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초의 상념

내가 처음 만난 산사의 여름 단풍은,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에 몰입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철학사의 여러 가지 맥락을 설명해 주면서 만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 사상의 핵심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라고 보면 돼. 이것이 첫 번째 특징이야. 언어 분석 철학은 올바른 사고의 특징을 연구했지. 그래서 무얼 찾으려고 한 걸까? 바로 절대적으로 옳은 객관적인 진리를 찾으려고 한 거야. 이러한 성향을 ‘모더니즘’(modernism)이라고 불러. ‘포스트’(post)는 ‘그 후’라는 뜻이 있어서, 결국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 다음에 오는 사상을 말하지. 정리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 다음에 오는 것,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것, 즉 객관성이라는 것은 없다는 주장을 말하는 거야."

나의 설명이 반말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학번이 빨랐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말을 놓게 된 것이다. 그만큼 친해졌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건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상대주의의 늪에서 구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누누이 설명했듯이 상대주의는 훌륭한 생각의 체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여름 단풍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칸트 등에 관심을 갖기를 바랬다. 혹은 프레게나 괴델과 같은 현대 철학자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유클리드 기하학과 거짓말쟁이 역설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상대주의와의 싸움이었던 철학의 역사에 두 개의 탑이 세워졌어.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가 「반지의 제왕」2편, ‘두 개의 탑’이었다.) 하나는 유클리드 기하학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말쟁이 역설이야. 유클리드 기하학은 하나의 큰 건축물, 경전 혹은 프로그램과 같고 거짓말쟁이 역설은 그 건축물의 심각한 균열, 프로그램의 버그와도 같애. 이걸 이해해야 현대 철학에 있었던 엄청난 격동을 이해할 수 있어.”
……

유클리드 기하학은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생각의 체계, 즉 이론이 갖추어야 할 두 겹의 대화에서 매우 성공적인 역사적 모범이었다. 그것은 몇 개의 단순한 공리에서부터 시작해서 너무나 많은 내용들을 앞뒤가 잘 맞게 펼쳐 보였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고, 원주각의 크기는 중심각의 절반이라는 것, 그리고 원의 면적과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거의 모든 도형에 관한 지식들이 거기에서 도출되고 증명되었다.

여기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이미 학교에서 많이 배워서 알고 있을 것이고 오히려 그 때문에 많은 설명이 여러분을 지루하게 만들 것이다. 그 대신 여러분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만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공리체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아주 당연해 보이는 몇 개의 명제들에서 출발해서 이것들을 짜 맞추어 기하학의 수백 개의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도출하고 증명하는 체계 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이러한 체계를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려고 했다. 특히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와 같은 합리론자들은 이러한 유클리드 기하학에 매혹되어서 합리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철학자들의 사고를 지배했기 때문에 유클리드 기하학은 철학사를 지배하는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 중의 하나이다.

거짓말쟁이 역설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데, 너무 간단한 얘기라서 그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든 그런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크레타 사람이 말하고 있다.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만 하는 거짓말쟁이다”

생각해 보자.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만 한다면 그 말을 크레타 사람이 했으므로 그 말도 거짓말일 것이다. 거짓말인 그 말은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말이므로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시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므로 그 사람이 한 말은 옳게 되고, 이 때 옳은 말이란 다시 크레타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말다. 다시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시 크레타 사람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므로 …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건 말장난 같지만 실제로는 그 철학적인 의미가 크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설명해 보겠다.

모든 생각의 체계에는 질서가 있고 규칙이 있다. 이러한 규칙에 따라서 생각의 체계를 확장하게 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그런 규칙에는 사실,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은 문제가 들어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열심히 만든 생각의 건축물은 갑자기 무너질 수 있게 된다. 그건 마치 법망에 문제가 있어서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법을 지키지 않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각의 규칙인 논리에도 하나의 결정적 모순이 있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쟁이 역설의 철학적 가치가 여기에 있다. 거짓말쟁이 역설은 그 결과가 엉망이라는 것을 굉장히 잘 보여준다. 그 말을 그대로 따라가면 그 말은 참말이 되었다가 금방 다시 거짓말이 되고 다시 또 참말이 되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법망에 허점이 있는데 어떤 규칙을 어떻게 금지해야 모든 사기꾼을 잡아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 거짓말쟁이 역설을 말장난으로 보아 넘기기 쉬운 만큼, 이 거짓말쟁이 역설은 약 2000년 동안 별로 대수롭지 않게 취급받았었다. 그런데 20세기가 되어서 언어 분석 철학이 발전하면서 이 거짓말쟁이 역설의 가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언어 분석 철학의 중심에 현대 논리학이 있다.

그러니까 칸토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는 집합론으로 현대 수학의 토대를 건설하였고 프레게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현대 논리학을 건설하였는데, 맨 마지막에 바로 이 거짓말쟁이 역설에 걸려서 자신들의 학문체계를 완전히 완성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수학과 논리학 두 분야에서 그 규칙을 완전히 따르지만 분명한 모순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형식만 달랐을 뿐 거짓말쟁이 역설과 같은 구조였다.

이 거짓말쟁이 역설은 상대주의의 선봉장이나 핵심 요원과 같다. 자기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그 거짓말이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내용인 것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함에 따라서 그 상대적인 내용 중의 하나가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라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거짓말쟁이 역설	상대주의의 역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생각에 대한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거짓말쟁이 역설과 상대주의가 말하는 것의 핵심적인 뼈대가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에서 같은 뼈대를 찾아내는 일, 이것도 철학이 하는 일이다.

칸토르와 프레게가 집합론과 현대 논리학을 건설한 후 이 거짓말쟁이 역설에 당했다는 것을 말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 많은 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공들여서 만든 수학의 논리적 체계에 괴델이 거짓말쟁이 역설로 만든 무기에 의해 공격당했다. 그 무기는 최초에 칸토르가 발명한 것으로서 “대각선 논법”이라고 한다.

칸토르와 프레게, 괴델 같은 사람들은 수학자이면서도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철학자로 본다면 그들은 논리철학자에 해당하고 곧 언어 분석 철학자에 해당한다. 모르는 철학자들의 이름, 갑자기 어려운 말들이 나왔지만,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알면 된다. 하지만 핵심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 거짓말쟁이 역설로 인해서 모순이 나타나면서 무너진 것이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방법적 체계, 즉 공리적 논리 체계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나는 여름 단풍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이야기가 철학에 대한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건설한 철학 체계가 하나의 버그에 의해서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은 극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또한 철학이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많지만, 옳고 그름의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름 단풍이 개인전을 한다고 그림을 그렸을 때, 나는 그녀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이런 철학 사조에 바탕을 두고 시를 하나 써서 선물했다. 그 시의 제목은 “사랑초의 상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