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습관에 대한 이해
99113-857
이창후
서론
많은 철학자들이 정신이나 의식, 혹은 좀더 포괄적으로는 마음에 관해서 자신의 철학을 펼치지만 그 속에서 습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나 습관의 한 특수 형태라고 할 수도 있는 `숙련'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언급된 내용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헤겔이 말한 대로 "영혼과 정신의 학문적 고찰에 있어서 습관은 경멸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인지 혹은, 오히려 가장 곤란한 규정에 속해 있기 때문인지, 간과되는 것이 보통이다"(§410). 필자가 생각컨대는,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의 초점이 학문 자체에만 모아졌으며 로고스 중심의 논의였기 때문에 습관이나 숙련과 같은 학문과 이질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를 철학자들이 별로 느끼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로고스 중심의 철학은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는 몇 가지 문제들을 유발시켰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로고스로 이해될 수 없는 우리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철학의 영역 바깥으로 밀쳐놓거나 혹은 크게 평가절하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예술을 이데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것, 그래서 예술품이 진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비천한 것으로 평가한 것이나 언어분석철학의 여파로 윤리학이 철학 속에서 설 자리를 잃었던 것 등이 그러한 피해의 한 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나마 그 문제들은 철학 속에서 언급되기라도 하였지만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은 분야도 있으니 그 중의 하나가 체육 분야이다.
체육활동을 포함한 교육의 많은 부분은 숙련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은 적어도 헤겔의 입장에서 습관의 한 형식이고 이러한 범주관계에는 큰 문제점이 없어 보인다. 특히 한국과 같은 동양사회에서는 예로부터 문과 무를 강조하여 왔으며 그 중 무(武)는 역시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체육이든 무든, 숙련이나 습관에 의해서 지지되는 많은 활동들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음은 누구라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습관에 대해서 논의한 헤겔의 철학 부분은 최소한 한번쯤은 세심하게 고찰할 가치가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 필자는 헤겔의 습관에 대한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그것이 헤겔의 전체 정신철학과 관련해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한편으로는 특히 헤겔의 습관 개념에서의 감정(Gefuhl)과 자기 감정(Selbstgefuhl) 개념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에 의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다.
헤겔에서의 정신과 영혼
헤겔에게 따르면 "영혼이 추상적·보편적 존재로 되는 것, 감정(또는 의식)의 특수적인 것을 영혼에 그저 있는 불과한 규정으로 환원하는 것, 이것이 습관이다." 헤겔 철학은 그 용어선택이 일상적인 언어에서와 달라서 다소 이해의 어려움이 있으므로 이러한 헤겔의 습관에 대한 생각도 역시 해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헤겔의 습관 정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헤겔의 영혼(Seele) 개념을 이해해야 하고 다시 영혼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헤겔 형이상학에 있어서 정신과 영혼은 매우 핵심적이면서도 동시에 포괄적인 개념이므로 부득불 헤겔 정신철학의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를 위해서는 너무나 포괄적인 작업이 필요하므로 본 글에서는 헤겔의 "제 1부 주관적 정신"에 나타나 있는 헤겔 형이상학을 중심으로 습관에 대한 이해를 진행시키도록 하겠다.
먼저 헤겔에게 있어서 정신의 개념을 이해해 보자. 헤겔의 정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이 정신을 탐구하는 이유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겔은 정신 안에서 학의 근거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학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는 플라톤 이후로 서양철학의 중심 주제가 된 것이다. 그러면 헤겔은 왜 정신 안에서 학의 근거를 확립하고자 하는가? 그것은 자기 안에 근거를 가진 것만이 가장 가치있는 인식이며 오직 정신만이 자기 안에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 인식은 인간의 진실성의 인식, 곧 자신에 있어서 진실된 것의 인식, 정신으로서의 본질 그 자신의 인식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377) 뿐만 아니라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설에서 "정신이란 곧 스스로를 타자화하는 운동, 다시 말해 오직 그 자신을 바로 자기 자신의 대상으로 되게 함으로써 끝내는 이와 같이 자기와 대상 사이에 가로놓은 타재성을 지양하는 운동"이라고 함으로써 정신이 인식론뿐만 아니라 존재론까지도 포괄하는 학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헤겔의 정신의 본성은 스스로 운동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정신의 본질은 형식적으로는 자유이며 자기 동일성으로서의 개념의 절대적 부정성이다"(§382). 