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어떤 토론이나 논쟁에 스스로 개입하면서 하나의 입장을 진심으로 갖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소의 정도 문제가 아니라) 아무런 입장도 없는 상태라면 스스로 어떤 토론이나 논쟁에 스스로 참여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그 토론이나 논쟁에 성실하게 임할 이유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방관자처럼 이런저런 논리나 구사해 보고 이유나 제시해 보기를 심심풀이처럼 해 볼지 모른다.

그러므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논쟁에 내가 참여하고자 할 때에도 어떤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객관적인 논쟁을 불가능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일단 내가 마음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간단히 설명하고 두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주제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어떤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제시해 보겠다.

먼저 내가 취하는 입장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비판하는 여러 학자들에 대해서 다소간의 존경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특히 단지 자신이 책에서 배운 것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내가보기에) 어느 정도 맹목적으로 신봉하여 그것을 근거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 반대하는 학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런 학자 및 지식인들을 "무반성적 지식인들"이라고 부를 것이다.

한편 나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반대하는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무반성적 지식인들에 대한 나의 태도보다는 보다 호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내 태도가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어느 정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유는 둘이다. 첫째 종교는 그 성격상 최소한의 어떤 믿음과 신념체계에 대해서 무반성적으로 신뢰해야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특정 종교의 기본 신념체계를 버리면서 이야기하자고 하는 것은 곧 그 사람에게 종교를 버리라고 강요하는 것을 함함축한다. 그것이 아무리 황당해 보이는 신념체계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실상 논쟁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서나 상대를 상대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종교의 신념체계들은 논쟁을 객관적으로나 합리적으로 이끌기 어렵도록 작용할 수 있을 만큼 비합리적이거나 맹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종교의 맹목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한 종교인이 맹목적인 신념체계에 근거해서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그것을 감안하여 이해한다. 그런만큼 종교인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할 때 그것의 정당성도 어느 정도 제한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논쟁에 있어서 특정 종교인들(특히 일부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가진 존경심이 적어도 무반성적 지식인들에 대한 나의 존경심보다는 큰 두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내가 황우석 교수의 입장 중 하나에 동감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논쟁에 참여하는 나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한 가지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의 맹목적인 선입견을 고려한다면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것이 나의 주장을 공정하지 않도록 보이게 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든 진정으로 논의하고 진실로 바람직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솔직하게 스스로의 입장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여기서 언급하겠다. 이번에도 나의 입장을 언급한 후에 그에 대한 정당화 이유를 간단히 덧붙여 보겠다.

나는 황우석 교수가 취한 입장 중에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난치병 치료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를 붙이고 싶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호의를 표한다. 이런 나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몰고가서 누군가가 "민족주의"가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고 "국수주의"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나는 국수주의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고, '민족주의'는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선호하는 대답은 '평화적 혹은 문화적 민족주의'로 대답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내가 만든 말인데, 그 개념은 공동체주의와 유사하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최근의 많은 윤리학설들은 (특히 서양에서 발달한 것이) 자유주의적 윤리설이고 그 이론에서는 개인이 가장 우선시된다. 그 속에서 국가나 여타의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도구이거나 필요악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입장에 대해서 공동체주의에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그런 비판들을 여기서 직접 소개하지는 못하고 이 홈페이지의 공동체주의 윤리설에 대한 자료에서 소개될 것이니 참고 바란다.(2005년 8월 현재 별로 자료가 많지 않다.)

