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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자 대회에서[2]
파깨비  2008-08-06 21:11:16, VIEW : 2,835
8월1일 오전 11시에 나는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사실 처음에 세계 철학자 대회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어떤 주제로 발표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어떤 후배가 "태권도 철학"으로 발표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 후배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데 조교로 실무들을 주관하는 후배였다.
난 원래 논리학으로 발표할까 했었다가, 그래, 한국에서 하는 만큼 한국 철학을 내세울 수 있는 주제로 하자는 생각에서 태권도 철학을 발표하기로 했다.

그 전날의 발표 현장을 참관하고서 나는 기본적인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은 발표문을 읽거나 파워 포인트를 활용하였는데, 나는 양자를 같이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준비해야 할 것은 늘어난다. 하지만 나의 주제는 "태권도 철학"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각도로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표문은... 주로 4-5장 정도의 복사물을 나눠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그냥 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태권도 철학을 사람들에게 장기간 알리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돈을 좀 들이기로 했다.
발표문 준비한 것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그리고 태권도 바이블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서 대략 40장 정도의 소책자를 만들었다. 표지도 그림을 넣어서 좀 화려하게 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사람들이 한번 보고 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책장에 꽂혀 있다가 보면 나중에 또 다른 사람들이라도 다시 보게 될 수 있으니까.

사회자는 일본 학자였다. 쯔꾸바 대학 교수라고 했다. 쯔꾸바 대학은 스포츠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하는 대학이다.
나는 제일 첫번째 발표자였다.
주제는 "태권도 철학의 내용과 가치"(The Contents and Values of Taekwondo Philosophy)였다.
당연히 세계에 알리는 것이니 발표 언어는 영어였다. 걱정과는 달리 별로 떨리지는 않았다. 독어나 불어도 아니고 영어 정도야....
처음에는 참관 인원이 적었는데 11시 10분 정도가 되자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다른 분과만큼 들어온 셈이다.
처음에 내 소개를 했다. 이번에 박사 졸업하고, 태권도는 5단에, 특전사 태권도 교관을 했었고, 경원대 태권도학과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파워 포인트를 보여주면서 발표문을 읽었다.
혹시나 준비 해 본 것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먼저 태권도를 본 적이 없는 분 있는가고 물은 것이다.
동영상을 준비한 것이 있다고 했더니, 모두들 보자고 했다.
그래서 태권도 홍보 동영상을 대략 2분 정도 상영하였다. 사람들의 흥미가 가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철학 토론은 단순하고 지루하니까, 거기에 태권도와 같이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을 보는 것이 결코 나쁠리 없다.

11시 5분에 발표를 시작했고, 영어로 발표문을 다 읽은 것이 11시 22분 정도였다.
질문 시간을 많이 갖기 위해서 최대한 빨리 읽었다.
다행인 것은 질문들이 많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 과제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대답하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여러 질문들이 오갔지만, 내가 정의한 태권도 철학이 태권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무술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주된 관건이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나는 예를 들어, 유도 철학도 사실은 모든 무술에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태권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의 독자성은 그 객관적인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술의 보편적인 부분을 개념화하고 체계화하는 방식의 독자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각 무술의 특징도 포함되어야 하지만 모든 무술의 개별적 특징은 무술의 일반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나는 지적했다.
여러 논의 끝에 사람들은 나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었다.
많은 질문과 대답, 비판과 반박이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비교적 정확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루어졌다는 점(동문서답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다른 두 발표자는 미국인과 대만인이었는데, 둘은 자리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네번째 발표자인 일본 학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제목은 "자신의 표현 의미의 기회로서의 현대 스포츠"(Modern Sport as an Opportunity to Form a Sense of Self)였다.
일단 발표자의 영어가 훌륭하지 않아서 발표문을 같이 보지 않으면 알아 듣기 어려웠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나의 영어는 그런 점에서 훨씬 나았을 것이다. 미국식 영어이긴 하지만.
내용은 여러 학자들을 언급하면서 학술적으로 엄격했던 것 같다. 스포츠 철학을 언급하면서 일본 학자들(사상가들)의 이름이 많이 포함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 나라 스포츠 철학, 혹은 체육 철학은...? 보시다시피, 세계 철학자 대회한다고 하는데, 한 명도 얼굴도 내밀지 못한다. 외국에 알릴 만한 체육 철학자들은 아직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비극이다.

내용은 진부해 보였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다.
청중들의 질문과 관심은 내 발표보다는 적었다. 거기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미 참석한 대부분의 청중들은 체육 철학, 스포츠 철학 분야의 전공자들이었고, 일본 학자들과 이미 연구에서 협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발표가 모두 끝나고 나자 사람들은 일본 학자들에게로 몰렸다.
특별히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모였다기 보다는 친분들이 있고, 다른 연구나 발표 일정을 잡는다고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얘기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참 한국의 체육 철학, 스포츠  철학 분야도 문제다. 학자들은 외국에서 배워와서는 그것 가지고 국내 터줏대감 노릇이나 하는 데에 안주하고, 예체능 분야 전공학생들은 영어도 안되고 토론은 아예 꿈도 못 꾸고....
이렇게 안방에서 마련한 자리에서나 우리 석박사 과정 전공자들이 대거 참여해서 토론에 참여하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나라 학자의 이론이 외국 연구에서 인용되는 것은 아직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겨우 30분짜리에 불과하지만, 발표내용과 호응도에서만이라도 일본 학자들보다 훨씬 잘 했고, 준비도 나았다는 데에 만족해야만 했다.

* 파깨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3-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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