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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전통적인 도덕 이론들과 정보사회에서의 적용 가능성.
앞에서 필자는 정보사회를 위한 윤리학으로서 새로운 도덕 규범 체계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윤리학적 개념틀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자칫 공허한 주장이 되기 쉽다. 그 까닭은 윤리학 이론에서 도덕 규범 체계와 개념틀의 구분이 얼마나 의미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구분이 다소나마 의미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윤리학의 개념들 중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들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논구하는 것은 정보윤리의 정체성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해결하기 위한 의미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제부터 기존의 윤리학적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던 권리 개념과 이 개념에 기초한 계약론의 전통이 어떻게 정보사회의 쟁점들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겠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공리주의가 정보사회의 윤리학으로서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간단히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계약론과 공리주의는 전통적인 도덕 이론의 두가지 큰 갈래인 (1)의무론적(deontological) 이론들과 (2)목적론적(teleological) 이론들의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목적론(teleolgy)에 속하는 윤리설은 우선 좋음을 옳음과는 상관없이 규정하고 그리고 옳음은 그 좋음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한편 의무론은 옳음과 상관없이 좋음을 규정하지도 않으며 더우기 옳음을 좋음의 극대화로 생각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목적론은 다시 윤리학적 이기주의와 윤리학적 보편주의, 혹은 공리주의로 대별될 수 있으며 의무론은 규칙 중심의 의무론과 권리 중심의 의무론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공리주의가 정보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보다 권리중심의
계약론이 정보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더 논의를 집중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우선 공리주의는
계약론보다 정보사회에 좀더 쉽게 적용될 수 있으며 동시에 공리주의 자체의 이론적 장단점도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정보사회에 대한 공리주의의 적용가능성 문제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이것은 잠시
후에 공리주의가 정보윤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면서 좀더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둘째로는
공리주의가 가진 다양한 결함 중에서 부정의를 원천적으로 방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중대한 윤리이론적
결함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정보사회에서 계약론이 유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중점적으로 논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1.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정보 사회
공리주의는 대표적인 목적론적 윤리설로서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 오랫동안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즉 옳고 그름의 기준과 의무의 궁극적인 기준은 공리의 원칙(principle of utility)이다. 그리고 이 원칙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모든 행위에 있어서 추구하는 도덕적 목적이 전체로서의 세계에 있어서 악을 뺀 가능한 최대의 선(혹은 선을 뺀 가능한 최소의 악)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선"과 "악"은 도덕과 무관한 선과 악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공리주의에 따르면 친구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복사했을 때 그 행위가 세계 전체에 유발할 수 있는 선과 악을 모두 계산한 후 선의 총합에서 악의 총합을 뺀 값이 다른 경우보다 최대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는 옳은 행위가 된다. 