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정말 재미있는 사고 방식을 지녔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감각과 모든직관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나?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주어진 순수이성도 사라지지.
직관과 감각이 주어지지 않은 채로 이성을 사료 한다는 것은 마치 비둘기가 진공 중에서도 날 수 있을 거라고 착각 하는 것과 같다고 칸트가 말한 바 있지.
당신이 말하는 이성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허무>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
나는 그런 것을 흔히 가리켜 <망상>이라고 하지만 말이야.
이성이 무엇인지 아는가? 객관성? 완전한 욕구의 절제? 얼토당토 않는 소리지.
이성은 인간이 사료하는 주관성에서 보편타당한 인과 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욕구도 어느 정도 절제할 필요가 있지. 물론이야. 그건 이성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거든.
그런데 재미있는건 말이야. 이성의 논리에 입각해서 마치 모든 사고가 선의지로 행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러한 선의지는 무엇으로 증명할 거지?
아마 하나 밖에 증명할 것이 없을걸? 이념이나 사상이겠지.
도나 인을 말했나? 도나 인을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논리적 객관성을 증명시킬 수가 있지?
분명히 어떠한 논리든 도나 인 같은 것을 따지고 들어서 그것이 자기의 이념에 (자기가 생각하는 도나 인)같은 것에 적용시킬 뿐이지.
아무튼 자네 같은 사람은 재미있어.
마치 자기 자신은 선한자의 화신으로 나타난 듯 타인의 인격이나 도덕성에 비웃음을 던지는데 말이야. 타인의 인격이나 비웃음을 던지는 것도 선의지라고 할 수 있는 모양이지? 그것도 도와 인인가?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은 없어. 나중에 도망갈 생각이라면 내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그리고 당신 인간의 편견과 인류 모두가 생각하는 공통적인 타당성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나?
나를 편협한 이성 주의자로 몰아 붙이는 것 같아서 말이야.
결국 그러한 타당성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안됐지만 그것도 주관성이 지배하는 오성의 개념을 끌어와야 할 걸? 그게 싫으면 그냥 허망한 이념으로 다시 남겨두든가.
어느 쪽도 나를 이해시킬만한 논리성이 제공되지 못하는군.
완전한 논리성에는 감정이 없다고 했나? 완전한 논리성은 무엇으로 판단할 거지?
객관적인 입장이 사료 될 수 있나?
차라리 주관적일지언정 보다 확실하고 합리적인 논리가 완전한 논리성에 가깝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당신 마음에 들든 안들든 상관 없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자유지.
그런데 말이야. 객관적 논리성이니 뭐니 끄집어 내면서 나를 도덕적인 결핍자로 만들려는 노력은 되도록 하지 않았으면 해.
왜냐하면 그것은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이념에 종사하면서 이성적 의지가 결핍된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거든.
안타깝지만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군.
그럼 다음에도 훌륭한 가르침 전해 보게나.
- 추신 -
그리고 말이야 난 타인의 논리성의 나약함을 비판할 지언정 그 사람의 인격은 무시하지 않았네. 주둥이를 닥치라니? 자네의 진리에는 자네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둥이를 닥쳐야 되는가?
다음 부터는 그러한 말은 삼가하도록 하게. 너무 천박해 보이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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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