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윗 글의 주장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에 관해서는 필자도 이해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동의했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이해라는 것은 필자의 개인적 능력에 한해서 가능한 것이지만 동의란 동의받아야 할 대상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글의 도입부에 "칸트가 플라톤과 같은 몽환적 이상주의자를 매우 존경스러운 존재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은 그러한 몽상에 근거한 이념을 선험적인 인식의 근거를 모토로 삼아 완전히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독자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인가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할 때는 그것에 대해서 완벽한 수준에 까지 지식을 확보하고 나서 자신의 견해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도 감성계가 오성에 매우 까다로운 제한을 가한다는 이유로 감성계를 버리고 이데아의 날개를 펴서 감성계의 피안, 즉 숭수오성이라는 진공으로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러한 노력을 아무리 계속하여 보았자 어떤 길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오성을 움직이기 위하여 발판이 되는 것 즉 자기 힘을 뻗을 수 있는 지점을 갖지 못하였다.”
라는 부분도 있다. 이글은 순수이성비판의 [들어가는 글]에서 가져온 듯 하나, 아마 숭수오성이라고 오타난 부분은 순수오성일 것이고, 글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아 그것은 순수오성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 아니라 순수이성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감성계는 오성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는 정신영역이다. 글의 인용을 처음부터 제대로 해주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사실 순수이성비판 자체가 매우 난해한 책이라 많은 독자로 하여금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입법이나 행정이 정비된다면 어떤 형법도 불필요함은 지당하다.”
형법이라는 것은 일종의 법의 실행이다. 입법이 법을 만드는 과정이고, 행정이 법의 규정하에 이루어지는 일반사회의 생존적인 행위라고 정의할 때에 형법은 만들어진 법의 실행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지니고 있는 판단력과도 비슷하다. 한가지의 판단에 있어서 다른 한가지의 상대적 손실을 감행하는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이 실행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행정은 법 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제외하기로 하고, 형법이 없이 법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간다.
도대체 어떠한 상상에 근거하여 이러한 정의가 도출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마치 이 내용은 “사람이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라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인 것 같은데, 확실히 사람이 일하지도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상당히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법없이 존재하는 입법이나 행정역시도 동일하다. 아니 어쩌면 실행없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몽상의 나라에서는.
형법이 없다는 것이 지당하다는 문제에 있어서 필자는 그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라고 먼저 지적한 까닭은 그것이 만일 가능하지 않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망상 속에서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충분하다고 하다면 모를 일이지만 인간은 몽상 속에서 사는 존재라고 규정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글이 약간 웃기는 형식의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사실 윗글의 주장자가 적은 글이 가히 의미있는 내용도 아니고, 가치 있게 생각할 만한 어떠한 개념도 상실했기에 도저히 진지하게 글이 적혀지지 않았다.
이 점에 있어서 양해 바란다.
이것으로 필자의 글을 마치기로 한다.
필자의 글을 읽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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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