반대로 만약 무단 복사했을 때의 결과값이 그러지 않았을 때의 결과값보다 작다면 그 행위는 잘못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리주의가 함축하는 내용 중 중요한 한가지는 선과 악의 내용이 무엇이 되든 간에 그것이 어떤 양적인 방식이나 혹은 적어도 수학적인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고 계산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공리주의는 또다른 목적론적 윤리설인 윤리적 이기주의와는 달리 타인을 신중하게 대우하면서도 선(the good)을 충분히 중대하게 다루고 또한 기본 원칙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상충의 문제도 일소해 준다는 장점을 지닌 까닭에 큰 매력을 가진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근대 공리주의의 선구자인 벤담(J.Bentham)에 의해 제시된 이후 밀(J.S. Mill)의 질적 쾌락주의에 의해 수정되었고 이후 시즈위크(H. Sidgwick)와 스마트(J.J.C. Smart) 등에 의해 계승발전되었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정보사회에서 새로 제기되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정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리주의는 그 근본 원리를 수정하지 않고 쉽게 정보사회에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는 장점이 있어서 정보사회에서의 윤리로서 가장 먼저 고려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무어가 지적한 개념적 공백이 공리주의를 정보사회의 도덕적 상황에 적용하는 데에서는 거의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공리주의가 수정없이 쉽게 정보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것이 행위와 결과 간의 관계만을 문제삼으며 어느 사회에서도 행위와 결과 간의 상관관계는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공리주의의 일반 원리로서 제시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는 분배 문제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 가능할 것이다. 지적재산권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하며 소프트웨어 무단복사는 도덕적으로 잘못이라는 논변 중 결과론적 논변도 일종의 공리주의를 정보사회 현실에 적용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소박하지만 직관적인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면 공리주의에 기초한 정보사회의 윤리는 공리의 원칙에 근거하여 사실 확인 작업을 중심으로 정보사회에서의 도덕 규범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상과 같은 공리주의는 개인이나 집단에 있어서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인 수많은 욕구나 목적들의 상호 충돌을 해결하는 자연스럽고 손쉬운 방식으로서 모든 다른 욕구나 목적들에 우선하는 하나의 기본적 욕구 또는 지배적 목적(dominat ends)이 있다는 생각을 형식화함으로써 강한 매력을 갖는다. 그러나 공리주의를 정보사회의 현실에 정당하게 적용할 수 있으려면 공리주의에 대해 제기되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공리주의 이론이 근본적인 수정없이 쉽게 정보사회에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이나 공리주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 역시 정보사회에서 그대로 표출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경식에 따르면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들은 크게 현실적 작용성을 중심으로 한 비판들과 도덕적 합당성의 관점에서의 비판들로 구분할 수 있다. 현실적 작용성을 중심으로 한 비판들에는 의사 결정의 절차를 제시하는 기능에 있어서나 측정의 인식론적 기초, 쾌락이나 행복의 계산 가능성, 그리고 개인간 공리의 비교 문제 등에 있어서의 난점 등이 있다. 이러한 비판들의 주된 내용은, 공리주의가 전제하는 선과 악의 내용이 적절한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고 계산될 수 있다는 가정이 현실적으로 참이 아니라는 인식론적 비판이다. 그 세부 내용을 간략하게 언급하면, 우선 첫째로 제기되는 비판은 공리주의가 필요로 하는 행위나 제도의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하는 인식론적 난관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가능한 다른 대안들에 비해 적어도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선을 산출할 경우 옳은 행위가 되며 그것이 많은 선을 산출한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가 있을 경우 그것은 그런 행위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안들 중 어떤 행위도 실제로는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공리주의가 요구하는 행위의 결과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행위 결과는 무한한 인과적 연쇄를 이루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제적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문제시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인식론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행위의 결과인 여러 선의 측정 가능성 혹은 그러한 선을 결과하게 될 행위나 제도의 계산 가능성이다. 그러한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논거로는 쾌락과 고통의 양화불가능성과 쾌락의 질적 다양성이 제시된다. 셋째로 각 개인에 대한 쾌락이나 공리를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할지라도 쾌락에 대한 개인 간의 비교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전체 쾌락의 계산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쾌락이나 공리의 개인 간 비교는 모든 개인이 쾌락에 대한 능력이 서로 다르며 이러한 개인차 자체를 실제로 계산하는데 필요한 정도로 알 수 없다. 따라서 공리주의에서 요구하는 행위의 결과를 계산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겨난다. 