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철학을 가장 간단히 말한다면, 그건 합리론과 경험론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단순무식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물론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긴 하다.

자, 앞에서 말한 경험론과 합리론의 논쟁을 다시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서 누가 옳다고 생각하는가? 혹시 양자가 다 옳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은 모두 우리의 주관과 세상이라는 객관이 결합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 한 쪽에서 다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이것이 칸트 철학의 중심 생각이다. (여러분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표로 그려 보면 다음과 같다.


경험론 합리론
모든 것은 경험해야 알 수 있다.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경험적 내용이 지식이다. 우리의 주된 지식은 이성의 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칸트: 우리의 지식은 이성의 형식과 경험의 질료가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나는 철학 공부를 시작한 얼마 후에 칸트 철학을 배우면서 나도 했던 생각을 칸트가 먼저 해서 유명한 철학자가 된 것을 보고 잠시 배가 아팠었다. 내가 칸트보다 먼저 태어났다면 나도 칸트처럼 될 수 있었는데~. 대학 1학년 때였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이라는 것이 나의 개똥철학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꼬리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칸트 철학에는 어떤 내용이 더 있는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주관과 객관이 합쳐져서 지식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우리의 지식 속에서 어떤 부분이 주관이고 어떤 부분이 객관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하지 않고서 어물쩡 대답해서는 정말 개똥철학이 되고 만다. 경험론자와 합리론자가 그대로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한 이유가 그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에 나름대로 모두 대답했다. (이것은 철학 속의 두 겹의 대화 중에서 철학 안의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그 자체로 말이 된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그 당시의 시대에서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력있는 말이었고, 지금의 우리가 들어도 상당부분 설득력있는 설명이다.(이것은 철학 안과 세상과의 대화가 이루어짐을 뜻한다.) 그 내용을 잠깐 들여다 볼까?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칸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우리의 인식은 이성의 형식과 감각적인 내용(혹은 재료)이 서로 결합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형상과 질료가 결합해서 존재자가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여기서 이성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6하 원칙(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감각적인 내용은, 그 6하 원칙에 들어가는 구체적인 내용에 해당한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설명하자면, 칸트는 6하 원칙이 곧 주관이 경험에 작용하는 바이고 경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한 형식에 따라서 정리되어야만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느낄 때, 이러한 6하 원칙과 같은 형식 없이 보고 듣고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철학이 그러하듯, 칸트도 굉장히 당연한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6하 원칙과 같은 이성의 형식을 칸트는 두 종류로 나누었는데 그것은 순수 감성의 형식과 순수 지성의 형식이다. 갑자기 생소한 말들이 마구 쏟아져서 어렵게 보일 수 있으므로 표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된다.

순수 감성의 형식 순수 지성의 형식
시간과 공간 범주들: 속성, 관계, 양, 질…
직관적으로 부여함 생각하면서 찾아냄

 

간단한 서양 철학사 <7>: 칸트

여기서 ‘범주’라는 말이 낯설어 보일까봐서 다시 설명하겠다. 범주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개념들을 분류해서 그것들을 10개의 부류로 나누었고 거기에 범주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그 범주에는, 속성, 관계, 양, 질 등이 있다.

이제 칸트의 용어법으로 직접 설명하면 이렇다. 즉, 칸트는 우리의 지식이 ①시간과 공간이라는 순수 감성의 형식, ②범주라는 순수 지성 형식, ③그리고 경험적 직관의 세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금방 어렵게 보일 수 있으므로 예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 날 만났고 나는 그 사람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났다. 이제 이 사실을 안다고 할 때,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 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나 스스로 알 수 없다. 이것이 경험적 직관의 내용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내가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우연히 그림을 내게 그려준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이 내게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 날 만나는 사실을 아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과 그림을 받는 것 사이의 연관관계가 다른 것이다. 후자처럼, 그 연관관계가 ‘~위해서’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앞의 만남이 그림 제공의 이유라는 것은 단지 보고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칸트는 우리가 인과관계의 형식을 부여한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인과관계의 형식이 선험적 지성의 형식이다. 즉 내가 어떤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보고 들은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해야만 하는데, 그 정리방식이 순수 지성 형식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 모든 내용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어야 한다. 즉 언제 어디에서 보고 들은 내용일 것이다. 이렇게 무엇을 알든 그것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를 생각하는 정리작업이 곧 순수 감성의 형식에 속한다.

여기서 시간과 공간이 다른 범주들과 구분되는 까닭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보고 듣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부여하는 형식이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우리가 형식으로 부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별 생각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어떤 것이 큰지 작은 지,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어느 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등은 생각과 더불어서, 생각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감성의 형식이라고 하고 다른 범주들은 지성의 형식이라고 구분한 것이다.

일단 그렇게 알아 두자. 더 알고 싶다고?
너무 많은 걸 알면 다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