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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권리 중심의 윤리설(계약론)과 정보사회
1.
로크의 계약론과 정보사회에 대한 적용 가능성.
로크의 계약론은 정치권력의 정당성 조건에 초점을 맞춘 정치철학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로크의 구체적인 권리 개념과 계약론을 중심으로 한 도덕의 성격에 관한 설명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겠다. 먼저 로크의 권리 개념을 살펴 보자. 로크는 인간의 기본권을 세가지로 규정하였다. 그것은 생명권(life), 자유권(liberty), 자산권(estate)의 세가지이다. 그리고 로크는 이것을 통칭하여 재산권(a property)라고 불렀다. 이러한 재산권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존권에 근거한다. 즉 "인간은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자기를 보존해 갈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며, 따라서 음식물과 기타 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위하여 부여해 준 것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로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생존권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며 자신의 자산을 생산하고 보존할 수 있는 권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세가지 권리 중에서 로크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산권으로서의 소유권이었다. 즉 사람은 어느 것에 대해서 정당한 소유권을 갖게 되는가? 로크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일신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갖고 있으며 이 세계는 하나의 공유물로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육체의 노동과 그의 손이 하는 일은 바로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자연이 공급해 준 대로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은 무엇이든간에, 그는 그것에다 그의 노동력을 투입한 것이며 또한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것을 첨가한 것이 되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그의 소유물로 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한조건이 부가되는데 그것은 "적어도 자연의 산물이 풍부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의 공유물로서 충분하게 그리고 여전히 풍부하게 남겨져 있는 경우"에만 노동은 소유권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 로크는 샘물의 예를 들고 있는데, 샘물은 뭇사람들의 것이지만 그러나 일단 물주전자 속으로 들어간 물은 바로 그 물을 떠 온 사람의 것이라는 것은 로크에게 있어서 의심할 바가 못된다. 그렇다면 로크의 주장에 따라서 노동을 투입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무한한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다. 즉 "만일 도토리와 기타 땅 위의 다른 과실들을 주워서 모음으로써 그것들에 대한 소유권이 생긴다고 하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독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이다. 이러한 일은 충분히 생겨날 수 있으므로 노동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하는 데에 대해서 어떤 제한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 따라서 로크는 물건이 상하지 않고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소유권을 제한하고자 한다. 즉, "적어도 물건이 상하여 못쓰게 되기 전에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누구나 그것에 자기의 노동력을 투하함으로써 자기의 소유권을 확정시킬 수가 있다." 이러한 권리들로부터 도덕적인 의무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로크의 답변은 이러한 재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혹은 정부와) 사회적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다. 로크가 주장하는 인간의 기본권들은 모두 자연상태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상태에서는 각자가 자연법의 범위 안에서 자기의 행동을 규율하며, 누구나 똑같은 평등한 권리를 갖지만 세가지 결함이 역시 존재한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인 일정한 법률과 일체의 싸움을 판정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재판관, 그리고 판결을 올바르게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 속에서는 사람이 권리를 안전하게 향유하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 침해를 당할 위험 앞에 놓인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의 재산(생명·자유 및 자산)을 보전하기 위해 서로 결합하여 국가를 형성하고 그 통치에 따르고자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사회계약에 따른 정당한 국가의 성립은 곧 자발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정당한 규범이 성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도덕의 성립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로크의 이론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두가지 전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자연상태라는 전 정치적인(pre-political) 상태에 대한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소유권이 요구하는 산물이 풍부하다는 전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들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로크의 이론 안에서 자연상태는 동의에 기인하는 도덕과 정치권력을 설명하기 위해 필수불가결의 것이며, 그의 도덕 이론의 대전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상태가 실제로 있는지, 혹은 과거에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한편 소유대상이 풍부하다는 전제는 자연의 산물이 풍부하여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의 공유물로서 충분하게 그리고 여전히 풍부하게 남겨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로크의 노동 가치설은 직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서 강가의 모래를 채취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강가에 모래가 풍부하고 어떤 사람이 화분에 담을 흙으로 쓰기 위해 그것을 채취한다면 그 사람의 화분에 담긴 모래는 그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건설업자가 건설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수백 대의 트럭을 몰고 와서 강바닥에 깔린 모래까지 모두 긁어가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건설업자의 소유권이 정당하게 성립할 수 없다. 건설업자가 많은 모래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건설업자가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를 퍼 가지고 온다면 똑같이 많은 모래를 필요로 하더라도 별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강가의 모래가 건설업자의 소유권을 정당하게 충족시켜 주기에는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로크가 활동하던 17세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갓 발견되었고 사회의 생산능력도 크지 않아서 자연적 산물은 매우 풍부한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천연자원의 고갈과 산업화에 따른 공해문제, 환경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서 로크가 주장한 무제한적인 권리 개념에는 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는 오히려 다시 이러한 로크의 재산권 이론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정보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익명성과 그에 따른 무정부적 상태, 근본적으로 법적·도덕적 개념의 공백으로 인한 규칙 부재가 로크가 언급한 자연상태와 유사한 조건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가상 공간인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면 그 곳에서는 자연세계의 물리법칙에 상응하는 디지털 정보 및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기능에 영향을 받을 뿐 어느 국가의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행위도 어떤 인위적 구속을 별로 받지 않는다. 