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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컴퓨터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의 근원 : 논리적 변용성과 상호작용성
정보사회의 출현은 통신기술과 다양한 매체(media)의 기술 등의 폭넓은 기술발달에 힘입었지만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발명과 보급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때문에 정보사회의 윤리학은 많은 경우에 컴퓨터 윤리학과 동일시된다. 그런데 다른 많은 기계나 장치들과는 달리 현 시대에 컴퓨터는 왜 그토록 사회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무어(James H. Moor)에 따르면 컴퓨터가 혁명적인 까닭은 컴퓨터가 입력과 출력, 논리적 연산들의 결합이라는 용어로 특징지을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끔 변형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논리적으로 변용성이 있기(logically malleable)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해 컴퓨터가 충분히 많이 있고 가격이 낮으며 크기가 작고 처리 속도가 빠르며 사용하기 쉬워서 친숙하고 기능이 강력하다는 특징들은 컴퓨터 자체의 독특한 기능이 사회 전반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러한 무어의 관찰은 컴퓨터가 갖는 기술적 특성을 잘 포착해 내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회 변화 전반에 미치는 큰 영향력과의 관계를 포착하지는 못했다. 컴퓨터의 논리적 변용성이 컴퓨터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핵심적인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왜 컴퓨터가 큰 사회적 변화를 유발하는지에 대한 이유라기보다는 더 정확히 말해서 컴퓨터 기술의 특성들 중 어떤 것이 사회적 변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따라서 컴퓨터의 논리적 변용성이 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편 컴퓨터가 가격이 낮고 충분히 많이 생산되는 등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데 대한 주된 이유가 아님이 분명한 것 같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계의 수가 늘어나고 가격이 낮아지며 크기가 작고 성능이 향상되는 것은 다른 여타의 기구들에서도 쉽게 관찰되는 사항이다. 예를 들어서 라디오와 녹음기와 같은 가전제품들도 그런 발전을 노정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컴퓨터의 논리적 변용성이 사회적 변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대답은, 논리적 변용성으로 인해서 컴퓨터는 다른 기계나 장치들과는 달리 인간의 능력, 특히 지적 능력을 중심으로 한 인간 자체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 속의 제반 관계에서 인간은 항상 중심에 서고자 하고 목적이 되고자 하며 이러한 인간 중심의 입장에서 사회적 관계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그것은 그 관계들이 인간 사회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특정 대상의 양 항으로 구성되는 사회관계에서 다른 기계류는 대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라디오는 인간의 귀와 귀가 들을 수 있는 소리 간의 관계에서 귀를 바꾼 것이 아니라 소리를 바꾸었다.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을 제공했고 더 멀리서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에 반해 컴퓨터는 어떤 측면에서 인간의 귀를 바꾸었다. 그것은 디지탈 정보로 된 소리를 듣게 만들고 그것들을 편집하고 변형해서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여전히 최종적으로는 기존의 소리와 다를 바가 없지만 라디오는 멀리 있는 소리를 가까이 갖다 놓았을 뿐인데 반해 컴퓨터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소리를 변형시키고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동차는 인간과 특정 공간과의 시간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인간의 발을 대신한 것이지 인간을 대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컴퓨터는 그 논리적 변용성으로 인해서 인간의 사고능력과 인간의 기계조작 활동을 대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도 여전히 인간과 대상과의 관계에서 인간에 가까울 뿐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지는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컴퓨터는 여전히 도구이며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세계와 인간의 관계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매개함으로써 그 관계들을 컴퓨터 입출력 기능이라는 하나의 창문으로 모아준다. 적어도 정보사회에서의 독특한 사회적 관계들은 거의 대부분 이 창문을 통해서 이루어지거나 이 창문을 통해서 서로 연관된다. 이 때문에 컴퓨터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본유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그 부분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많은 부분을 직접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컴퓨터는 기존의 인간-대상간의 관계들을 확대시키고 변형시키고 새로이 창출하고 있다. 컴퓨터와 관련된 정보사회의 윤리문제가 새롭게 제기되는 맥락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정보사회의 윤리학이 컴퓨터 윤리학과 동일시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인간-대상 간의 관계에서 인간 쪽에 가깝게 위치하여 제반 사회관계들을 변화시킨다는 점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또 다른 특성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상호작용성'이다. 컴퓨터의 상호작용성이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람이 어떤 도구와의 관계에서 전화기나 망치와 같은 피동적인 도구를 가지고 어떤 능동적인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텔레비젼과 같이 그 도구가 어떤 것을 능동적으로 제공하고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피동적인 입장이 있을 수 있는데 컴퓨터는 인간에게 이러한 능동적인 입장과 피동적인 입장을 모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상호작용성으로 인해 컴퓨터로 매개된 통신(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발전되어서 전 지구적인 인터넷을 확립하였고 또 다른 하나의 세계인 가상공간을 출현시켰다. 컴퓨터가 정보사회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이유나 경로는 그 밖에도 많은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어떤 것이든 인간-대상(혹은 사회) 간의 관계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면 기술적 의미나 여타의 의미는 심대할 수 있을지라도 그 사회적 의미는 적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컴퓨터 기술의 특성 상 논리적 변용성과 상호작용성이 가장 중심적인 사회변화의 요인이며
그 이외의 것은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3.
