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실존 주의 (實存主義 : existentialism)
실존주의의 원류를 찾으라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게고르(Kierkegaard, 1813-1855)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헤겔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가지고 왔다. 무엇보다도 헤겔의 변증법은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헤겔을 비판했다. 헤겔의 변증법은 변증법을 통해 의식이 보다 고차원적으로 나아감으로서 세계사적 위치에 서게 된다는 이론이였는데, 그에 반해 키에르게고르는 세계사적 위치가 아닌 우리 삶의 본질로 의식이 고차원적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실존주의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니체였다. 니체는 실존주의의 어떠한 형식을 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실존주의에는 어떠한 형식도 가미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존주의 자체가 그 형식을 완전히 부정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의 본질은 언제나 변덕이 심하고 온갖 우연적인 발생이 가득하기 때문에 형식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니체에게서 많은 부분을 얻어온 듯 하다.
실존주의는 일종의 개인적 성향에 의존한다. 그것은 어떠한 객관적 타당성을 입증시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아니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에)일종의 전기(傳記)같은 형식을 빌림으로서 특정인물의 사상적 배경을 채워놓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실존주의는 철학으로서의 가치를 가장 낮게 받는다.
정통주의(正統主義)철학사가(哲學史家)들에게 있어서 실존주의는 매우 골치아픈 존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실존주의 그 자체가 아무런 내용도 함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적 배경 공간적 배경을 따라 언제나 자기 멋대로 사상을 변동시켜 버리고는 어떠한 자기 정체성도 부여하려 하지 않는 것인 것이다. 그래서 정통주의 철학사가들은 실존주의 자체를 철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그들의 입장의 대부분은 실존주의적인 것에 대한 본질적인 무능에 관한 것인데,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것이 옳은 점이 많다. 많은 실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철학적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실존주의 자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실존주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기초가 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철학적 양식을 가지기 위해서 많은 부분 실존주의로 부터 내용을 빌려오게 된 것은 사살이나 실존주의 자체가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니다.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앞서 말한 키에르게고르와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을 들 수 있고, 실존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들의 사상적 근본을 마련하게 해준 철학자들로서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와 쇼펜하우어를 들 수 있다.
9-4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원래 철학적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였다. 예술분야에서 전통적인 예술형식을 부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형식에서 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은 시작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어원은 시간적인 순서의 뒤를 나타내는 [Posterior]와 근대를 나타내는 [Modern]의 접합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신근대(新近代)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근대의 출발은 프랑스 혁명이후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왕권을 부정하고 모든 시민들이 자신들의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억압과 예속으로 부터 탈피한 의식적인 전환은 프랑스 혁명당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이루어낸 혁명의 결과로 전세계는 시민사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구조의 합리성에 대해서 매우 만족해 하게 되어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어떤의미에서 볼 때에는 혁명과 동시에 보수성도 동시에 띄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르네상스와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문화적 부흥기를 가리키는 말로 16세기경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고대 그리스 문화의 재현이였다. 즉 이미 지나간 과거의 훌륭한 문화적 형식들을 재현하자는 의미에서 르네상스는 일어난 것이다.
이른바 모더니즘은 스스로가 역설에 찬 사상이였다. 프랑스 혁명이 그것을 증명하듯 시민들이 모두 봉기하여 시민의 자주적 주권을 유린하던 절대왕정을 몰아내고 새로운 형태의 군주인 나폴레옹을 선봉에 내세웠으나 그 역시도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다시 옛 문화를 부흥하려 한 것이다. 모더니즘은 일차적인 시대적 변화에서 비롯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설적인 성격의 모더니즘으로 부터 극복하려 한 것이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완전한 형태의 혁명을 이루어 내려 했다. 즉 새로운 문화적인 형태란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의 도전으로 창조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작인 것이다.
철학에서의 모더니즘은 멀게는 데카르트 가깝게는 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이성의 절대적인 합리성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고대로 부터 받아온 이성의 우월성에 대해서 그들은 어떠한 의심도 가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 받아 그것을 최상위의 형식으로 결정화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극복에 찬사를 금치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일차적인 극복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누리게 되는 시대가 왔다. 모든 비합리성은 이성의 합리적 판단에 의거해서 절대성으로 교환될 수 있다. 누구도 이 정신에 대해서 부인할 수 없었다. 아니 부인할 엄두 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모순을 스스로 내포한 사상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언젠가는 다시 한 번 극복되어야 했다. 그 중심에 니체가 있었다.