인터넷에서의 어떤 행위들은 언론에 보도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특정 법률에 근거해서 공권력에 의해 규제되지는 못한다. 즉 가상 공간 속에는 로크가 말한 바와 같이 법률과 재판관, 그리고 도덕을 강제할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로크는 스스로 자연상태의 예를 국가 간의 국제관계를 예로 들고 있지만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가까이서 그 예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상 공간이 자연상태와 유사한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 대해서 몇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첫째, 로크는 자연상태가 자유의 상태(a state of liberty)이기는 하지만 결코 방종의 상태(a state of licence)는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가상 공간은 일면 방종의 상태를 나타낸다는 반론이다. 과연 초기 컴퓨터 통신망에서는 언어적 폭력, 절제되지 않은 음란성, 무의미한 시간낭비가 난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일 뿐이며 이러한 방종 상태가 가상 공간 속에서 일반화된 경향은 아니다. 또한 로크의 자연상태 역시 그 안에 방종의 경향을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상태에서 사회계약으로 이행하는 계기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반론은 이러한 가상 공간은 적어도 현재 정보 사회의 전면적인 특성이 아니며 시민들 전체가 참여하는 공간도 아니고 단지 사회 전체의 일부 기능만을 담당하고 있는 극히 부분적인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가지 방식으로 답변할 수 있다. 우선은 가상 공간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이공계통의 전문가들에 국한되었지만 지금은 많은 비전문인들이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인터넷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사회가 정보화됨에 따라서 모든 사회기능과 사람들의 의사소통이 디지털 신호에 의해 매개됨에 따라서 가상 공간은 모든 사회기능과 상호작용을 집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가상 공간이 정말 사회현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자연 상태의 예를 하나 더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는 로크의 이론에 더 큰 힘을 실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 사회에서 도덕의 개념적 공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영역이 가상 공간이므로 이 가상 공간의 영향력과 비중에 무관하게 여기서는 로크의 윤리설을 적용할 수 있다는 논변도 가능하다. 하지만 로크의 윤리설이 정보사회 전체의 행위 규범을 제공하기 위한 도덕이론으로서 다시 주목받을 수 있는가 하는 데에는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남아있다. 가상 공간의 영향력 확대 이외에도 지적 재산권의 사회적 비중이 커진다는 사실 또한 로크의 도덕 이론이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배경이 된다. 그 까닭은 지적 재산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실질적으로 무한하게 흩어져 있는 공유재산이라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공유된 샘물을 한 주전자 떠 와서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듯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 샘물은 여전히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남겨져 있고 인간의 상상력이 허용하는 많은 미래의 지적 재산들도 여전히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남겨져 있다. 그리고 정보사회에서도 자기 자신의 신체와 노동은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체계와 상상력의 세계에서 공유된 모든 지적 대상에 대하여 자신의 노동을 결합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서 소유권의 근거를 찾기는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로크의 소유권 이론인 점유론(occupation theory)이 정보사회에 적용되는 데에 대하여 몇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지적 재산이 정말 무제한적으로 풍부한가 하는 물음이다. 예를 들어서 애플 사와 마이크로 소프트 사가 겹쳐쌓는(overlapping) 윈도우에 대한 저작권 논쟁을 벌인 것은 그것이 기능적인 것인가 표현적인 것인가 하는 논쟁에 초점이 모아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해석하면 기능적인 것이 얼마만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소송에서 애플 사는 겹쳐쌓는 윈도우가 표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고 마이크로 소프트 사는 기능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표현적인 것이라면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다른 프로그램이 이러한 표현을 구현하면 위법 사항이 된다. 반면에 만약 기능적인 것이라면 특허권의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다른 프로그램들이 전체 기능의 일부로서 이러한 모양새를 갖는 것을 허용해야만 한다. 확실히 인간의 지적 세계는 상상력 만큼 무한한 것 같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구현되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만큼 무한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지적 재산이 여전히 매우 풍부하게 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확실히 A가 훌륭한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그것을 소유한다는 사실이 B나 C가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어떤 원천적인 결핍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끝없는 광산처럼 지적 재산의 광물을 토해낸다. 만약 주전자에 담은 물이 아닌 샘물 전체를 소유할 수 없듯이 어떤 원천적인 지식 자체(예를 들어 수학공식이나 자연 법칙)에 대한 소유권이 정당화되지만 않는다면 여러 가지 유용한 지적 재산들은 충분히 풍부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지적활동의 누적성에 근거한 것이다. 즉 지적인 활동은 본질적으로 누적적인 활동(cumulative activity)인데 일련의 누적적인 활동 과정에서 특정인에게 어떤 결과물의 독점적인 소유권이 노동이론에 기초해서 주어질 수는 없다는 반론이다. 이렇게 생각할 경우에 지적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많은 사람들의 지적 노동이 누적적으로 투입된 것이므로 극히 예외적인 몇몇 경우 외에는 대부분 개인에게 소유되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은 반론은 로크의 이론이 수정없이 정보사회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로크의 이론이 수정없이 정보사회에 적용되기 어려움을 지적하는 반론은 이외에도 지적
재산권의 상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로크 이론에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고 또
정보사회에서 지적 재산은 풍부할지 모르지만 기타 물질적 자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도 그러한 반론은 충분히 힘이 있다. 하지만 그 반론들 전체는 로크
이론이 정보사회에 부분적인 수정을 통해 적용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라는 주장을 원천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2.
롤즈의 정의론과 정보사회에 대한 적용 가능성.