가상공간의 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되는 정보사회에서는 공리주의가 갖는 이러한 인식론적 난관이 감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심대해질 것이라고 예상된다. 특히 두번째 문제인 측정 가능성의 문제는 정보사회환경의 제반여건을 고려해 볼 때 기존의 사회환경보다 훨씬 심각해 질 것으로 판단된다. 가상 공간을 통해서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바로 옆에 있듯이 컴퓨터를 통해서 대화할 수 있고 그 대화가 끝난 후 또 다른 곳에서 해킹을 시도할 수 있으며 시한폭탄(time bomb)이나 논리 폭탄(logic bomb)으로 자신도 그 실행여부를 알 수 없는 컴퓨터 시스템의 붕괴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의 행위와 그 엄청난 결과들의 인과관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에 연결된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인과관계는 서로 상호작용할 것이다. 내가 오늘 컴퓨터 시스템의 설정내용을 고침으로써 누군가가 설치해 놓은 논리폭탄이 작동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기능을 가진 막강한 운영체제 프로그램 속에 숨어있는 기능 결함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서 컴퓨터의 오작동을 유발하고 데이터를 손상시킬 수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서 한 개인의 행위가 어떤 선악의 결과를 초래할지 정보사회의 환경 속에서는 더욱 측정하기 어렵게 된다. 한편 공리주의에 대한 도덕적 합당성의 관점에서의 비판 중에서 가장 심각한 도전은 그것이 정의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을 함축한다는 점이다. 즉 공리주의는 약속의 불이행, 무죄자의 처벌 등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될 뿐만 아니라 비록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시 노예 제도와 같은 부정의한 제도와 양립할 수 있으며 소수자나 개인의 인권 유린과 심각한 불평등 및 불공정한 분배를 정당화할 소지를 갖는다는 문제점을 안는다. 이러한 부정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점 역시 정보사회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가장 친숙한 정보사회에서의 윤리적 논쟁거리인 사생활권 문제에 있어 국가기관과 기업체들이 개인정보를 허락없이 수집하고 저장하고 조직하고 배포하는 행태들이 공리주의적으로 정당화될 소지는 다분히 있다. 또 한편 정보사회에서는 정보기술 전문가들의 역할과 책임이 확대되는데 공리주의적 논변에 따르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들 전문가들에게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공리주의의 논변에 의할 때 컴퓨터 통신망을 통해서 파업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스템 관리자가 전자 게시판에 게제한 개인들의 글을 무단으로 삭제하고 또 그러한 글을 게제한 개인들의 통신자명(ID)을 무단으로 사용정지하는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통신자명은 해킹에 의해서 암호명을 도난당한 사람의 통신자명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보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간과 가까운 기계와 로봇이 나타나게 되고 그것들의 사용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문제시될 때 공리주의적 윤리설은 받아들이기 곤란한 결정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전문가 시스템이 대표적인 경우가 될 수 있다. 전문가 시스템은 여전히 기술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함이 완전히 보완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따라서 그 결함 때문에 잘못된 처방을 받은 경미한 질병의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경우에 편리하고 많은 환자들에 대한 처방을 산출할 수 있어서 의료 비용을 절감한다는 공리적인 이유로 전문가 시스템의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공리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공리주의가 최고의 가치로서 제시하는 쾌락은 정보기술과 기계공학이 발달함에 따라서 인간을 쾌락적 자극의 대상으로 변질시키고 모든 사회적 활동과 책임의 주체를 컴퓨터와 기계로서 간주하는 세상을 정당화하거나 이상으로서 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우리의 도덕적 직관에 따르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필자는 본 논문에서 정보사회의 윤리학적 틀로서
공리주의가 유효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필자가 정보사회에서 유효할 수 있는 윤리학적
개념틀로서 공리주의보다는 권리에 기초한 계약론적 전통의 개념들이 더 유효할 수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로서는 다음의 두가지를 언급하였다. 첫째, 정보사회의 현실과 관련하여 선과 악의
내용이 적절한 방식으로 측정될 수 있다는 공리주의의 전제에 관한 인식론적 난점이 정보사회에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설사 공리주의의 인식론적 난점이 해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공리주의가 그 자체 부정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는 도덕적 합당성과 관련한 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2.
