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그 사람이 예전의 그 사람일까?

한 2000년 이상쯤 전에 있었던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아니다. --*)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래서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아마 여러분들도 나처럼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나는 같은 사람을 두 번 만날 수 없었다. ‘집착이 쌓여 인연이 되고’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귀엽게 까칠까칠한, 그래서 여전히 예쁜 목소리가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처음 만날 때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사람이 결혼하기로 했던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서 얼마나 큰 슬픔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예전과는 달리 세파에 닳아서 처음의 순수함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음을 느꼈던 것이다. 오히려 나중에 새로 만난 다른 사람, ‘산사의 여름 단풍’에게서 대학 2학년 때 만났던 ‘집착이 쌓여 인연이 되고’와 같은 모습을 발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어떤 것도 순간순간 달라지므로 아주 오래 전의 사람이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기대하는 나의 기대가 허무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반대로 그렇게 모든 것이 서로 달라지다 보면 이것과 저것이 우연히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럴 경우에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 바’(줄여서 “정체성”이라고들 한다.)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 속에서나 공간 속에서 이러한 정체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을 트집 잡아 모든 것이 순간순간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그것’이라고 가리켜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도 조금 전의 내가 아니요, 우리 부모님도 조금 전의 부모님이 아니므로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비록 조금 전에 도둑질을 했지만, 도둑질을 한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며 또한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으므로 지금의 나에게 도둑질을 한 조금 전의 나의 잘못을 뒤집어 씌워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플라톤은 영원불멸한 이데아가 존재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은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에게서는 불변하는 이데아가 동일성의 근거가 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변화 뒤에서 변화하지 않는 실체와 그것이 변화하기 전의 상태, 그리고 그것이 변화한 후의 상태 세 가지를 파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변화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 즉 실체가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흄이라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그런 실체라는 것은, 눈을 씻고 뒤져봐도 찾을 수 없다고 반박했고 이에 대해서 다시 칸트가 나타나서, 그것은 우리가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 생각 속에 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각 단계가 절대정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며 그 마지막 절대정신이 모든 것의 동일성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겔에서 각 단계에서의 사물들의 동일성은 불완전하다.

이렇게 여러 철학자들의 말이 서로 다르다면 우리는 철학을 공부해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철학적인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런 뭐란 말인가? 이제는 그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여러분들은 철학이 안식처가 아니라 길이고, 그래서 결론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에는 복잡한 생각만 남는 이런 철학, 나도 가끔은 엎지르고 휘젓고 싶을 때가 있다.

이제 그만 엎질러버리고 싶어요 휘저어버리고 싶어요 좀처럼 헹굴 수도 없는 목마름, 얼룩처럼 앞치마에 찍혀 있어요 뜨거운 목숨도 아닌데 어쩔 수 없는 꿈도 아닌데 꿈속에서 내가 잠시 기울었다 일어서는 소리 들려요 그 소리 무시로 송곳처럼 쿡쿡 찌르는 아픔 알 것 같아요 비어 있는 가슴을 더욱 더 긁어대던 더부살이 같은 물살을 알 것 같아요 견고한 언어의 씨앗 다투어 잎 아무는 기척 알 것 같아요 목마른 얼룩 앞치마에 파고드는 저녁나절의 쓸쓸함도 알 것 같아요 내 삶의 그림자였던 보랏빛 실핏줄에 닿던 칼금 지금도 징그럽게 꿈틀거려요 그리움이란 변증법 데리고 꿈틀거려요 나를 떠난 그대는 이미 멀리 있는데 그 무관심도 관심인 듯 짓궂게도 출렁거리는 나 바람이에요 이선희의, “찻잔 앞에서”[200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