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님을 위한 철학적 논쟁


황교수와 mbc의 pd수첩 보도 문제의 핵심

 

어떤 문제가 일단 시작되고 그것이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 복잡하게 전개되었을 때 그 문제의 근본적인 성격은 잊혀지고 지엽말단적인 문제가 오히려 중요한 것으로 초점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어떤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죽은 경우에 그 환자에 투입된 약물, 그 약물의 부작용 가능성, 그 환자의 구체적인 신체상태 등을 확인해 간다면 문제에 대한 가부의 답을 내리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면 그 환자가 건강한 사람이었고, 누구나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통해서 회복되는 단순한 상해를 입어서 병원 치료를 받았으며, 병원 치료를 받은 후 3시간 후에 죽었다는 사실은 간과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잘못 치료했는지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 많은 의학지식을 동원하다 보면, 그 세부적인 사항의 여부와는 다소 간접적으로, 병원에서의 의료 실수가 아니라면 도저히 그 환자가 사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그 거시적인 맥락은 잊혀지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큰 한국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전주 옆의 작은 마을은 찾을 수 있어도 전라북도는 찾지 못하는 경우와도 비슷하다.

2005년 11월, 한국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mbc pd수첩에서의 황교수에 대한 보도 및 연구의 진실 공방도, 관련 기사가 자세히 보도되면 보도될수록 의혹은 늘어만 가고 진실은 자꾸 가려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떤 사태의 본질이라는 것은, 대단한 세부지식을 풍부하게 가짐으로써 보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태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고찰해 봄으로써 더 잘 발견할 수 있고, 그 참된 진실이란 것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바라본다면 누구에게나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관점에서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pd수첩 팀의 진위 여부 공방의 본질을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다. 즉, 그것은 방송국 pd 혹은 기자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잡지들이 검증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의 그 연구가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그 연구를 검증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거짓이라고 중학교 교내 신문 기자라는 중학생들이 그 진위를 검증하겠다고 말하는 바와 같다. 왜 중학생에 비유하냐하면, 적어도 국내 언론의 보도내용이나 공정성, 정확성 등이 적어도 세계적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할 만한 여러 정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증거는,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이 황교수의 연구 진위를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사태 그 자체이다. 이와 유사한 사태가 뉴욕 타임즈나 bbc에서는 있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논란이 가열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사이언스 지 측에서는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는 논평을 내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맹목적이라고 언론들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국민 대다수의 mbc 비난은, 오히려 그런 언론들의 비난과는 달리,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마치 물리학 교수들의 학술세미나에 뛰어들어가서 한 교수의 논문이 가짜임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날뛰는 중고등학교 교내 신문 과학담당 학생기자가 주장할 때, 그 학생이 적절치 못한 행위를 한다고 비난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 학생의 말이 1000만분의 1이라도 옳을 확률은 있다. 하지만 단지 옳을 확률이 있다는 이유로, 그 확률이 지극히 낮고, 또 그 주장제기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모든 문제를 덮어 버리면서 엉뚱하게도 '언론의 자유'를 외친다면 그것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의 행위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2005년 12월 1일) mbc 측의 태도란 바로 그와 같은 것이고, 그에 대해서 비난하는 국민들을 비판하는 자들은 바로 그런 중고등 학생 기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자와 다를 바가 없다.

요약해 보자면, 황 교수 연구에 대한 pd 수첩 보도 논란의 핵심은, 결국 검증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자가 세계적인 논문의 내용을 검증하겠다고 덤비는 오만방자함이라고 하겠다. (200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