의무 중심의 윤리설과 권리 중심의 윤리설
앞에서 필자는 도덕이론이 크게 목적론적 윤리설과 법칙론적 윤리설로 대별된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법칙론적 윤리설에는 규칙 중심의 의무론과 권리 중심의 의무론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권리 중심의 의무론인 계약론의 적용가능성에 대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 전에 필자가 규칙 중심의 의무론보다 권리 중심의 의무론에 더 비중을 두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윤리학 이론들 속에서 의무 중심의 윤리설과 권리 중심의 윤리설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서는 논의의 전개를 위하여 의무와 권리 개념을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또 서로 구분 가능하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구분의 방법은 개념들의 상호 함축관계를 고려하는 것이다. 즉, A라는 사람이 어떤 권리를 가졌다면 다른 사람들(B,C,D…)은 어떤 의무를 갖지만 B가 어떤 의무를 갖는다고 해서 A가 필연적으로 어떤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할 때 권리의 의미는, 간단히 말해서 부여받은 것, 혹은 권한을 갖는 것(entitlement)이다. 예를 들어서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차를 나에게 준다면 나는 그 차에 대해서 권한을 갖는다. 물론 권리 개념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단순한 동의어를 나열한 것일 뿐 개념에 대한 충분한 정의는 아니다. 하지만 일단 의무와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권리를 설명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허용하기로 하자. 한편 이에 반해서 의무란 (특히 칸트의 윤리학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그것을 하도록 구속되어 있는 행위를 말한다. 권리와 의무를 좀더 대비시켜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두 개의 윤리학적 개념들은 모두 행위와 관련되는데 인간의 행위를 어떤 목적이나 이유에 의해서 유발되어 특정한 결과를 산출하는 일련의 과정으로서의 생각할 때, 의무는 행위를 유발하는 이유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권리는 행위의 끝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결과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이상과 같은 특성 때문에 의무만을 중요시하는 윤리학에서는 행위의 결과를 도덕적 판단근거에서 가능한 한 배제하고 행위의 법칙을 중시하고자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의무 중심의 윤리학자로서 우리는 칸트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원칙과 의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순수 도덕 철학을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리고는 그 토대를 의무와 선의지에서 찾았다. 따라서 칸트는 '의무로부터'의 행위만이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고 본다. 의무에서 말미암아 행위하는 의지가 선의지이다. 칸트에 따르면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행위가 단지 객관적으로 실천법칙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어야 한다. 칸트의 입장에서 실천법칙으로서의 의무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예를 들어 명예에의 경향성과 같은, 결과를 고려한 목적적인 이유에서 유발된 행위는 비록 그 행위가 칭찬과 고무를 받을만한 것일 수는 있어도 도덕적으로 존중할 만한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와 직접 대비시키자면,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적 개인은 결과들과 무관하게 의무를 위하여 행위를 수행하여야 한다. 칸트의 윤리설은 많은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들이 칸트 윤리학에 대하여 가해진 비판이라는 사실보다는 그 비판들 중 많은 부분이 의무 중심의 윤리설에 가해진 비판이라는 점이 지금의 우리 논의에서는 중요하다. 의무 중심의 윤리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이면서도 강력한 비판은 상충하는 의무들이 동시에 제기될 때 어떻게 행위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 예로서 극악무도한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혹은 그 사람과의 약속을 어김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의무론자들도 이 경우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비판의 핵심은 결과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의무에 충실한 행위들이란 그 자체로 정당화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는 데에 있다. 한편 권리 개념은 의무와는 달리 행위 결과를 고려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상과 같은 철학적인 난점은 의무 중심의 윤리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는 그 반대 급부의 난점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
대해서도 상충하는 권리들 간의 조정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의무중심의 윤리설의
난점들만을 지적하고 정보사회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설득력있는 주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보사회의 윤리설로서 의무중심의 윤리설이 갖는 난점은 또다른 측면에서 지적될 필요가 있는데 특히
정보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사회에서 새로운 도덕 규범 체계가
요구되는 이유를 다시 고려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3.