니체는 모든 형식들이 낡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일이 너무 옛 형식에 치우친다고 보았던 것이다. 사실 쇼펜하우어는 이 사실에 대해서 먼저 인식하고 있었던 철학자였다. 그는 자유주의가 성공한 프랑스에서 새로운 문화의 숨결을 느끼고 프랑스의 문화에 극찬을 보낸 한 사람이였다. 독일은 지나간 옛 형식에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니체도 이와 같았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니체는 모든 것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해체해야만이 그는 완전한 재탄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때때로 “철퇴를 들고 철학을 하라.”, “무덤위에서만 부활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러한 니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심지어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니체주의의 일환으로 이해하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니체와 포스트 모더니즘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옛 형식을 완전히 부정함과 동시에 옛 형식의 권위조차도 부정해 버렸다. 그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본질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단지 모더니즘의 부정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어 버렸고, 심지어는 동질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으로 부터 출발한 문화적인 특수성과 완전성은 완전히 해체되어 쓰레기와 같이 나뒹굴게 되었다.
좀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역사적인 배경을 들겠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실 미국에서 발생되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발생하게된 시점을 고르라고 한다면 1970년대가 적당할 것이다. 아니 그렇다. 미국에서는 그 당시 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하게 되었다.
세계 2차 대전 승리후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어진 냉전. 이것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월남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월남전은 미국의 오만한 도전이였다.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의 절대자가 될 수 있으리란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은 자국내의 반전 분위기를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케네디의 동생도 그 중 한 명이 되었다. 미국의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우던 닉슨은 대통령이 되었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의 권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낱낱히 밝혀내었다. 드러난 것은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함 뿐이였다. 그들이 자랑하던 숭고함은 없었다.
이 때부터 문화는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기 까지 문화는 온통 신 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권위는 몰락했고, 권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수많은 민중들이 그 속에서 기쁨을 향유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이 우월하다라는 것의 의미조차도 상실했다. 모든 것이 동질화 되었고 모든 것이 평등화 되어 버렸다. 문화적인 이질성 속에서 우열이란 가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필자는 여기서 베트맨(Batman)이라는 영화를 이야기 하고 싶다. 베트맨은 새로운 영웅주의다. 미국이 당시 자랑하던 슈퍼맨(Superman)과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영웅이 바로 베트맨이다. 베트맨은 슈퍼맨과는 달리 매우 평범한 인간이며 오히려 인간적인 내면의 모순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었다. 그는 영웅이라기 보다는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또 하나의 악당에 지나지 않았다. 영웅이라는 권위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슈퍼맨과 니체의 초인이 영어로는 같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니체 해석가는 니체의 초인 사상으로 부터 이 슈퍼맨을 빌려왔다고 하는 견해도 내놓았다. 사실상 그러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결국 이 점은 니체의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낭만주의적 문학에 많이 젖어 있었음을 시사해주는 바가 큰 부분이다.)
베트맨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중문화의 표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적인 영웅의 이미지로 부터 완전히 탈피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 범죄자같은 영웅으로 부터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있으나 글이 쓸데 없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서 그만 두기로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이러한 양면성은 모순을 완전히 극복했다기 보다는 지금 까지 있었던 모순들을 그대로 흡수했다고 하는 편이 낳을 것이다. 모순은 그대로 남아있는 채 포스트 모더니즘 속에서는 그 모순을 일방적인 형태로 드러내지 않고 양면적인 형태로 드러내었다. 정의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 되었다.
위에서 필자가 마르크스와 니체의 대립을 이야기 하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연관시켰다. 그것은 옳은 말이다. 포스트 모더니즘 속에서는 마르크스 그리고 니체가 동시에 존재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하던 인간의 동등성 그리고 니체가 주장하던 문화적 형식의 완전한 해체.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 들 둘을 완전히 함께 포함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적인 공동체에 인격이 예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니체는 인간은 동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들을 배격했다. 시대적인 배경이 이들을 배격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복잡성과 문화적인 혼동 속에서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은 채 포스트 모더니즘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니체와 포스트 모더니즘을 일련적인 선상에다 두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니체가 원하던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9-5 비트겐 슈타인(Wittgenstein, Ludwig Josef Johann)과 하이데거(Heidegger, Martin)
실존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상기(上記)의 둘을 언급한 바 있지만, 이 들 둘을 단지 이름 만을 명시한 채 넘어가게 된다면 너무 무책임한 처사일 것 같아 니체 사후의 맨 마지막에 이 들을 거론 하기로 한다.
위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실 이 들의 창조한 것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니체는 포스트 모더니즘과는 다른 색체를 띄고 있지만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같은 색체의 사상가들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왜 이렇게 표현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상기(想起)해야 한다. 니체는 해체와 동시에 창조의 철학자였다. 그는 스스로가 낭만주의를 부인했지만 그의 철학 전체 속에서는 낭만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는 니체로 부터 철학을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들에게서는 낭만주의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다.
