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1.4. 카르납의 양상논리 의미론에 대한 평가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카르납은 양상논리에 대해 의미론적 방법론을 최초로 도입한 학자라는 점은 카르납의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카르납에 대한 다른 평가나 비판의 출발점이 된다. 힌티카(Hintikka[1961])도 이 점을 지적하여 “카르납이 의미론적 방법을 도입한 최초의 양상 논리학자가 된다는 점은 항상 충분히 평가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한편 다음과 같은 파이스([1963], 292쪽)의 설명은 그 중요성을 보다 상세히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과거의 양상 논리학은 혼란의 영역(realm of confusion)이었다. 루이스에서부터 이어지는 최근의 양상 논리는 엄밀한 구문론을 갖추었긴 하지만, 엄밀하지 않은 해석, 혹은 전혀 해석이 없는 충격적인(striking) 예였다. <S3>의 42개 양상들을 산출하는 페리(Parry)의 연역들은 나무랄 데 없는 것이지만, 매우 복잡한 그 내용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아무도 개진하지 않았다. 단지 잘 구축된 구문론은 어떤 식으로든 그에 알맞은 잘 구축된 의미론적 해석을 가질 것임에 틀림없다고 기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즉 카르납의 시도 이전에도 많은 ‘직관적인’ 해석들이 양상을 위해서 제시되었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규범적이거나 물리적인 것들이었다. 이 해석들이 시론적(tentative)임에 반해 카르납의 L-참은 더 나은 “논리적” 해석을 제공했다. 비록 카르납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형식적 의미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잠재성을 충분히 가진 결과를 산출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카르납의 양상 개념은 다음의 두 가지 성과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카르납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루이스(C. I. Lewis) 이후로 제시된 많은 양상논리체계들에서 나타나는 문장들 중에서 어떤 것이 의미론적으로 타당화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고, 둘째 양상 개념을 토대로 해서 ‘논리적 참’과 ‘사실적 참’의 구분을 위한 의미론적 해석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첫째 목적과 관련하여 카르납은 한 예로 ‘’ 형식의 문장들이 정리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상 해석에 기초할 때 이 물음에 긍정적인 답이 나온다고 주장하며 더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른 문장들에 대해서도 하나의 분명한 대답의 기준을 제시한다고 말한다.(Carnap[1947], 173-175쪽)

둘째 목적과 관련해서 카르납은 양상을 메타언어적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틀롭(Gottlob[1994])과 토마슨(Thomason[1989], 136쪽) 등이 이 점을 지적하였다. 즉 필연성을 논리적 참으로서의 타당성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며 이 때의 타당성은 1차 언어에서의 메타언어에서 나타나는 개념이다. 이런 카르납의 양상 이해는 이후에 전개되는 PWS 발전사에서 진리적(alethic) 양상 이해의 최초의 사례이다.

하지만 카르납의 양상 개념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한계점과 문제점들 역시 있다.

첫 번째 지적할 만한 한계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 카르납의 한계점이다. 그것은 카르납이 가능세계의 개념에 해당하는 사태기술을 도입하여 양상논리에 대한 가능세계 의미론을 최초로 시작했지만 가능세계들 간의 접근가능성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한계점은 다음의 두 가지 함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예를 들어, 카르납은 ‘’ 형식의 모든 문장들이 참인 체계와 그렇지 않은 체계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카르납은 자기 스스로 목표로 한 바와 같이 이런 체계들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한 □에 대한 의미론적 정의를 내리기는 하였다. 하지만 ‘’ 형식의 문장이 참인 방식으로 이해된 양상성의 개념과 그것이 거짓인 방식으로 이해된 양상성의 개념 간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거의 조금도 인지를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카르납은 여러 양상논리체계들 중에서, 예를 들어서 <K>, <T>, <S4>, <S5> 등의 체계들에 대해서, 각각의 공리들, 그리고 그 공리들만을 타당하게 하는 의미론들 간의 상호관련성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둘째, 카르납은 양상을 논리적 필연성으로 해석하는 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여러 다른 양상 체계들에 대한 일반적 의미론을 제공하자면, 그리하여 여러 체계들의 차이와 연관관계를 설명하자면 의미론에서 가능세계들 간의 접근가능성 관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언급하고 이것을 형식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카르납은 가능세계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논리적 필연성의 개념은 유일하므로. 카르납은 <S5>만을 생각한 것이다.

카르납이 가능세계들(카르납의 사태기술들)의 접근가능성 관계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가능세계 의미론이 발전한 지금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과 얼마나 다른가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의, ‘평가’가 아닌 ‘기술’의 측면이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납 자신이 제기한 여러 주장들 속에서 가능세계들 간의 접근가능성 관계에 대해 함축하는 많은 단초들이 있다는 점에서 카르납의 생각이 충분히 가진 잠재적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