정보사회에 의무 중심의 윤리설을 적용하는데 따르는 문제점
앞에서 필자는 정보사회에서 새로운 도덕 규범이 요구되는 조건 네가지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정보사회에서 행위 환경의 변화와 행위 능력의 변화, 새로운 행위의 출현, 그리고 인간 자체의 부분적인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행위 환경의 변화는 의무 중심의 윤리설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 같지 않지만 행위 능력의 변화는 기존의 의무 개념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같다. 정보사회에서 사생활권 침해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한번 살펴보자. 정보사회에서 그 영향력과 피해가 심대해지고 있는 정보기술에 의한 사생활권 침해 문제는 기업들 간에 개인 관련 정보가 대량으로 거래되고 상품화됨에 따라서 생겨난다. 스피넬로(Ricchard A. Spinello)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신망 구성(networking)의 정교한 기술이 모든 종류의 정보들을 수집하고, 검색하고, 연산하고, 재조합하고 확산시키는 정보기술 시스템들의 성능을 증가시켰으며 그 결과 정보는 적절한 가격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인 관련 정보의 상품화와 컴퓨터 내의 기록보존은 두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1>개인 정보에 대한 조그만 오류의 영향이 막대하게 커질 수 있다는 사실과 <2>과거의 사소한 사실, 혹은 신뢰성 없는 정보가 개인의 삶을 구속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생활권 침해와 관련하여 순수 의무 개념은 어떤 안내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가? 개인에 관한 기록은 이전에도 이루어져 왔던 일이다. 따라서 개인에 대한 기록이 단순히 컴퓨터 속에 전자적으로 저장된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가 이런 형태로 저장될 때 창조되는 가능성 때문에 문제가 생겨난다. 그 이유는 정보가 컴퓨터 속에 저장됨에 따라서 획득하고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과도하게 증대되고 그 정보를 교체할 수 있는 정도와 용이성이 막대하게 증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 관련 정보를 컴퓨터에 대량으로 저장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과정을 규제할만한 순수 의무 개념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떤 행위도 의무의 관점에서 규제받을 만한 행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쉽게 용인하기 어려운 사회적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이는 의무 중심의 윤리설이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갖지 못하는 도덕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소프트웨어 복사 문제에도 순수 의무 중심의 윤리설이 규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기존의 도덕 규범과 도덕적 직관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수확한 결과물에 대해 어떤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경우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든 그것은 자유롭게 허용되는 것이 옳다. 예를 들어서 이웃 사람이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 자신도 소를 이용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은 아니었다. 피카소의 그림과 같은 유명한 명화를 그대로 흉내내어서 모조품을 만드는 것 역시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행위와 결과가 새로운 미술품을 창작하는 것보다 가치가 떨어질 뿐이다. 때때로 모조품 제작이 도덕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모조품을 제작하였다는 것보다는 그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모조품을 자신의 완전한 새로운 창조물인 것처럼 속이거나 자신의 모조품을 진품으로 속여 부당한 이익을 남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본래의 소프트웨어 제품에 아무런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제품을 추가적으로 얻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따라서 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방법과 명화의 모조품을 다른 사람에게 배부하는 행위도 역시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라면 소프트웨어를 복사해서 그것이 복사본임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의 도덕 기준을 정보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보호 문제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적절한 것 같지 않다. 다른 사람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만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자신이 무단 복사하여 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 유용성을 얻거나 혹은 자신이 더 싼 값에 판매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도덕적으로 쉽게 정당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의무 개념에서 크게 어긋나는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컴퓨터를 사용할 때 어떤 프로그램을 복사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며 중요 프로그램을 망실할 경우를 대비해서 예비저장(back up)을 해 두는 일은 오히려 권장되는 사항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자신이 더 쉬운 방법으로 다른 소유물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자신이 (다소 편한 방법으로 얻은) 소유물을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것도 그 자체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개별 행위들에서는 직접적으로 순수 의무에 크게 벗어난 행위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불법 소프트웨어 복사라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위가 이루어진다. 한편 가상 공간에서의 행위 문제에 의무 개념이 적용될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가상 공간이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연결되었을 때의 결과를 가리킨다. 가상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전혀 다른 유형의 행위를 하게 된다. 새로운 매체를 통한 상호작용으로서의 새로운 유형의 행위에는 새로운
도덕과 예절이 필요하게 된다. 이 새로운 도덕을 의무에 근거해서 확립하자면 기존의 의무와는 다른 의무가
요구된다. 그것은 일상적인 대화에서와는 달리 전화라는 매체를 통한 대화에서는 좀더 다른 예절이 요구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서 컴퓨터 통신망 안에서 자기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상용 소프트웨어를 공개적으로
등재(up load)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보사회 이전의 상황에서 자신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물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일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정보사회에서의 새로운 상황과 관련한 의무가 순수 의무 개념에서는 도출되기 어려울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의무 중심의 윤리설에 따를 경우에 정보사회의 여러 도덕적 문제들은 무어가 지적한 바와 같이 개념적 공백에
직면할 것이다. 4.