이 때 정신 운동의 원리가 부정이며 정신은 이렇게 부정됨으로써 스스로를 전개한다. 한편 정신을 형식적으로는 "자유"라고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자기 부정의 능력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은 자기 부정을 통하여 전개되며, 곧 발전하는데 정신의 발전은 주관적 정신, 객관적 정신, 그리고 절대 정신이다.(§385) 그 중에서 영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신의 발전 단계는 주관적 정신이다. 헤겔의 주관적 정신이란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형식 속에 있고 그것이 자기 내부에서 이념의 관념적 총체성이 되는 것, 즉 정신의 개념인 것이 그 자신에게 발생하고 그에게 자기의 존재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다."(§385) 이 주관적 정신은 "자기에게서 산출된 세계로서의 실재성의 형식"을 아직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객관적 정신과 구별된다. 즉 주관적 정신은 쉽게 말해서 아직 자연과 일치됨으로써 외화되지 않은, 비실체화된 정신이라고 투박하게, 그리고 잠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를 들어 생각으로서의 정신, 혹은 마음으로서의 정신이며, 이와 구별되는 것으로서는 객관적 정신인 법, 윤리 등과 다르다. 법 윤리 등은 외화되어서 (非헤겔적인 용어로) 객관적인 실체, 혹은 객관적인 표현을 가져서 역시 객관적으로 존립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주관적 정신이 "즉자적이고 직접적이며 영혼, 혹은 자연정신"이라고 주장하고 "매개되어" 있어서 "저기와 타자에게 한가지로 반성하는 것으로 존재하고, 관계 내지 특수화에 있어서의 정신"이다.(§387) 이것은 우리가 어떤 표상이나 관념의 매개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정신을 (사유함으로써 스스로 존재함을 파악하듯이 데카르트적으로) 직접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반성이라는 것릉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여전히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헤겔의 정신은 단순히 한 개인의 정신, 혹은 한 개인으로서의 자아의 정신에만 한정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모든 개인의 정신에 대해서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헤겔의 `정신'이란 모든 개인과 모든 사물, 더 나아가서 세계의 배후에 있는 형식적, 혹은 logos적 실체로서의 정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신이 자기동일적일 수 있는 가능성은 자기 속에서 정신의 추상적인 대자존재적인 보편성이며(§382)" 또한 "이 보편성은 정신의 실존(Dasein)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다.(§383)
헤겔의 습관 개념
그렇다면 이제 헤겔이 왜 습관을 "영혼이 추상적·보편적 존재로 되는 것, 감정(또는 의식)의 특수적인 것을 영혼에 그저 있는 불과한 규정으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했는지를 잠정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헤겔이 또한 이 습관의 개념이 관습에까지 연장되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혼이 감정의 특수적인 것을 영혼에 그저 있는데 불과한 규정으로 환원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정신이, 예를 들어 아침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은 특수성을 그 주관 자체에 규정으로 환원하여 이제 영혼은 그 규정에 따르지만, 그 규정 자체인 아침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 감정은 특별한 자기 근거없이, 혹은 의식이나 정신에서 주어지는 근거없이 존립하게 되는 것,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움직이고 느끼게 되는 것이 습관인 것이다. 특히 여기서 "그저 있는데 불과한"이란 용어는 헤겔 철학 체계 속에서는 모든 근거가 정신으로부터 산출되어야 하므로 제시되는 수식어이다. 이 때 영혼은 습관의 형식을 내용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규정으로서 무감각·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지니고 있으며, 그 규정들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다. 즉 습관화된 모든 행동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걸음을 걷는다. 우리가 이러한 습관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의 의식은 이 습관에 의해서 규제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습관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즉 "영혼은 그 규정에 대해 관심이 없고 몰두하지 않는 한에서, 그 규정으로부터 자유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이 습관과 충돌하지 않는 한, 따라서 습관에 관심을 갖는다거나 습관에 매이고 의존하는 일이 없는 한, 습관에 있어서 자유이다."
