 로즈를 처음 봤을 때,
친구들이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왜 그러면 안 되는가?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쳐다보는 것으로 행복하다면 그래도 된다.
이 경우에 자기 자신을 알 필요가 없다.

자신을 알아라는 것은 잘못하면 '꿈과 희망을 갖지 말라'는, 아주 소극적인 삶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자기 자신을 알라'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다른 관점에 속한다고나 할까.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사례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자.

한 음악인이 있다. 이름을 '철수'라고 하자. 철수는 음대도 나왔다. 주변의 친구들이 음악을 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촉망받는 음악인으로 발돋움했다. 음반판매 수익도 높은 친구도 있다.
철수는 자신도 음반판매 수익도 올리고 주변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는 음악인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런 철수에게 "제발, 자기 자신을 좀 알아라!"라고 매번 말한다.

왜?

철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철수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작곡도 하고 연주회도 연다.
연주회 열 때에는 돈도 많이 든다. 음반은 팔리지도 않지만 만든다. 역시 돈만 든다.
나는 음악을 모르지만, 철수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비판적 사고'를 하면서 접근했다.
내가 아는 음악의 기본원칙이라는 것은 이러이러한데, '만약 그런 원칙이 옳다면' 이러이러하게 작곡하고 연주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와 이런 대화를 하면서 철수는 점점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자신이 대학 과정과 대학원 과정에서까지 공부하면서 당연시 했던 것, 하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비판받았으며, 내 말이 옳다고 인정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배운 교과과정 속에서도 그런 것들이 '기초적인 것' 혹은 '기본적인 것'으로서 항상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철수의 음악은 조금씩 달라졌다.
어떤 방향으로 달라졌냐하면, 철수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달라졌고, 일반 대중들에게도 조금 더 인기있는 방향으로 달라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견 충돌이 생겼던 것이다. 나와 철수 사이에서.
의견 충돌 내용은 이랬다.
내가 "이러이러한 것은 꼭 필요하니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라."라고 말했다.
그 때 내가 이른바 '강요'한 것은, 철수가 꿈꾸는 음악인들의 특징이었다.
대신에 좀 힘든 것이었고, 특히 철수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철수는 싫다고 했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어쩌겠는가? -_- 나는 철수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버려 둘 수밖에.

그런데 철수는 그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나의 비평을 듣기를 원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말했고, 그 때문에 다퉜다.

그러다가 다시 자기 혼자서 음악을 하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발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이어갈 것인지?' 혹은 '이 부분에서는 다장조가 아니라 라단조를 써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와 같은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 내가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철수는 갸웃갸웃하더니 내 말대로 음악을 바꾸고서는 스스로 인정했다.
"확실히 그렇게 하니까 더 좋군."
이런 예들이 사실은, 철수와 처음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부터 계속 되었다.

다시 비평과 조언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실랑이를 하다가 나는 약속을 받았다.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동안, 잠시만이라도 일정 기간을 정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서 더 나아지다가 발전이 정체되거나, 혹은 처음부터 더 나아지지 않는다는 증거가 나타나면, 그 때 또 마음대로 하더라도."

그래서 철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조언을 하고,
그 조언이 철수와 내가 아는 원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며(사실은 매우 잘 일치했다.)
게다가 내 조언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철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그렇게 인정했으니까.)
내가 철수 자신이 싫어하는 노력, 특히 다소 힘든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면,
철수는 항상 그 조언을 거부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의 변명을 제기했다.

"네가 음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어떻게 100% 다 맞다고 확신하는가? 나에게 강요할 만큼 그렇게 맞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당신이 음악을 전공한 유명한 음악가도 아닌데?"

그럴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결국 나는 조언을 포기했다.
그러고 나면 친구라고, 또 철수란 녀석은 매번 자기 음악에 대해서 비평과 조언을 구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느끼는 생각이 이것이다.
철수는 자기 자신을 좀 알아야 한다.

이 때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얻은 소중한 성과를 자신도 얻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꿈을 버리지 못하면서 합리적으로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그것을 그만 두라는 말이다.

자신의 노력과 상황에 걸맞는 미래를 기대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꿈과 희망에 걸맞는 노력을 하든지 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이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 모두 대학 입시 공부는 해 봤을 것이므로,)
철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루 3시간씩도 공부하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가려는 욕심만 키우고 있다.

철수에게 물으면?
자신도 노력한다고 말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보는 그 참고서와 문제집을 자신도 보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자기가 싫어하는 힘든 것은 하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하루에 10시간씩 공부하는 것은 결코 따라하지 않는 것이다.
철수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꼭 이와 같다.
그러면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한다.

참, 답답하다.

자기 자신을 좀 알라는 말 밖에는 내 머리 속에서 나오는 말이 없다.

* 파깨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3-1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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