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건축물이다

철학은 하나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철학자들의 사상이 하나의 커다란 생각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철학이 전쟁이라는 앞의 설명과 결부시켜서 설명하자면, 활동으로서의 철학은 전쟁이고, 그 활동의 결과로서의 철학은 건축물이다. 전쟁을 위해 쌓은 성 말이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앞에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라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제시한 설명이 있다. 생각에는 두 겹의 대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겹의 대화는 생각 안에서 서로 부분들이 아귀가 맞아야 하고 다른 한 겹의 대화는 세상과 맞물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생각과 세상이 맞물리는 관계가 바로 문제해결의 관계이다. 사람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들이 커다랗게 체계화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겠는가? 그 큰 덩어리에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생각들이 서로 아귀가 맞게 결합되어 있어야 함을 뜻한다.

건축물을 보자. 하나의 집이 다른 집보다 더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이 집은 저 집보다 방은 커지만 거실이 작아서 불편하고, 저 집은 이 집보다 구조가 편리하고 목욕탕도 넓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고… 이렇게 부분들만 보면서 따지면 어떤 집도 더 좋은 집이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고려하여 종합한 후 어느 집이 어느 집보다 더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집의 부분부분만을 비교하여 모든 것이 서로 각자 장단점이 있다라고만 말하는 것은 상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와 꼭같은 방식으로 상대주의의 입장들은 항상 부분들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지 전체를 체계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이해하기 쉽다. 마치 집을 비교할 때 방의 크기만 비교하고 가격만 비교하기가 쉬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집을 비교할 때도 그 모든 것을 다 고려하여 어느 것이 더 나은지를 생각하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만큼 체계적인 사고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체계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생각을 하는 이유, 즉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분부분만 고려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집을 고를 때도 방의 크기 하나만 보고 집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생각이 세상과 관련되는 방식, 즉 문제해결의 방식이다. 끝으로 상대주의에서는 결국 문제해결의 방법을 얻을 수 없다.

생각이 왜 부분에만 치우치면 안되고 체계화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했다면, 한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할 때에도 이와 같은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별로 달갑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철학공부를 통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도 없다.

훌륭한 철학자들의 생각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철학적 문제해결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낸다는 것, 그리고는 거기에서 출발해서 기존의 발전된 생각들을 다 포함하는 체계화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터를 찾아내어서는 기존의 다른 집들보다 더 훌륭한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체계화된 부분을 빼고 새로운 터를 찾아내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생각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그가 어떻게 전체 학문의 체계를 구상했는지는 잘 모른다. 칸트도 역시 주관과 세상이 서로 상호작용해야 인식이 성립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지만 거기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포괄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했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칸트 철학 체계 속에서는 시간과 공간이란 것이 무엇인가, 인과관계와 동일성의 문제, 실체의 문제, 도덕 규범의 원천의 문제 등, 거의 모든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그래서 거기에서 역사철학, 법철학, 정치철학 등을 다 이끌어내었다. 심지어는 물리학의 법칙까지 이끌어내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지금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많은 문제해결을 위한 체계화된 생각을 모든 철학자들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철학을 공부할 때에도 그러한 체계화된 생각, 그래서 여러 가지 문제해결을 위한 답이 서로 아귀가 맞도록 짜여진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 집의 목적과 기능, 그리고 얼개가 잘 짜여지기만 한다면 비로 만든 집도 훌륭한 집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비싼 대리석으로 만든 집도 훌륭한 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비로 어떻게 집을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