공동체주의 윤리설과 잘 맞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취하는 '문화민족주의'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직관적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겠다. 삶은 개인들만의 상호작용으로 모두 설명될 수도 없고 그것만으로 풍부해질 수도 없다. 물론 개인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을 스포츠에 비교한다면 개인들의 운동종목도 있지만 단체경기도 있다는 것이다. 축구와 같은 단체 경기가 존재해서는 안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단체경기를 통해서 개인종목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가치들이 창조될 수 있다. 그런데 단체경기를 한다면 개인들은 단체의 승리를 위해서 희생되는 여지가 생긴다. 여기서 '희생'이란 말을 썼지만 그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 희생이다. 그리고 한 축구 선수가 자기 팀의 승리를 위해서 열심히 경기를 하는 것은 자기 팀만이 모든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팀의 승리를 매개로 해서 경기 전체가 발전하고 그리하여 상대 팀의 선수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즉 각 팀의 선수는 자신의 팀만을 위해서 경기를 하면서도 모든 사람을 위할 수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 말하듯이 가족애의 개념을 확대해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바와 같은 것이 내가 문화민족주의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의 공동체의 중심에는 민족이 있을 수 있다.

문화민족주의는 유교적 가치관과 공동체주의의 입장을 결합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런 나의 입장에서 민족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데에 걸림돌도 아니다. 나찌즘이나 일본 우익과 같은 광신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각 민족들나 국가들이 적절한 보편적 규칙들을 설정하면서 각 공동체의 발전을 '중요한' 매개로 해서(단지 단순한 도구나 필요악적인 매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느 정도 이상 중요한 가치를 갖는 가치대상으로서 간주하여) 다같이 발전하는 것이다. 축구 선수가 자기 축구팀을 발전시켜 자신과 함께 모든 축구인들을 발전시키듯이 말이다. 여기서 강조할 만한 중요한 것은 두 요소이다. 하나는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공동체가 가치 담지자로서 존중되며 특히 상호 존중된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공동체들이 발전을 위해서 경쟁할 수 있도록 그 경쟁을 선의의 경쟁으로 만드는 보편적 규범체계를 인정한다는 것.

황우석 교수의 입장에 이런 입장을 적용시켜 보면 과학을 발전시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과학지식에 대한 열망과 함께 그 과학지식에 공동체의 이름을 붙이고자 하는 확장된 유교적 가족애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물론 보편적 인류애라는 이름만으로도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민족주의적 입장도 바람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화민족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바람:아직 준비중)

지금까지 대략적으로 내가 취하는 입장에 대해서 진실하게 언급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를 합리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진행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먼저 강조할 것은 내가 여기서 제시할 내용은 특별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모든 학문적 논쟁에서 취하는 그 방법을 취할 것이다. 다만 철저하게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다시 강조할 뿐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심사숙고하면서 고찰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해 보는 것, 논리적으로 문제점은 없는지를 따져 보는 것 등을 포함한다. 특히 이런 윤리의 문제는 곧 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철학적 논의에 필요한 중요한 사고방법을 요구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전제에 대한 비판과 여러 신념들에 대한 포괄적인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여러 교수나 윤리학회에 속한 학자들 중의 일부인 무반성적 지식인들을 비판함에 있어서 나는 이 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나는 그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그들의 권한 이상의 것에 대해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것, 역사적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검토하면서 타당성을 의심해 보아야 하는 중요 전제들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가정하는 것에 대해서 깊이 비판해 볼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인간복제의 개념이다. 내가 던지고자 하는 중요한 반론 중의 하나는 "인간 복제가 정말 심각한 재앙인가?"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나는 몇몇 학자들이 윤리적 문제의 본 영역을 떠나서 이 문제를 사회적 여론몰이로 비판하는 것에 직면한다면 나는 역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비판해 줄 것이다. 즉 그들에 대해서도 여론몰이의 형태로 비판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부족한 지식을 무기로 맹목적으로 비판한다면 나 역시 그런 맹목성에 걸맞는 반박을 해 볼 것이다.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바는 이것이다. 나는 내가 논쟁을 시작하는 지금 가지고 있는 입장을 버릴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고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논쟁을 지속하겠지만, 정말 여러 모로 고찰해 보고 잘못되었다고 판단된다면 입장을 바꿀 준비를 하고 논쟁에 임할 것이다.

어떤 것도 아직은 불확실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