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ouble with Possible Worlds"(번역본)

 

 

"The Trouble with Possible Worlds"(번역본)
William Lycan


문제거리: 어떤 의미에서 가능 세계들, 실재하지 않는 것들, 혹은 가능하지만 비현실적(nonactual)인 세계들이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 비실재적인 개별자들을 상정함으로써 우리는 true negative existentials를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심적 대상들의 지향성에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양상성을 양화사에 환원시킬 수 있을 것이며, 명제태도들과 다른 문제거리가 되는 constructions의 host에 대한 타르스키 유형의 의미론을 형식화하고, 프레게적 의미와 언어적 의미 사이의 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연관성을 보여주며, 반사실문들과 다른 조건문들에 실용적인 빛을 던져주며, 의사결정의 이론적 연구를 위한 엄격한 틀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말하기 방식조차도 비실재적인 가능한 것들을 구체화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한 필요성에 굴복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런 비실재적인 가능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경멸한다. 놀라운 것은, 수 년 동안, 단지 가능한 것들에 대한 호의자와 반대자들 간의 논쟁은 직관적 ventings, 슬로건의 반복, 일탈적이거나 의도에 찬 오해에 대한 상호 비난, 나쁜 농담, 그리고 단순한 오용으로 폭넓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직 최근에 이르러 몇몇 철학자들이 심사숙고되었고 고난에 찬 방식으로 문제의 밑바닥에 도달하였다. 여기서 나는 이 쟁점의 일반적인 오해를 바로잡고, …<생략>

1. Meinong 대 품위의 힘

Alexius Meinong의 입장: nonexistent possibles와 nonexistent impossibles 조차도 존재한다(there are)는 것은 직관적으로 당연하고 자명하다고 간주함.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이름과 기술들로 지칭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생각의 대상이다. 진지하게 과학과 철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로 참인지에 대해서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로 인해서 현실적(actual)인 것들에 대한 편견과 우리의 존재론의 다른 부분에 대한 맹목성이 생겨난다.
러셀, 콰인의 입장: 몇 십년 후에 그들은 사물을 이런 방식으로 보는 데에 반감을 드러냈다. 러셀은 마이농의 “실재에 대한 감각”을 비난했고, “사유에 악영향을 끼쳤다”라고 그를 비판했다. 콰인은 마이농의 우주를 “overpopulated”, “unlovely”, “rank”, “slum”, 등으로 불렀다. 러셀과 콰인은 mere possibilia를 매우 불유쾌한 것으로 간주했고 마이농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용납할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마이농은 이러한 불쾌감에 대해서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농은 비실재적인 가능자들이 미학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불건전하게 현실적인 것들의 영양분을 제한한다고 관찰했을 것이다.

<중략>

그 외에도 마이농은 그의 비판자들에게, 일상적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지만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매우 친숙하게 자주 언급한다는 것을 상기시킬 것이다. 이것은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맥주만큼 맛깔스러운 것이다. 러셀과 콰인은 마이농이 아니라 그 미스테리를 팔고 다녔으며, 그렇게 한 원인은, 특히 현실적인 것(actual)의 본성이 구체적으로 쟁점인 것은 아닐 때 그러한 논의가 앞서나간다는 것을 그들이 잊기 때문이다.
하지만, 콰인과 러셀이 단지 가능하기만 한 것들을 그렇게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달리 말할 수도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마이농이 그의 “대상들에 대한 이론”에서, 실재하지 않는 가능자들과 불가능자들에 대해서 말하기 위한 어휘들을 분명히 설명하려고 할 때 그의 논의는 이론적이고 온건하게 기교적인 톤을 유지한다. 확실히 설명적 체계가 제시되고 있다. 마이농은 대상들에 대한 자신의 작업을 순수히 기술적(descriptive)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만약 마이농의 존재론이 설명적인 체계라면, 그것은 설명력 뿐만 아니라 우아함과 정합성의 측면에서도 정당화되어야 한다. 더욱이 마이농이 좀더 기교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하면 그의 장치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생겨나고 그 대답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1) 콰인은 단지 가능하기만 한 것에 대한 동일성과 개별화 조건들을 요구한다. 즉 우리는 언제 한 사람이 있는 것이 가능하고 언제 두 사람이 있는 것이 가능한가? 마이농의 가정에 따르면 표면적으로 단칭어인 모든 것은 실재하는 것이나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지시하는데 그는 실재하지 않는 존재도 문자열에 의해서 표현되는 속성을 분명히 갖는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러셀은 ‘실재하는 둥근 사각형“이 실재하는가?하고 물었다. (3) 동일한 가정에 의해서 콜럼버스에서 5마일 북쪽에 있고 클레블랜드에서 5마일 남쪽에 있는 어떤 도시는 콜럼버스에서 5마일 북쪽에 있고 클레블랜드에서 5마일 남쪽에 있다. 이것은 이제, 콜럼버스가 클레버랜드에서 10마일 남쪽에 있고 그래서 마이농의 이론을 거짓되게 하는가? (4) 마이농의 대상들은 결정되지 않았거나 ’불완전하다‘. 즉, 비실재적인 가능자 O 가 있다면 어떤 갯수의 속성들 P가 있어서, O는 P를 갖는다가 사실이 아니거나 O가 P를 결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이제 키를 가지고 있지만 그 키가 특정 값을 갖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우리는 물을 수 있다. (5) 확정적 기술(definite description)을 사용하여 마이농은 그의 대상들을 지시한다. 예: 황금 산. 하지만 마이농의 입장에서 매우 많은 황금산들이 있어서, 그 꼭대기에 진달래가 있는 황금산, 혹은 없는 황금산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황금산“이라는 구절은 어떻게 단일한 마이농의 대상을 고유하게 지시할 수 있는가?
단순 가능자 옹호자는 이에 간단히 답하려 할 수 있다.
(1)에 대한 대답: 가능한 사람들의 무리를 어떻게 세계들 속에 잘 넣는 방법으로 대답함. 크립키나 Nicholas Rescher의 방법이 이와 같은 것임.
(2) 마이농의 존재론에 type theory를 더하여 그런 description들을 잘못된 것으로 배제함.
(3) Richard Routley는 문제를 유발하는 가정들에 제한들 부과하여 (3)에 답함.
(4) 대상들을 세계들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처리할 수 있음. 혹은, 그것들의 ‘불완전함’이 친숙해지도록 그것들의 본성을 명시함.
(5)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 따라서 콰인과 러셀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꼬집을 수 있다고 해서 마이농이 크게 어려워할 것은 없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단순가능자에 대한 콰인의 반론이 최소한 속임수같은 물음들에 근거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단순가능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비실재적인 것들과 콰인이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콰인의 반대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다.


 

 

 

 

 

<철학, 지식이 아닌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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