이번에는 로크의 이론 이후 현대에 와서 계약론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유력한 윤리설인 롤즈의 정의론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롤즈의 정의론은 정의의 원칙이 요구되는 사회적 조건을 전제하고 이 조건에서 원초적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 선택하게 되는 사회 정의의 원칙들을 형식화함으로써 구성된다. 이러한 논의의 전개과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첫째로 사회정의의 원칙이 요구되는 배경적 조건은 객관적 여건과 주관적 여건 두가지로 제시된다. 그 중 객관적 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자원의 적절한 부족 상태(moderate scarcity)로서 "천연 자원이나 기타 자원이 협동 체제가 필요없을 정도로 풍족한 것도 아니고 보람있는 협동체가 결렬되기 마련일 정도로 여건이 궁핍한 것도 아니라는" 조건이다. 그리고 주관적 여건이란 협동의 주체들, 즉 협동하는 사람들에 관련된 측면으로서 그 중에서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는 냉정히 따지지만 상대방의 이해 관계에는 무관심한 상호 무관심성(mutual disinterestedness)이 핵심적이다. 롤즈가 제시하는 정의의 원칙이 필요하게 되는 배경적 조건은 정보사회의 제반 조건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보사회는 대체적으로 산업사회 이후에 이어지거나 후진국의 경우에 산업화와 동시에 정보화과정을 거침으로써 도달된 상태이기 때분에 객관적 여건으로서의 제자원의 적절한 부족상태 조건에 적합할 수 있다. 확실히 정보사회에서도 천연자원이나 기타 자원은 여전히 충분히 풍족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궁핍하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상호 무관심성의 조건은 정보사회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가상세계에서의 익명성과 시공간적 압축변형효과, 인간관계의 간접성 등은 상호 무관심성을 강화하는 사회적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런 전제 위에서 롤즈는 절차적 정의론을 구성하는 과정으로서 원초적 입장을 상정한다. 그의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란 여러 대안들을 평가함에 있어 갖추어야 할 일정한 자격 조건을 규정하고 이러한 조건을 갖춘 도덕적 관점이다. 원초적 입장에서는 두가지 조건이 규정되는데 첫째는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며 둘째는 상호 무관심적 합리성(mutually disinterested rationality)이다. 무지의 베일이란 사람들을 불화하게 하고 그들의 사회적 자연적 여건을 그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도록 유혹하는 특수한 우연성의 결과들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개념적 장치이다. 무지의 베일로 인해서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들은 사실에 관한 것, 각자 자신의 지위나 계층, 천부적 재능이나 체력 등 우연적 요소들을 알지 못하게 된다. 단지 당사자들에게 알도록 허용된 유일한 특수 사정은 그들의 사회가 정의의 여건 하에 있다는 것 뿐이며 그들은 인간 사회에 대한 일반적 사실들, 즉 정치 경제의 제 원칙, 사회 조직의 기초와 인간 심리의 법칙들 등만을 알게 된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들은, 사회에 대한 모든 내용이 물리학과 같이 방정식과 상수, 변수들로 기술될 경우에 법칙 기술에 필요한 방정식과 상수들은 모두 알지만 변수가 취하는 특정값들은 하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상호 무관심적 합리성이란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들이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서 동기상의 조건이다. 즉 상호 무관심적 합리성으로 인하여 원초적 입장의 판단자들은 갖가지 자신의 목적을 증진시켜 주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며 자신의 욕구를 보다 많이 만족시켜 주고 보다 성공적으로 실현시켜 줄 가능성이 큰 것을 택하게 된다. 또한 시기심 및 상호간의 애정이나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당사자들은 또한 그들 자신이 주요한 사회적 선들을 가능한 한 많이 욕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선들 중에는 권리와 자유, 기회와 권한, 소득과 부, 그리고 자존심(self-respect)이 있다. 이러한 상호 무관심성과 무지의 베일이 결합하면 단순성, 명료성의 장점을 갖게 되는 동시에 언뜻 보기에는 도덕적으로 보다 매력적인 가정이라고 생각된다는 결과까지도 확보해 주게 된다.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의 조건인 무지의 베일과 상호 무관심성이라는 조건은 가상세계와 관련된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사회에서 다소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있기도 하다. 가상세계에서의 모든 공간, 모든 거리는 나와 컴퓨터의 시공간으로 재조정된다. 이 시공간의 압축을 통해서 이진부호로 번역불가능한 모든 것이 제거됨으로써 경험 내용의 일부가 제거되고 정보는 그 추상적 내용 위에 감지가능한 형체를 덧입고 주어진다. 이와 같은 경험의 상실 구조는 그 경험의 주체마저도 상실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서 가상 공간의 가장 놀라운 약속은 자아를 변형하고 개조하는 자유이다. 즉 자신의 나이, 성별, 인종, 학력이 가로막았던 모든 것이 그 공간에서는 허용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공간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자유, 즉 자기 정체성(identity)으로부터의 자유를 준다. 즉 무지의 베일에서 언급하는 조건과 유사한 자기 정체성의 망각이다.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이러한 체험 상실의 구조 속에서 개인 혼자서 컴퓨터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정보사회의 환경은 앞에서 지적한 익명성 등을 통해 상호 무관심성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가상세계에서의 자신의 정체성 망각과 상호 무관심성이 롤즈가 정의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선택조건으로서의 원초적 입장과 근본적으로 일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는 철저히 자신의 특수조건을 망각하고 철저한 상호무관심성을 통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여 사회정의의 원칙들을 구성해 낸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개인은 불완전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하면서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가상공간의 특성을 이용하여 유한자도 무한자도 못되는 곤경 속에서 갖은 폭력과 범죄를 자행하여 공동체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원초적 입장의 현실적 유사성은 그에서 도출되는 정의의 원칙들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들 것임은 확실한 것 같다. 전통적으로 계약론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자연상태의 역사적 실재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비판이 옳든 그르든 이러한 설득력 향상은 이해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원초적 입장에서 롤즈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순수하게 조건일 뿐이며, 그 조건 제시 자체가 위험성을 배제한 완벽한 조건이라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즉 달리 말하면 롤즈의 원초적 조건의 당사자가 가상세계의 개인과 같든 다르든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도 역시 어떤 일탈과 비도덕적으로 행위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즉 가상세계를 중심으로 한 원초적 입장의 현실적 유사성은 정보사회의 전반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즉 정의론은 가상세계에만 적용하고자 하는 윤리규범이 아니라 가상세계를 일부로서 포함하는 전체 정보사회에 적용되고자 하는 후보 이론이라는 반론이다. 