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지혜의 학문인가?

 

철학이 지혜의 학문일까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철학을 전문적으로 궁부한 사람들이 철학을 지혜의 학문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죠.

많은 분들이 철학에 대한 묘한 기대를 가지고 철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것은, 거기에서 어떤 인생의 철리같은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죠. 그래서 그 속에서 삶의 좌표를 찾고, 결과적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다보면 곧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용어들과 설명에 질려서 곧 포기를 합니다. 어느 정도 이상 공부를 한다면 그 어려운 내용에 비해서 실제로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공허감에서 공부를 포기하기도 하죠.

미리 단적으로 말씀드려 두면, 적어도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철학 속에서 삶의 의미 자체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삶의 의미는 삶 속에서 찾아야 하죠. 철학은, 어떤 거냐하면,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는 진지한 노력을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철학 속에서 찾으려 하는 입장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즉 다른 철학자가 말해 놓은 어떤 지식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 다시 말하면 남의 손으로 자기 삶의 중심을 만들어 보려는 것, 요약해서 말하면, 타인의존적인 다소 나약한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를 삶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죠. 이것은 굉장한 노력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데, 이러한 삶에 대한 정면도전을 회피해서는 진정 올바르고 풍부한 삶을 살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1그렇다면 철학은 어떤 점에서 도움을 주느냐? 이러한 자기 삶을 자기가 건설하려고 하는 사람이 생각의 부족이나 착오에서 생겨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그것은 마치 건축학이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를 결정해 주지는 않지만 건축가가 만들고자 하는 집이 결정된다면 어떻게 지어야만 그러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혹은 그 건축가가 생각하는 집을 실제로 짓는 것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 말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철학 속에서 어떤 뚜렷한 이득을 얻을 수 없고, 그래서 많은 공부를 하고는 공허감에서 끝내는 사람은, 제가 생각컨대, 어려운 공부를 하고서는, 가까운 것을 보면서도 먼 것을 보지 못하고 또한 작은 것은 보면서도 큰 것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철학적 지식이, 그리고 철학자가 가진 능력이란 대학 강단이나 토론회 속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실제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작아 보입니다. 철학자가 아무리 토론 속에서, 그리고 그의 책 속에서 올바른 이야기를 떠들어도 하나못해 건달 한 명의 주먹에도 쓰러질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을 공부해야 하겠죠. 그러면 철학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철학은 세상과 전혀 따로 떨어져 있는가?

철학은 세상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작은 부분에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큰 부분에서, 그리고 아주 멀리에서만 움직입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한 철학의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최근 20세기에 지구의 반쪽은 자본주의가 지배했고 나머지 반은 공산주의가 지배했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도는 무엇에 근거하나요? 네, 철학입니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고 아담 스미스가 자본주의 이론을 만들었죠. 아, 이것들이 철학 이론이 아니라 경제학 이론이라구요? 이 이론들은 단순히 경제학 이론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이론은 개인주의 사상과 연관되어 있고 마르크주 이론은 헤겔의 철학을 변용했죠. 유물 사관이 그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볼까요? 동양의 2천년은 유교가 지배했고 서양의 2천년은 기독교가 지배했죠. 유교는 제자백가 시대에 태어난 사상이고 기독교는 로마시대에 시작된 사상입니다. 이 둘은 모두 종교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철학적 이론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대 이후의 긴 역사 동안 동양의 문화는 모두 유교 철학을 확립하는데 공을 들였고 서양의 중세는 모두 기독교 철학을 확립하는데 공을 들였죠. 희랍의 신화도 종교적이지만 그것은 양자만큼 철학적 이론의 토대를 갖지 못했기에 신화로 끝났습니다. 한편 이슬람을 지배하는 강력한 종교인 이슬람교는 코란이란 경전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것 역시 그 지역에서의 철학적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이론적 규모가 작기 때문에 영향력 또한 작죠. 불교 역시 종교이면서도 철학입니다. 그리고 그 철학적 이론의 규모만큼 세상을 지배하고 또 오랫동안 지배합니다.

철학자는 깡패의 주먹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 깡패는 그 철학자가 할 수 있는 것처럼 몇백년, 몇 천년의 미래를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철학은 한편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죠.

그러면 어떤 점에서 철학은 지혜의 학문인가? 저는 철학이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그래서 변화하는 것 중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다양한 것 속에서 단순한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죠. 이러한 목적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은 많지만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으면서 불변의 원리를 찾아서 미래를 먼저 준비할 수 있도록 하죠. 미래를 먼저 준비해서 화를 먼저 면하고 복을 크게 가질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이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삶의 의미를 그 확고한 토대 위에서 지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면 현명한 사람이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자기 틀 속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면 역시 현명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제 생각도 변할지 모릅니다.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괜히 현명한 척? ^^)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영화로 읽는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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