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의 여행에 대해서 설명하자. 우리가 둘러 볼 곳은 서양철학사 속의 여러 유명한 철학자들의 사상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리고 철학 공부를 하려고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거의 모든 철학 교수님들께서 철학공부 방법으로서 철학사를 읽어볼 것을 권하셨다.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은 철학 공부의 가장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때부터 철학사를 열심히 읽으며 공부를 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철학사 공부를 하려고 책을 샀다가는 다 읽지 못할 것이다. 혹은 사람들은 철학사를 읽으라는 말을 듣고 마지못해 책을 사 읽으면서도 내심 다른 것에 더 관심이 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심 어떤 것을 생각하는가?

약 천 년 전의 과학적 지식을 공부한다고 하면, 그것은 대부분 오늘날 쓸모가 없는 것이다. 천년 전의 과학지식이라는 것은 오늘날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준 이하이다. 철학도 그렇지 않을까 - 이것이 내가 가진 의구심이었다. 그래서 철학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후회하게 되었지만.

철학사를 안다는 것은 오늘날의 철학적 문제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왜 오늘날의 철학적 문제들이 문제 거리가 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건 한 사람이 왜 어떤 선택을 하고 또 왜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만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한 사람의 역사를 알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과거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서 시를 선물했는데, 그 시에서 한 구절을 일부러 빼고 주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가 10년 동안 식사한 식단의 내용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철학사를 공부하더라도 과거 철학자들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들만을 골라서 알면 된다. 그리고 그런 선별된 내용들이 보통의 철학사 책에 씌어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사 책들은 너무 두껍다. 글씨는 깨알 같고 내용은 딱딱하다. 거기에는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의 저자들을 위한 변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에 철학사에 대한 이야기를 짧고 조금 흥미 있을 양념을 뿌려서 들려주겠다. 책이 얇고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운 것이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일 테니까. 그래서 이 책은 엄청 간단한 서양 철학사에 대한 여행으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두세 가지 변명을 미리 해 두겠다.

나는 철학 초보자들을 위해서 철학사를 간단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간단히, 그리고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래!”라고 일도양단하듯이 잘라 말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일도양단하듯이 딱 잘라 말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바보스러운 짓이다. 특히 다양하고 미묘한 측면이 많은 사람의 생각, 나아가서 철학자들의 생각에 대해서 말할 때는 더욱 일도양단 식으로 간단히 분류해서 말할 수가 없다.

반면에 일도양단하듯이 잘라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것은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되냐면……” 즉, 중언부언, 횡설수설, 엄청 난해!!! ― 적어도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을 위한 설명이라는 변명 하나로, 나로서는 불가피하게 바보스러운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두 번째 변명은 내가 가끔씩, 혹은 좀더 자주, 어떤 이야기들을 반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내용이 낯설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어떤 것이든 익숙하지 않은 것을 공부한다면 그것은 어렵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선택한 방법은 중요한 내용들을 반복해서 여러분이 저절로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반복된 내용이 지루하더라도 다른 여행자를 위해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마지막 변명은 내가 때때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좀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 역시 여행을 너무 무미건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 물론 얘기를 재미있게 잘 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철학 얘기라도 깔깔거리는 웃음이 나도록 잘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솔직담백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나도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면 이 책이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나 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그가 하는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많은 철학책들이 개인적인 경험담 없이 냉정하게 철학에 대해서만 설명하고 있으므로 하나쯤은 사람냄새가 좀 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간단한 서양 철학사 <0>: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