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언제인지 난 기억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 고등학교 국민윤리 과목 시간에는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여기저기서 들었다. 하지만 난 그의 철학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철학적 생각을 했든 간에 그것은 2천년쯤 전의 생각이고, 오늘날 우리가 봤을 때는 어린애 수준의 유치한 생각일 것이 틀림없다라는 강력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 선입견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관심을 갖는 데에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시간 속에서 만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느낌을 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배를 타고 가다 바다 저 편에서 조그만 점을 발견했는데, 가까이 떠 있는 조그만 나무토막 같이만 보이던 것이, 아무리 가까이 가도 점점 커지기만 하고 여전히 멀리 있다가 마침내는 그것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었는데, 그 거대한 얼음 덩어리조차 전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황당함, 그리고 경외심까지…
데카르트에 대해서 사람들은 흔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정도로만 아는데, 당시의 ‘데카르트’라는 작자는 당대의 천재요, 오늘날로 치면 최첨단 과학을 새로 창립하던 그런 학자였던 것이다. 그런 그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더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그럼, 그 대단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이 어떤 내용이냐구? 그것의 핵심은 흔히 “삼단 논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삼단 논법이란 대전제와 소전제, 그리고 결론으로 이루어지는 추론의 형식이다. 예를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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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죽는다. (대전제) |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삼단 논법이 말하는 핵심은, 이런 형식에 따라서 생각하면 대전제와 소전제라는 두 전제들이 옳을 경우 결론은 무조건 옳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미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들로부터 새로운 어떤 것을 확실하게 알아내기 위한 판단의 형식(혹은 생각의 형식)을 찾아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 논법인 것이다.
뭐, 그 정도는 들어봤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 논법 이외의 각종 추론의 종류들을 모두 정리하고 검토해 놓았다. 그리고는 삼단 논법만이 학문적인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정도 되면… 별로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이건 어때?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개념론, 판단론, 추리론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고, 개념론에서는 모든 개념의 종류들을 분류하여 이른바 ‘범주’(category)라는 것을 정리하였으며 두 개념이 결합할 때 판단이 생기고, 이 판단들의 결합이 곧 추리라고 주장했다. 글쎄… 이 정도라면 추상적인 전문 용어들이 막 나오니까 어렵지? 나도 2000년 전의 철학자가 한 생각이 지금 입장에서는 어린애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는 기가 막혔다.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란 대단한 것인데, 더 놀라운 것이 있다.(철학을 공부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런 것에 대해서 놀랄까마는… -_-;)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다 만들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기호 논리학」이란 책에서 잘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그걸 인용해 보겠다.
| 우리는 논리학의 역사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로부터 시작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지적 발견이 결코 오직 한 사람만의 업적일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들
사이에 거의 상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기하학을 세움에 있어 유클리드는 에우독서스와 다른 사람들의 업적을 이용했다. 역학의
경우 뉴턴은 데카르트, 갈릴레오, 케플러 등의 어깨를 딛고 서 있다. 그 외에도 거의 모든 경우가 이러하다) 하지만 참고로 할
수 있는 모든 자료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이란 학문을 완전히 무(無)로부터 창조했다. 그는 「소피스트적 반박(Sophistical
Refutations)」의 끝부분에서 이 사실을 스스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의 이 보고의 정확성을 의심할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많은 학자들은 그러한 창조의 행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험적 근거에서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싹을 찾아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배들의 저작, 특히 플라톤의 저작을 샅샅이 더듬었다. 하지만 이
탐구는 거의 전연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벤슨 메이츠(김영정?선우환 역), 「기호 논리학」(문예출판사: 1995)332쪽에서
발췌. 이 단원을 발췌하면서 원래 번역문에서 어렵거나 딱딱하게 표현된 부분은 초보자들을 위해서 조금 수정하였다. |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논리학은 중심이긴 하지만 그의 전체 철학에서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여러분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부해 보면 그 차근차근히 이루어진, 굉장히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설명과 생각들에 감동할 것이다. 아마도 웬만해서는 그 생각들 이상의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막막함까지 느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물론 강의 시간에 앉아 있는 많은 시간을 “맞아요, 맞아요”라는 의미로 고개 숙여 졸면서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거대함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큰 것은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위험도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모든 경험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장치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장 중심에 있는 학문이다.
칸트는, 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완성되어 당시까지 한 발짝도 발전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칸트의 생각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84년에 태어났고 칸트는 1724에 태어났으니 약 2000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발전하지 않고 전승된 셈이다. 이런 사실은 다른 철학자들이 논리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그만큼 그들이 보기에 완벽해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 데카르트, 로크, 버클리, 흄 등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다. 한 예를 들자면, 데카르트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해석기하학의 기초를 제시한 천재였다. 그럼 해석기하학이란 무엇인가? 그건 좌표평면을 도입하여 도형을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해석기하학’이란 말은 어렵지만, 기본적인 것은 여러분이 고등학생 때 배우는 것이다.
잠깐 수학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여러분들은 수학시간에 도형과 방정식을 배웠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수학
시간에 이것들을 각 단원에서 배우게 되는데, 나는 처음에 두 부분이 참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방정식에서는 덧셈, 뺄셈 등을 배우지만
도형에서는 삼각형, 사각형 등을 배우는 것이다. 중학생이 보았을 때는, 참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내용들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이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데카르트 이전까지는 도형과 방정식이 서로 연관될 수 있음을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