이 반론은 일부 타당하다. 하지만 여기서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 입장이라는 롤즈의 조건이 정보사회에서 실현된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일부 유사하게 조건이 주어지며 그럼으로써 롤즈의 정의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잘 적용될 수 있고 더 큰 설득력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정보사회의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배경에는 정보사회에서 가상세계의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서 제기되는 많은 새로운 문제점들이 있다. 즉 정보사회에서 가상세계가 갖는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측면에서는 롤즈의 정의론이 기술 개념이 아니라 당위 개념으로서 정보사회에 더욱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롤즈의 조건을 정보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용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첫째로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가 욕구하는 사회적 선들의 목록에 관련해서는 정보사회의 적용가능성을 의문시할 수 있다. 롤즈 이론에 대한 기존의 비판 중에서도 밀러(D.Miller)는 자존감과 자유 간에 롤즈가 주장하는 배타적 함수관계가 성립하는지 반문했는데, 정보사회의 조건에서 이러한 반론의 중요성은 확대될 수 있다. 특히 가상공간에서는 그 조건의 익명성과 시공간적 압축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개인 활동의 자유가 자존감과 강하게 연결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자유로운 활동 속에서 주체가 뿌리칠 수 없는 정체성을 가지고 드러나므로 자유와 자존감의 상관관계는 비교적 클 수 있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가면을 바꾸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의 통신명과 암호명을 빌려쓰거나 훔치기만 하면 자신의 통신명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유가 금방 획득된다. 가상세계에서는 적어도 자유의 가치가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리고 가상세계를 통한 실세계에서의 영향력 변화도 함께 유발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남의 통신명과 암호명으로 은행의 구좌에 입금내용을 변경하거나 제한구역 통제를 풀고 실세계에서 그러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때문에 자존감과 자유의 밀접한 연관관계는 크게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롤즈의 정의론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자유가 빌려쓸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에 롤즈 정의론의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롤즈가 제시하는 정의의 두 원칙을 고찰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롤즈가 원초적 입장에서 채택되리라고 생각되는 정의의 두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 가능한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한 전체 체계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 즉 ⓐ그 불평등이 정의로운 저축 원칙과 양립하면서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되고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에 결부되도록 배정되어야 한다." 첫번째 주장에서 롤즈는 경제적 이득에 대해 자유가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두번째 원칙의 전반부에서는 만약 사회적 불평등이 필요하다면 가장 불우한 사람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불평등이 조정되어야 한다는 차등의 원칙을,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기회 균등의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롤즈는 정의의 두 원칙, 특히 차등의 원칙으로부터 천부적 재능의 분배를 공동의 자산(common asset)으로 생각함을 이끌어 내고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러한 분배가 주는 이익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롤즈의 정의론의 특징은 자유주의적 이념 표방과 강력한 평등주의적 경향을 나타내며 복지 국가에 대한 강력한 이론적 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롤즈의 자유주의적 특징은 자유 우선성의 원칙과 그 원칙들의 축차적 배열성 때문에 기본적 자유는 어떠한 경제적 이득과도 교환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알 수 있다. 평등주의적 특징은 차등의 원칙에서 표현되고 있고 복지국가에 대한 이론적 근거는 재능이나 체력 등의 자연적 자산을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는 롤즈의 주장에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가상세계를 중심으로 한 정보사회 환경의 한 측면에서 개인의 자유가 상품으로 전락하는 경우에 롤즈가 경제적 이득과 교환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기본적 자유의 범위는 매우 협소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이 여러가지 기본 가치들의 상대적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하며 자유에만 특별한 비중을 둘 만한 이유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정보가 사회의 중요한 자원으로서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롤즈의 정의론은 수정없이 반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롤즈는 정의의 원칙이 필요한 객관적 조건에서 "천연 자원과 기타 자원"(natural and other resources)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롤즈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이 기타 자원에 정보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정보는 그 특성 상 쉽게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복사·생산해 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많은 윤리적 쟁점들을 산출한다. 그렇다면 정보자원은 풍족한 것도 아니고 궁핍한 것도 아니라는 조건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롤즈의 이론은 출발점에서부터 정보자원의 영향력과 문제점들을 배제하고 있으며 정보가 유발하는 다양한 정보사회의 특이한 윤리적 쟁점들을 해결하는데 적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즈의 정의론은 정보의 빈부 문제와 관련해서
가능한 대안으로서 고려할 수 있으며 특히 정보사회에서 자유가 상품화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생활권과
같은 기본적인 자유권은 결코 상품화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가치가 더 중요해짐을 생각할 때 자유와 평등의
긴장을 비교적 잘 조화시킨 이론으로서 큰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정보사회의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권리 중심의 윤리설의 적용 가능성.