정보사회의 윤리설의 주요 개념으로서 권리 개념이 유효할 수 있는 까닭
이상과 같이 의무 중심의 윤리설이 정보사회에 적용되는데 따른 문제들은 의무 중심의 윤리설이 결과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도덕 이론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행위의 환경과 행위 능력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행위가 나타나고 인간 자체가 부분적으로나마 변화하는 정보사회의 여건에서 의무에 대한 존경심에서 생겨나는 선의지와 같은 순수한 동기 위주의 행위 규범을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공허하거나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칸트와 같은 의무 중심의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앞에서 예시된 문제상황에 대해 방법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다만 수단으로서만 대우하지 말고 목적으로서 대우하라는 명법에 근거해서 사생활권 침해 문제와 소프트웨어 복사 문제, 그리고 가상공간에서의 행위 규범 문제에 대해 답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목적으로서 대우하라는 칸트의 명법 역시 공허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을 목적으로 대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한 행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복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프트웨어 제작자와 함께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일반인들을 역시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를 정당화하는 논변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논변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의무 개념에만 근거해서는 정보사회의 여건에서 필요로 하는 행위 규범 체계를 충분히 구축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취약점은 순수 동기에서만 도덕적 정당화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 생겨난다. 그렇다고 당장 이 문제의 해결책을 결과를 1차적으로 고려하는 윤리설에서 찾고자 하는 것도 옳지는 않다. 왜냐하면 결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목적론적 윤리설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론인 공리주의의 난점을 앞에서 이미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상대적으로 가장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권리 개념에 주목하여 정보윤리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권리란 부여받은 어떤 것(entitlement)라고 간략하게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제 의무의 개념과 구분하여, 그리고 목적론적 윤리설과 의무 중심의 윤리설의 난점들을 고려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윤리설의 중심 개념으로서 권리 개념을 좀더 자세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러한 권리 개념을 '어떤 조건에 대한 정당한 요구(justified claim)'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떤 권리를 가졌다면 나는 그와 관련된 특정 조건이 결과적으로 주어질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이 때 "할 수 있음"의 개념은 행위구속성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재산권을 가졌다면 그 재산을 내가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조건에 대하여 정당하게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권리 개념을 이렇게 이해할 때, 의무 개념과 비교해서 권리 개념은 행위의 동기보다는 행위의 결과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권리가 요구하는 어떤 조건은 도덕적 행위자의 행위에 의해 결과된 사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 중심의 윤리설은 목적론적 윤리설과는 달리 단순히 다양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사실로서의 결과에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목적대상으로서의 결과'와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만약 내가 생명권을 갖는다면, 지금 내가 살아있고 미래에도 살아있다는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과를 보장하고자 하는 모든 관련 도덕 주체들의 동기도 역시 중요하다. 내가 지금도 살아있고 미래에도 살아있지만 그것은 모든 관련 주체들이 나를 죽이려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피해다니거나 혹은 성공적으로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나타난다면(그리고 미래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 때의 결과는 나의 생명권에 대한 충분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권리는 결과와 관련되지만 과정을 무시한 사실로서의 결과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동기가 되는 이유 역시 요구한다. 권리는 결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보장받아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결과에 대한 정당한 요구이다. 권리가 요구이므로 권리는 요구하는 주체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권리의 주체는 곧 도덕의 주체이고 즉 인간이다. 