이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내포한 성질의 것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철학자들이다. 모순을 이해했지만 극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 모두를 융화시키려 하였다. 비트겐 슈타인과 하이데거는 그렇게 철학을 한 사람들이다.
먼저 비트겐슈타인(1889-1951)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유명한 저서 (철학적 탐구)는 일상생활의 언어적 사용을 예로 들면서 우리의 언어가 완전한 형태의 논리적 형식을 취하는데 있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언어의 논리성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철학자인 것이다.
하이데거(1889-1976)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개별적 인생으로 부터 철학을 시작한다. 이른바 ‘개똥철학’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철학적 의미의 형이상학적 색체를 띄도록 하는데 주력하였다.
이 들 모두들 새로운 형태의 철학에 착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들 실패했다. 이 들이 한 철학은 철학이라기 보다는 이전의 철학을 부정하는 노력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비트겐 슈타인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우리의 감각적 관념으로 부터 파생된 언어가 수학적 논리성을 띌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적 관념에서는 수학적 논리성과는 전혀 다른 개별적인 요소들이 무수히 숨어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학적 논리성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였다. 단지 무수히 많은 다른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였지만 말이다. 그는 문제는 제기했지만 해석하는데는 실패했다. 그의 철학적 탐구를 읽어보면 차라리 그의 잡다한 사고로 부터 나온 개념들을 일관성없이 적어놓은 수첩이라고 하는 편이 낳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 와는 별개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인생 즉 우리가 직접 살고 있는 바로 이 생(生)의 문제에 대해서 고심했다. 우리가 과연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그는 회의한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우리는 본래 가지고 있는 생의 경향성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개인적 생의 테두리에서 삶의 의미를 해석함으로 진리라고 하는 것은 개인성의 포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우리는 우리가 생의 의미를 해석할 때, 우리는 우리의 성향을 먼저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지양함으로서 우리는 세계적인 관조(觀照)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관조보다는 우리의 생의 문제에 집착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세계적인 문제를 부정해 나아갔다.
우리는 이들의 공통점을 정통성을 중시하는 철학사가들로 부터 얻어낼 수 있다. 정통적인 철학사가들은 이들을 철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한낱 아류(亞流)일 뿐이다. 아무런 지적인 형식의 철학적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 않는 그저 ‘일반인’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철학’인 것이 철학계 내에서는 단지 ‘헛소리’일 뿐인 것이다.
필자의 글이 심하게 쓰여졌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러한 점이 없지 않다. 그점 사과드린다. 하지만 필자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이러한 전통과 정통을 중요시하는 철학사가들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철학자들은 상당히 고뇌해야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을 철학자로 이해해야 하나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나. 상당히 신시대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개방적인 철학사가들에게 있어서 이들은 또다른 부류의 철학자들일 수도 있지만,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학문인 철학에 있어서 이들 철학자들은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라고 밖에는 달리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니체마저도 휩쓸리게 되기도 했다. 먼저 이들의 철학적 양식의 근원지인 니체는 무엇보다도 많은 철학사가들의 공격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심지어는 니체를 철학자라고 하지 않을려고 하는 경향마저 존재했다. 그의 저서 자체가 철학적 문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니체는 위에 언급한 사람들과는 달리 매우 진지한 사람이였다. 니체는 스스로가 역사적인 사명을 띄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번도 철학에 대해서 비웃음을 던진 적이 없었던 니체였다. 그는 스스로가 철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단지 그는 다른 방식으로 철학을 했을 뿐이였다.
니체에게 있어서 형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의지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였다. 그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증명도 하려 하였다.(물론 매우 추상적인 방법의 증명이기는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필자가 니체를 옹호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니체를 옹호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니체를 별 가치도 없는 철학자라는 것의 견해에 대해서 부정하려 하는 것이다. 물론 니체이후로 별 가치도 없는 철학자들이 무수히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니체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인 것이다.
니체는 칸트 이후로 내려온 독일의 월등한 정신적 유산아래서 성장해온 사람이였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다른 우수한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우수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니체 이후의 철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문화적 배격현상들이 그들을 엄습했던 것이다. 세계2차대전의 발발과 니체, 프로이트 등 반 사회적 경향에 동조하는 지식인들, 그와 동시에 사회주의적 낭만성에 열광하던 수많은 대중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니체 이후의 철학자들은 철학을 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원칙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수 많은 세월동안 단 한번도 의심되어본 적 없는 철학적인 자세에 대해서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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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