지금까지는 권리 중심의 윤리설이 정보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략적인 차원에서만 논의하였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정보사회에서 쟁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윤리적 문제들과 관련하여 권리 중심의 윤리설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정보사회에서 제기되는 윤리적인 쟁점들은 무척 다양하다. 그것들을 대략적으로
한번 나열해 보자면, 사생활권(privacy) 문제, 지적 재산권 문제, 컴퓨터 범죄의 문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에 따른 문제, 컴퓨터에 대한 지나친 의존 문제, 인터넷 상의 음란물
게제 문제, 컴퓨터 전문가들의 윤리 문제, 컴퓨터와 관련된 업체들의 공정경쟁 문제 등등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쟁점들을 구분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메이슨(R.O.Maison)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염려가 있으면서 정보 그 자체와 연관된 윤리적 문제들로서 사생활권(privacy),
정보의 정확성(accuracy), 재산권(property), 접근가능성(accessibility) 네가지를
강조했지만 존슨은 상대적으로 컴퓨터 전문가 윤리를 중요시해서 쟁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 가운데서도 대체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쟁점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생활권 문제, 지적 재산권 문제, 컴퓨터 범죄 문제 등이다. 또한 그 문제들은 컴퓨터를 사용하고
가상세계 안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쉽게 직면하는 윤리적인 문제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서도 이러한 대표적인
쟁점들 중에서 사생활권 문제와 지적 재산권 문제 2가지에 대해서만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1) 사생활권 문제 사생활권 문제는 컴퓨터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 중의 하나, 즉 기록을 저장하고, 조직하고 교체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개인에 관한 정보가 컴퓨터 속에 저장됨에 따라서 획득하고 저장하며 교체할 수 있는 개인 관련 정보의 양과 용이성이 과도하게 증대되고 이 때문에 개인 정보의 오류의 영향력이 매우 커지고 사실 무근의 정보가 개인의 삶을 구속하는 두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사생활권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가지는 사생활권이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도덕적 맥락과 상충하는 가치들을 분석하고 그 해결방법을 강구하는 규범 윤리학적인 논의이며, 다른 한가지는 사생활권 자체의 철학적 근거를 논의하는 메타 수준의 논의이다. 규범윤리학적인 사생활권 문제는 사회현실과 사생활권이 갖는 다양한 현실적 상관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정보사회의 독특한 윤리적 쟁점에 직접 관련된다. 한편 사생활권 자체의 철학적 근거를 묻는 물음은 그 논의 자체에 정보사회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사회관련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생활권 문제가 정보사회의 조건에서 특별히 부각된 쟁점이라는 사실에서 사생활권 자체에 대한 논의를 정보사회의 윤리학적 문제로 구분하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먼저 사생활권 자체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을 고찰하기로 하자. 이러한 사생활권 자체의 도덕적 근거를 공리주의나 의무 중심의 윤리설, 혹은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 근거해서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적 관점에서는 사생활권 개념이 그 자체로서 정당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어떤 행위의 사회적 결과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 사생활은 사회적 선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기 쉽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이 무시되었을 경우에 개인이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얻게 된은 스트레스와 피로, 그리고 그로 인한 다양한 사회적 역효과의 증대 등을 사회적 선을 계산하는 과정에 중요한 변수로서 고려하는 입장을 취할 경우에 사생활권의 중요성은 공리주의에서도 옹호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보사회는 그러한 역효과를 계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기준이 현실적으로 공정하게 확보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럴 경우에 사생활권은 개인 관련 정보를 거래하는 당사자들인 기업체들이나 다양한 조직의 사회적 영향력에 의해서 경시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공리주의의 입장에서는 사생활권이 하나의 고려사항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 이익을 위해서 언제든지 무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런 이유로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개인 정보의 오류가 그 개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일도 얼마든지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한편 스피넬로는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사생활권의 근거를 찾고자 한다. "칸트의 관점에 따르면 누군가를 인격으로서 존중하기 위해 사람은 분명히 그의 자유를 존중해야만 하며 그러한 존중은 이 사람의 계획들이 우리 자신의 행위들과 정책들에 영향받는 방식을 고려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을 방해할 권리가 없는데 우리가 그들의 사적인 사생활을 침해할 때 우리가 하는 것이 정확하게 이와 같은 방해이다. 만약 내가 공공연하게 누군가의 행위들을 관찰한다면 나는 그러한 행위들의 맥락과, 어쩌면 그 개인(person)의 행태를 변경시키고 있다. 만약 한 개인이 내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이나 자신의 담화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개인은 자신의 진술들이나 행위들이 내가 허가하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더욱 자신에 대해서 의식적이게 되고 어쩌면 방해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칸트철학에 기초한 사생활권 옹호는 정보사회에서 사생활권과 관련된 개념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의무 중심의 윤리설이 갖는 이러한 효력은 칸트 철학의 순수 의무 개념에서보다는 권리 개념과 유사한 칸트의 명법에서 찾아진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의무 개념과 권리 개념을 구분했을 때 인간을 인격으로 존중하라는 내용의 명법은 확실히 권리 개념에 더 접근해 있다. 한편 이에 반해서 의무 개념에 더 충실한 명법인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명법에서는 직접적으로 개인 정보의 사용과 관련한 사생활권의 개념이 도출될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권리 중심적 윤리설의 입장에서는 정보사회에서 개인 관련 정보의 취급과 연관된 도덕적 공백에 대하여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 같다. 즉 개인관련 정보를 허락없이 수집·배포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러한 침해를 방지하면서 사회 전체의 발전을 고려한 계약론적 입장에서 적절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로크의 입장에서는 세가지 기본권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생존권에 기반해서 사생활권을 정당화할 수 있으며 롤즈의 입장에서는 개인들이 갖는 평등한 자유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체계는 최대한 광범위한 것이어야 하므로 이에 기초해서 개인 관련 정보의 남용에 따른 다양한 구속들을 금지할 수 있다. 정보의 가치가 커지는 정보사회의 여건에서는 단순한 물질적 조건 뿐만이 아니라 정보와 관련한 갖가지 조건 역시 개인이 생존해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사생활권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레이첼(James Rachels)이다. 레이첼은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권리로서 사생활권을 옹호하고자 한다. 