가상 공간(cyberspace)의 의미와 사회적 영향력
컴퓨터 기술은 디지탈 정보 속에서의 가상적인 활동영역을 창출하였다. 이 활동영역을, 인간의 영역이라는 측면에 주목해서 "가상공간"(cyberspace)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과 문화 등을 총칭하면서 그 상호작용하는 사람에 주목하여 "가상공동체"(cybercommunity)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상 공간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연결되었을 때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가상공동체는 디지탈 결속(digital connection)에 의해서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이다. 가상공간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탈 결속은 도처에 편재하고 위계적이지 않으며(non-hierarchical) 그 구성에 있어서 수평적(peer-to-peer)이다. 그러면서도 가상세계는 물리적인 인간 세계와 별도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깊이 연관되어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 가상세계와 물리세계의 관계는, 가상세계가 물리세계의 여러 기능들과 측면을 디지탈 정보의 형태로 변형하여 디지탈 정보 형태가 갖는 독특한 특성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관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즉 가상세계는 정보들로 채워진 세계의 다른 면이다. 그것은 하늘 속의 비행기 자체와 조종석 내부 환경 간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경우에 거기에는 많은 물리적인 변화와 그 상호작용들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 변화와 상호작용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비행기 조종석에서 파악되고 그 조종석의 계기판과 조종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변화의 중심에 조종사의 인지활동이 있다. 가상세계는 이러한 비행기의 조종간과 대응되고 실제 물리적인 세계는 비행기와 기류, 바람 등의 물리적인 상태 및 조건들과 대응된다. 비행기가 비행할 때 상호작용하는 기류와 부력, 엔진시동 등이 이제 계기판과
조종간 안으로 집약되어서 조종간 내부 환경의 특성에 의해서 매개되듯이, 가상공간 안에 디지탈 형태로
집약된 세계의 단면들도 디지탈 정보의 특성에 의해서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기류번화가
조종간을 통해 비행기 날개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듯이 가상공간 안의 정보들은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수집되고 재조합되며 변형되고 배포된다. 디지탈 정보의 특성과 가상세계의 상호작용성으로 인해서 여러가지
사회기능들이 탈 집중화되며 통제하기 힘들어지고 더 빨리 변화하며 쉼없이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지는 동적
경쟁이 발생한다. 그 변화는 사회전반에 확대되어서 새로운 부가가치인 지식정보에 대한 많은 소유관계가
불분명해지고 경제는 소유보다 관계에 기초하게 되며 규모의 대량생산 경제가 허물어진다.
4.
정보사회의 역기능과 윤리적 쟁점들
한편 이러한 변화와 함께 정보사회의 역기능과 관련된 많은 사회적, 윤리적인 문제들도 새롭게 생겨난다. 사회가 정보화됨으로써 생겨나는 역기능으로서는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권에 대한 위협, 정보통신 시스템의 집중화와 대규모화에 따른 재해 가능성, 정보의 범죄이용 가능성, 인간성 상실 등을 예상할 수 있다. 정보사회의 역기능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서도 많이 강조되었다. 포레스터(Tom Forester)와 모리슨(Perry Morrison)은 현대 정보사회의 특성들을 논하면서, "사회 전체는 컴퓨터와 컴퓨터 통신망들로 인해 많은 이득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컴퓨터화는 전반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던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불러 일으켰다"고 지적하고 그 역기능들을 컴퓨터 범죄와 컴퓨터 보안의 문제, 소프트웨어 절도와 지적 재산권 문제, 해킹과 바이러스 프로그램의 문제, 컴퓨터의 신뢰가능성과 소프트웨어 품질의 문제, 데이타 저장과 사생활 침해의 문제, 인공지능과 전문가 시스템의 사회적 의미의 문제, 직장의 컴퓨터화와 관련된 문제 등 7가지 범주로 구분해서 강조하고 있다. 스피넬로(Richard A. Spinello)는 정보사회의 역기능 문제들을 정보기술과 관련된 반경쟁적 관행들(anti-competitive practices)과 판매자와 고객 간의 관계(vendor-client relations), 사생활권 문제와 지적 재산권 문제, 정보 보안의 문제 등으로 분류하면서 동시에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s)이 유발하는 역기능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바이젠바움(Weizenbaum)은 데이터베이스 기술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단점을 고려하지 않고 1차적인 데이터 자료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역기능으로서 지적하였고 버커츠(Birkerts)와 위너(Winner)는 컴퓨터 통신망 사용을 통해서 유발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이러한 전반적인 사회 변화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태도를 요구하며 따라서
윤리규범과 윤리학도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 즉 정보사회의 심층적인 차원에 있어서 우리의 삶의 양식은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정보사회와 관련한 철학의 임무는 이같은 점진적, 심층적 함축에 대한 성찰이어야
한다. 특히 정보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다양한 문제들이 우려되는데, 정보사회에 있어 우리의 내면적 체험의
공간이 그대로 남아날 것인지, 인식론적 진위의 기준이 보존될 것인지, 탈도덕화현상이 가속화되어 법규범만이
남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등의 문제도 현재의 조망에서 보면 지나친 우려가 아닐 것이다. 이런 우려와
함께 황경식은 정보사회의 도덕적 특성에서 최소도덕화, 결과주의화, 책임윤리화, 준법규화 과정이 보다
심화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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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읽는 윤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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