권리는 결과에 대한 요구이고 어떤 도덕 주체의 권리 요구이기 때문에 아무리 여건이 풍부해도 더 나은 것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며 반대로 실질적인 여건이 부족하더라도 성립한다. 또한 권리 요구는 주체와 분리불가능하므로 특정 개인이나 소수를 희생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는 이러한 장점의 반대급부로서 그 만큼의 단점이 생겨난다. 권리를 윤리설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동기와 결과를 다같이 고려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권리 중심의 윤리설은 목적론적 윤리설의 단점과 의무 중심의 윤리설의 난점을 회피하지만 동시에 동기와 결과가 서로 상충할 경우에 어떻게 해결하는가의 문제와 상충하는 권리들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권리 중심의 윤리설의 다양한 입장은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러한 한가지 해결방안으로서 계약론의 전통이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계약론의 입장은 권리 중심의 윤리설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계약론의 입장에 따르면 도덕은 다양한 자연권을 가진 당사자들이 서로의 상충하는 권리들로 인해 발생하는 끊임없는 전쟁과 투쟁이 존재하는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민 정부나 도덕체계를 설립하고 각자의 요구를 존중하도록 서로 암묵적인 계약을 맺음에 따라서 생겨난다. 그리고 그 대가로서 당사자들은 각 개인들의 권리들을 서로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된다. 따라서 권리 중심의 윤리설은 그 내부에 의무 개념을 권리에 근거지워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정보윤리에 대하여 논의하는 이 논문에서 필자가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 관심을 가지는 주된 이유는 권리 중심의 이론이 윤리 이론의 측면에서 장점을 갖는다는 사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권리 개념이 정보사회의 여건에 더욱 용이한 방식으로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더 주된 이유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정보윤리가 요구된다는 무어와 존슨 및 매너의 주장의 핵심은 정보사회의 여건에서는 행위의 도덕적 맥락이 변화하여 도덕 개념의 공백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의무 개념이 정보사회의 근본 도덕 개념이 되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러한 도덕 개념의 공백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리 개념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도덕 개념의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행위의 동기만을 중요시하는 의무 개념과는 달리 권리 개념은 행위의 목적대상으로서 결과 역시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사생활권 문제와 관련하여 개인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 복사, 배포하는 행위는 그 자체 적법하며 개별 행위들이 잘못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시된다. 만약 개인 관련 정보를 상품화하고 그것을 거래함에 있어서 누구의 권리도 침해되지 않았다면 그러한 행위의 도덕적 시비를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기준도 권리 중심의 윤리설에서는 직접 제시할 수 있다. 즉 개인 관련 정보를 취급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다양한 권리들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기준을 권리 개념에서 직접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무단 복사 문제와 관련된 쟁점에 있어서도 권리 개념은 유효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개별 사례들에 있어서만 권리 개념이 유효한 것이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도덕적 문제들 일반을 해결함에 있어서 권리 개념은 보편적으로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권리 개념이 정보사회에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도덕의 기본 개념이라는 이러한 필자의 주장이 이상과 같은 논의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권리 중심의 윤리설 일반의 적용가능성만을 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더 특정한 철학자의 입장들을 고찰할 필요도 있다. 이 논문에서는 로크의 계약론과 롤즈의 정의론에 논의를 집중할 것이다. 그런 고찰 과정에서 필자는 또한 정보사회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윤리적인 쟁점들에 관하여 권리 중심의 윤리설들이 어떻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를 예시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앞에서 논의한 공리주의와 의무 중심의 윤리설에 대한 비판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음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비록 유일한 전통적 개념틀은 아닐지라도 이 논문에서 정보윤리의 가장 유력한 후보 이론으로 고려하고 있는 권리 중심의 계약론이 가능한 윤리학적 개념틀을 제공하리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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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윤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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