이것은 사생활권에 대한 밀러의 두번째 개념에 해당하는 사생활권 개념이다. 레이첼(James Rachels)의 주장에 따르면 사생활권은 그것이 경쟁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의 입장을 보호하거나 폭로되면 당혹스러운 개인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혹은 관련된 개인적 사실이 노출될 경우에 그 개인이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거나 전혀 무관한 일에 다른 개인적 관심사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보호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생활권이 보호되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까닭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정보에 대한 접근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고 창조하는 능력 간에는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누가 접근하며 우리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아는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사생활권이 중요하다는 것이 레이첼의 주장이다. 따라서 레이첼은 무언가 폭로되면 곤란한 비밀이 있는 경우에만 사생활권이 중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잘못된 것이 없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사생활권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생활도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논의를 통해서 고찰해 봤을 때 정보 사회에서 새롭게 문제되고
있는 사생활권 문제와 관련해서 권리 개념이 도덕이론의 중심 개념으로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2) 지적 재산권 문제 정보시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한 지적 재산권 문제는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면서도 그 안쪽에는 엉킨 실타래 같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철학의 문제이다. 거기에는 특히 소프트웨어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윤리학 외의 철학적 논의들이 많이 관련되지만 그 철학적 문제의 중심은 윤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지적 재산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도덕이론의 중심 개념으로서 권리 개념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을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로크의 점유론과 공리주의적 논변 두가지이다. 앞에서 고찰하였듯이 로크는 재산권이 노동으로부터 도출되며 그 까닭은 자신의 노동이 토지나 기타의 재화들을 공유된 재산의 상태에서 사적인 유용한 재산의 상태로 변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스피넬로에 따르면, 로크 이론을 적용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론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힘든 노동의 결실에 대한 존중 만큼이나 공정과 공평의 원칙 위에서 그들의 창조물에 대한 최소한 조건부 권리에 대한 도덕적 기초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또한 스피넬로는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가 심대한 사회적 유용성이 있다는 것도 역시 강조한다. 이러한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진실로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상품들을 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유인이 훨씬 적어질 것이라는 것이 그 까닭이다. 그리고 스피넬로의 두번째 논변은 곧 공리주의적인 논변이다. 즉 현신적인 프로그램들을 창출하도록 하는 유인(incentive) 및 효율성과 경쟁을 보존하는 것이 사회에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롤즈의 입장에서도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상품들이 많이 개발되면 모든 사람들이 결국에는 더욱 이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상품들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지 않다는 조건에서 그 불평등은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못하는 최소수혜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들은 스톨먼(Richard Stallman)에 의해서 비판받았다. 스톨먼이 비판하고자 한 것은 좀더 구체적인 입장인데 그것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를 금지함으로써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비판을 위하여 스톨먼은 권리 중심의 재산권론과 공리주의적 재산권론을 각각 정서적 논변(the emotional argument)와 경제적 논변(the economic argument) 2가지로 정리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스톨먼은 모든 프로그래머들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free software)를 만들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스톨먼의 논변을 자세히 고찰해 보자. 첫번째, 정서적 논변의 내용은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땀과 정열과 영혼을 투자하였으므로 그 프로그램은 프로그래머에게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프로그래머가 그 프로그램을 소유해야 한다는 논변이다. 스톨먼은 이러한 논변이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자의 애착(attachment)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프로그램 제작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권리를 대기업에 기꺼이 양도하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세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애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예를 들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소유권에 대한 충분한 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경제적 논변이란, 프로그래머는 돈을 벌기 원하는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없다면 아무도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사회는 유용한 프로그램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논변이다. 이 논변을 반박하기 위하여 스톨먼은 이 경제적 논변의 다른 유형으로서 다음과 같은 논변을 제시하고 논파하고자 한다. 그 다른 유형의 논변이란, 프로그램이 재산으로서 보호받는 경우의 사회적 공리(utility)와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의 사회적 공리를 비교하여 프로그램을 재산으로서 보호하는 경우가 사회에 더욱 유익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보호는 유익하며 따라서 권장할만하다는 주장이다. 스톨먼에 따르면 이러한 논변은 어떤 오류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프로그램을 재산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경우와 재산으로서 보호받지 못해서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만을 대비시키며 그것만이 가능한 비교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톨먼은 그런 비교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소프트웨어를 재산으로서 보호하는 입장을 논파한 스톨먼이 소프트웨어의 재산권 보호를 반대하는 논변은 다음과 같다. 즉 스톨먼은 우선 소프트웨어 개발이 소유권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그 소프트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과 결부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1>그 분배와 무관한 소프트웨어 개발의 효과와 <2>소프트웨어가 개발된 경우 그 사용을 제한했을 때의 효과를 독립적으로 판단한다. 그리고는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판단한 후 이로운 것만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 결과로서 소프트웨어 사용을 제한하는 것만이 사회에 해롭고 그 개발은 이롭다면 그 유익한 것만을 실행해야 한다고 스톨먼은 주장한다. 