헤겔에게 있어서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의 첫번째 전개 형태로서의 주관적 정신인 영혼의 외연이 개인의 정신, 관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세계의 정신에까지 넓어지므로 습관의 문제는 곧 관습과 법률, 윤리에까지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습에 대하여 경멸적으로 말하며, 생명없는 것, 우연적인 것, 특수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러한 관습을 포함한 "습관은 모든 정신성이 개인 주관에 있어서 지니고 있는, 현존에게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주관이 구체적인 직접적으로서 심적 관념성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이며, 종교적·도덕적 내용이 이러한 자기로서의 주관에, 곧 영혼으로서의 주관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특히 "법률적인 것 일반의 습관이나 윤리적인 것의 습관은 자유의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헤겔에게 있어서 중요해 보이는데 이것은 도덕(Moralitat)과 윤리(Sittlichkeit)에 대한 헤겔의 사유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중 도덕에 대한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면 "주체적 의지는 이 규정들이 내면적으로 의지 자신의 규정으로 설정되고 의지 자신에 의하여 요구되는 한, 도덕적으로 자유"(§503)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윤리에 대한 설명에서도 "윤리는 객관적 정신의 완성"인데 외적인 것 속에 자기를 설정하는 주관적 정신의 일면을 지양한 "주관적 자유는 진정한 의미로 보편적인 이성적 의지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의지는 […] 자기의 활동과 직접적·보편적인 현실과를 동시에 습속(Sitte)으로서 가지고 있다"(§513)고 설명하고 있다. 습속(Sitte)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이 덧붙어 있지 않지만 습관 혹은 관습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습관에서의 감정
이제 헤겔의 습관개념이 갖는 문제점을 교육 혹은 체육의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교육의 많은 부분은 습관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체육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공의 움직임이나 상대의 순간적인 동작에 적절히 반응하는 움직임은 기계적인 반복 숙달에 의해서 얻어지는 습관을 통해서 습득된다. 그런데 이러한 습관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헤겔의 습관 개념이 갖는 첫번째 문제점은 습관의 감정 규정의 반복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즉 헤겔에 따르면 "감정 규정의 특수한 것, 곧 신체적인 것은 […] 영혼의 존재에 있어서 자기를 형성하거니와, 이것은 감정 규정의 반복으로 나타나고 습관의 생성이 훈련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정말 습관은 감정 규정의 문제인가? 필자는 감정보다는 의지 규정의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습관은 많은 경우에 감정의 변화없이 형성되며 우리 생활을 형성하는 수많은 습관들 모두에 특정한 감정을 관련시킨다는 것은 그럴듯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헤겔은 왜 습관을 감정 규정의 문제로 보았을까? 「철학요강」에서는 주관적 정신이나 객관적 정신에서 의지를 별도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는 헤겔이 우리가 `의지'라는 용어로 지시하는 정신의 측면을 다른 방식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헤겔은 인간정신의 의지적인 측면을 어떻게 파악하고 설명하고 있는가? 헤겔에게 있어서 영혼은 정신이 자기를 전개하면서 거쳐가는 한 계기이다. 그런데 정신은 스스로 운동하기 때문에 그 의지적인 측면이 헤겔에게 있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의지는 동기와 함께 운동의 근원이자 원인으로서 파악되며 의지가 없는 정신은 운동하지 못하는 주체이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하며 자기 안에 근거를 가지는 것이 정신의 본질이라고 파악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이 때 의지를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된다. 다만 정신이 어떻게 운동하며 그 전개의 단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피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고 그 운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헤겔의 철학을 이렇게 해석하면 습관이 감정 규정의 문제가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헤겔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꼭 이러한 이해에 맞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인 개인성은 우선 단자적 개체이다. […] 또한 자기로 복귀한 주관이 아니며 따라서 수동적이다."(§405) 또한 "이 감정 생활에는 지성과 의지의 인격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본질적 규정은 모태내의 어린애의 상태와 같이 수동성의 상태이다."(§406) 이와 같이 헤겔은 감정(Gefuhl)을 순전히 수동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헤겔이 자기감정(Selbstgefuhl)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다소 설명이 다르다. 즉 "자기 감정은 아직도 직접성 가운데 규정되어 있다. 곧 신체성 가운데서 아직도 정신성과 분리되지 않고 있는 신체성의 계기이다. 그리고 감정 스스로가 하나의 특수 감정이며, 따라서 특수한 신체화이다."(§408) 이 때 이 자기감정이란 주관이다. 즉 "주관은 자기 감정이다. 그리고 주관이 자기 감정인 것은 동시에 오직 특수 감정 가운데 있을 경우뿐이다."(§407) 따라서 헤겔의 자기 감정은 주관으로서 정신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수 감정 속에 있는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헤겔은 "기억이 지성의 기구인 것처럼 습관은 자기 감정의 기구"이며 "습관은 자기 감정에 속하는 한에서의 감정, 지성 및 의지 등의 규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헤겔의 습관 개념은 최소한 부분적으로 의지 규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습관이 자기 감정의 기구인데 주관이 곧 자기 감정이라면 이는 곧 주관이 습관을 통해서 어떤 활동을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우리가 습관을 의지 규정이라고 일상적으로 이해할 때 의미하는 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결론
지금까지 「철학 요강」에 나타난 헤겔 습관 개념을 통해서 헤겔의 습관 개념을 이해해 보았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습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진지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교육과 체육 등에서 습관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점에서 헤겔의 습관에 대한 언급들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특히 헤겔의 습관 설명에서 "감정 규정"으로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필자가 이해하는 한에서 (필자 스스로도)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헤겔 철학이 여러 가지로 많은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반론과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계속 헤겔 철학의 중심 주제 외의 여타 주제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