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에 대한 러셀의 반응

 

 


역설은 이론체계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학자들이 역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물론 '논리적으로' 혹은 '머리로만' 이해한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음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그렇게 쉽지 않다.

역설이 하나 발견되었다. 그냥 무시하면 어떻게 되지? 어차피 어렵게 발견되었고, 그래서 잘 알기도 어려운 것 아닌가?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 부분만 잘라내면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역설이 좀 있으면 어때? 인간의 작품에서 완벽한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런 의구심들이 우리들 마음 속에,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논리학을 공부할수록 역설의 강력한 파괴력은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그러다가 아래의 책을 읽다가 보니, 대 학자인 러셀 역시 역설을 간단하게 생각하려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감이 많이 되었다. 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 인용한다.

 


출처: 존 베로/박병철 역(2004), 『수학, 천상의 학문』, 경문사. 160-161쪽.

이 발견은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라는 저서를 마무리짓던 러셀의 자신감을 뿌리채 흔들어 놓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수학을 기호 논리학의 기초 위에서 재편성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서 우리는 이 역설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그의 힘겨운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처음에 나는 그 모순점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논리에 조그만 실수를 저지른 것쯤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것은 하찮은 실수 때문에 초래된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 1901년 하반기 내내 나는 그 문제만을 생각하며 살았지만, 결국 그것은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 나는 쏙독새가 내는 세 가지 유형의 소리를 들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 소리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매일 아침, 책상 위에 백지를 펼쳐놓고 그 앞에 앉았다. 무언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곧바로 종이 위에 옮겨 적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될 때까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는 여전히 백지인 채였다. 우리는 겨울을 런던에서 보냈고 겨울 동안에는 일할 생각이 없었지만, 1903년과 1904년의 여름 동안은 지적인 딜레마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는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수학의 원리>의 집필을 끝내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에는 그 빈 종이를 쳐다보면서 남은 평생을 보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 모순들은 사소한 문제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런 하찮은 문제로 인해 나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타오를 지경이었다.


이 모순을 발견한 후, 러셀은 그 당시 수학의 논리적 기초에 관한 두 번째 책을 마무리 중이었던 독일의 저명한 논리학자 프레게Gottlob Frege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프레게의 연구에 치명타를 입혔다. 그는 12년 간의 연구 결과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아주 침착하게 저술을 마무리하였다. 자신의 책 뒤에 다음과 같은 감사의 글을 추가했던 것이다.

 

과학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재앙은 연구를 막 끝낸 뒤에 그것과 완전히 상방되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을 즈음에 버트런드 러셀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편지에 의해, 내가 바로 그 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영화로 읽는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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