하지만 스톨먼에 따르면 동일한 조건에서 통행료 징수소(toll gate)가 있는 도로보다 통행료 징수소가 없는 도로가 더 좋고 사회에 유익하듯이 소프트웨어가 생산되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의 법적 보호가 없는 경우가 더 바람직하다. 이러한 주장은 스톨먼에 따르면 통행료 징수소가 있는 도로가 도로가 없는 경우보다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프트웨어에 대해 말하자면 돈으로 사야만 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는 것이 소프트웨어가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 아니라 똑같이 소프트에어가 있다면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더 낫다는 뜻이다. 이러한 논변에 대해서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소프트웨어 제작이 어떤 방식으로 촉진될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해 스톨먼은 인위적인 소프트웨어 제작을 촉진시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의 재미(fun)와 프로그래매들의 자애심(charity)에 의해서 소프트웨어 생산은 계속될 수 있다고 스톨먼은 주장한다. 또한 하드웨어 제작자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원하기도 하고 새로운 하드웨어 제작사에 고용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반해서 소프트웨어를 재산으로서 인정함에 따라서 생기는 손실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또한 그것을 변형하거나 수정할 수 없으며 프로그램 때문에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마저 약화된다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스톨먼의 주장에는 많은 실질적인 문제점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우선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반론은 소프트웨어 제작의 촉진 방식에 관한 현실성 문제이다. 스톨먼은 프로그램 제작의 재미와 자애심에 의해서 소프트웨어 생산이 계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가지 사실들이 있다. 가상 공간 속을 떠돌아 다니는 많은 프리웨어(freeware)와 쉐어웨어(shareware)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리웨어나 쉐어웨어는 상용 프로그램과 비교할 때 그 성능 및 질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컴퓨터 사용자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상용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다양하고 강력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엄청나게 지루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데이타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프리웨어나 쉐어웨어는 대체적으로 그 기능이 단순하고 제한적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에 그 시장이 외국에 비해서 더 협소한 매킨토시 컴퓨터의 경우에는 시장이 구매력이 없어서 그러한 상용 프로그램조차도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시장 논리에 의한 소프트웨어 제작 촉진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기 어려운 강력한 동기유발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또한 스톨먼은 정서적 논변(the emotional argument)을 주장하는 입장이 프로그래머의 '단순한' 애착(attachment)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면서 무시하는데 도덕 규범의 기초가 이러한 애착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도출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생명에 대한 애착과 자유에 대한 애착 등을 무시한다면 어디에서 생명권과 자유권의 정당근거나 요구를 찾을 것인가? 이러한 애착의 어떤 측면은 상황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유동성이 소유권의 근거로서의 애착을 무시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상과 같이 스톨먼의 논변에 따르는 난점은 전반적으로 의무 중심의 윤리설도 함께 가질 수 있는 난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순수 의무 개념에 근거한 윤리설은 스톨먼의 주장에서와 같이 그 현실적 실효성을 얻기가 어렵고 인간의 도덕적 직관이 부정하기 어려운 기본적인 권리들을 부정하기가 쉬운 것이다. 한편 니센바움(Helen Nissenbaum)도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를 무조건 금지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조건부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도 하면서 역시 공리주의적 논변과 권리중심적 논변을 각각 결과론적 논변(Consequentialist Arguments)과 의무론적/권리중심적 논변(Deontological/ Rights-Based Arguments)으로 구분하고 이들 논변들에 대해서 반대 논변을 펼친다. 니센바움에 따르면 결과론적 논변의 주된 주장은, 프로그램 무단 복사는 부정적인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이며 이러한 무단 복사는 단기적으로는 복사자에게 이득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소비자와 소프트웨어 제작자 모두에게 손해를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변에서 의미하는 부정적인 결과에는 2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소프트웨어 제작의 감소이며 다른 하나는 소프트웨어 가격의 상승이다. 여기에 대해서 니센바움은 이상과 같은 결과론적 논변이 전제하는 인과적 연관 고리가 분명하지도 확고하지도 않다고 반박한다. 니센바움에 따르면 결과론자들은 항상 A를 사거나 A를 복사하는 두가지 선택지만을 소비자들이 갖는다고 가정하지만 실제 사례는 그렇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A를 복사하느냐 아니면 A를 갖지 않느냐 하는 것인 경우도 많다. 더우기 프로그램 복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더 많이 구매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해 본 사용자가 감명을 받고 추가적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사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니센바움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복사가 소프트웨어 소득 감소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니센바움은 소프트웨어 소득 감소가 소프트웨어 제작 감소를 유발하리라는 예상에 대해서는 프로그래머가 단순히 돈 때문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스톨먼(Richard Stallman)의 입장에 동감하면서 반론한다. 그리하여 니센바움은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가 소프트웨어 제작의 감소를 가져온다는 결과론자들의 논변을 반박한다. 한편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가 가격의 상승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니센바움은, 오히려 만약 소프트웨어 가격이 낮다면 소비자들이 불법 복사의 유혹을 덜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소비자가 무단 복사를 하기 때문에 가격을 비싸게 매긴다는 제작자의 입장과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무단 복사한다는 소비자의 입장을 대조시킨 후 고품질의 소프트웨어 산업증대는 추구할만 하지만 복사를 금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니센바움의 주장에 따르면 복사금지 입장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활성화 부담을 말단 사용자들에게만 부과하는 부당함을 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조업체와 정부의 결정이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니센바움에 따르면 의무론적/권리중심적 논변의 주된 주장은 허락없이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것이 도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도덕적 의무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가리키는 권리들은 무엇이며 모든 복사는 실제로 그 권리들을 