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추억입의 "퇴계와 칸트 철학 비교"는 지금까지 이 토론실에서 진행되어 오던 것과는 수준을 달리하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도에 대해서 가장 예를 잘 갖추는 것은 그에 걸맞는 강력한 비판을 해드리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곧 토론과 논쟁의 시작이구요. (훌륭한 축구선수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팬들의 성원이 아니라 다른 훌륭한 선수가 있어서 같이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간단한, 그리고 치명적인 비판을 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잿빛추억인믜 퇴계와 칸트 해석이 상당히 잘못되어 있다거나 근거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의 지적이 옳다면 잿빛추억님의 주장은 '허수아비 논증'이 되겠지요. 즉 퇴계와 칸트 철학이 아닌 것을 그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여 주장하는 것입니다. 출발점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퇴계는 잘 모르고 칸트는 조금 배웠는데, 중요한 골자가 다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의도로, 어떤 배경에서 이야기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지성계는 독단론과 경험론의 대립이 아니라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 속에 있었습니다. 이건 상식적인 이야기죠.(물론 그렇다고 틀릴 수 없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또 다른 문제는 퇴계의 4단7정론을 칸트의 인식론 속의 감성과 지성(오성, understanding: "오성"이란 말은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것인데, 별로 좋은 번역은 아닙니다. 쉽게 말해, 우리 말이 아닙니다. 서울대 백종현 선생님은 "지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에 대응시키는 것은 제가 볼 때 전혀 틀려 보이는데요. 4단과 7정론은 인간의 윤리의식 및 그 수양을 위한 논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편 칸트의 인식론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란 것이 가능한가'라는 주제의식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과학적 인식의 토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철학 대가들의 철학을 이해하고 비교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비전문가가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겠죠. 저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근거없이 해서는 안된다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중에 나가면 퇴계나 칸트에 대한 개론서적은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고, 근거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은 퇴계와 칸트의 원서를 읽고 토론을 하겠죠.
저희들은 그 사람들이 쓴 쉬운 해설서라도 읽고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철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훈계로 들릴까봐서 죄송스러운데, 이건 그게 아니라,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실컷 칸트와 퇴계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그 내용이 칸트와 퇴계 사상과 전혀 상관없는 잘못된 것이라면 공허하지 않을까요?
하여튼, 잿빛추억님의 주장에 대해서, 그 출발점에서부터 비판해 보았습니다.
저의 전략은, 주장의 발판 자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잘 되었나 모르겠네요.
잿빛추억님은... 당신의 퇴계 해석과 칸트 해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방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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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깨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