침해하는가를 물으며 니센바움은 권리중심의 복사금지에 대한 정당화 논변이 해결해야 할 2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로 비인가된 복사의 문제와 결부된 프로그래머의 권리를 확정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소프트웨어 무단복사가 항상 이러한 권리들을 침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니센바움은 이러한 2가지 문제에서 모두 권리중심적 논변을 옹호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이고 프로그램의 소유가 복사에 대한 절대적인 제한권을 함축한다는 주장을 반박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기 위해 니센바움은 먼저 프로그래머의 소유권에 대한 근거로서 프로그래머가 소프트웨어를 작성하고 창조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것을 소유한다는 로크식의 소유권 이론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니센바움도 역시 노동이론(labor theory)을 받아들이면서도, 소프트웨어 창작은 본질적으로 누적적인 활동(cumulative activity)이므로 특정인의 배타적인 소유권은 정당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왜냐하면 노동 이론에 근거한다면 소프트웨어 상품 제작에 공헌한 모든 사람들이 권리를 갖는 것이며 우연히 마지막 작업을 끝낸 사람만이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논의를 프로그램 창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특정인의 소유권에 한정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램을 소유함을 보인다는 것이 복사금지 입장을 견지하는데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이 니센바움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서 논의는 두번째 문제인 무단복사가 항상 권리들을 침해함을 증명하는 문제로 촛점을 이동하게 된다. 니센바움은 두번째 문제를 논함으로써 권리중심의 논변을 반박하기 위해 먼저, 프로그래머가 사적 재산으로서 그 프로그램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은 그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그것을 사용하며 향유할 권리를 가짐을 의미한다는 주장을 가정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프로그래머는 그가 결정한 가격에 따라 프로그램을 수록한 디스켓을 판매하여 다른 사람에게 제한된 접근권을 허락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니센바움은 이러한 입장이 재산 이론에 대한 중요한 구성요소를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재산권도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면서 행사될 수 없다는 해악금지의 원리(no harm principle)와 같이 그 재산권에 필적하는(countervailing)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제한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니센바움에 따르면 친구의 작업을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프로그램을 복사해 주는 것과 같은 사적인 영역에서의 활동이 정상적으로 흐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행위자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 되므로 이러한 재산권 행사는 부당하다. 따라서 사적 영역에서 관용의 덕을 추구하여 프로그램을 무단복사해서 배포하는 정도의 행위는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니센바움의 주장이다. 이러한 논변은 치명적 무기의 소유자가 그 무기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고 토지의 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가로지르는 냇물을 마음대로 막거나 오염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제시되는 논변이며 또한 이런 결론은 권리의 관점에서 모든 인가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복사가 도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님을 니센바움은 강조한다. 이러한 니센바움의 논변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니센바움이 제시한 누적적인 활동으로서의 지적활동의 성격에 따른 재산권 정당화의 문제는 로크의 입장에서 분명히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한편 이 문제는 롤즈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해결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롤즈의 입장에 따르면 첫번째 원칙에서 주장하는 "자유의 우선이 의미하는 것은, 자유란 자유 그 자체만을 위해서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롤즈에 따르면 기본적인 자유들이 제한되는 두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기본적인 자유들이 평등하기는 하지만 덜 광범위하든가 아니면 그것들이 불평등하든가의 두 경우이다. 첫번째 경우, 기본적인 자유들이 덜 광범위하도록 그 자체를 위해 제한되는 것은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가 모든 것을 고려할 때 그렇게 제한되는 것이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이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이다. 두번째로 자유가 불평등해도 좋은 경우는 보다 작은 자유를 가지게 될 자의 자유가 그러한 불평등으로 인해서 더 잘 보장될 수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롤즈의 입장에 따를 때 지적 재산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무단 복사 금지는 다음과 같이 허용될 수 있다. 즉, 소프트웨어 창작이 누적적인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 최종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이 누군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창작의 동기가 감소할 것이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들은 지적 재산의 생산이 누적적인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그 독점적인 소유권을 누군가에게 위임하여 무단 복사를 금할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살펴 볼 때 지적 재산권에 관한 정당화 논변에 있어서
공리주의적 입장과 권리 중심적인 입장은 대체로 같은 편에 서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적어도 공리주의적 입장이 권리 중심적인 입장과 일치하는 많은 경우에 공리주의적
입장은 권리 중심적인 입장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서 필자는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권리 중심적인 입장은 현재의 입장에서 더 나은 것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며 실질적인 여건이
부족하더라도 성립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하면 권리는 다른 권리와 상충하지
않는 한 더 많이, 그리고 더욱 잘 보장되면 될수록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로크의 생명권과 재산권,
자유권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롤즈의 원초적 입장에 선 당사자들도 선택할만한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의 지적 재산권을 특정인에게 허용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유용한 소프트웨어가 양산될 수
있도록 한다면 권리 중심적인 입장에서 충분히 정당화할만 하다. 한편 이렇게 공리주의와 권리 중심적인
입장이 지적 재산권과관련하여 많은 점에서 일치할 수 있지만 불일치하는 측면도 있는데, 그것은 최소수혜자와
관련된 문제이다. 즉 권리 중심적 입장에서는 소프트웨어의 독점적 소유권이 인정됨에 따라서 최소수혜자에게도
이익이 될 때만 그 지적 재산권이 정당화될 수 있는 반면에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최소수혜자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직관에 따를 때 전자의
입장이 더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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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윤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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