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슨 말이 생각나는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의 핵심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좀 다르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면 스스로 무식한 줄 알고 잘난 체 하지 말아라- 뭐, 이 정도의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앞에서 겸허와 겸손의 중요성을 웅변으로 가르친,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냥 사람들과 만나서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어떤 식으로 대화를 했냐하면 다음 예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위의 예에서도 그 일면이 나타나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붙들고 늘어져서 계속 물어나갔다. 즉 너희는 도대체 그 말의 뜻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서 무엇을 생각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려고 하느냐? 그 결과를 이미 내다보고 있으며 그것이 너희들의 근본적인 전제들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 등등. 즉 소크라테스는 관념 덩어리를 대충 자기 위주로 꿰맞추어 놓은 사람들과는 달리 살아있는 철학을 하였던 것이다.

노자가 쓴 도덕경에는 “말이 많으면 막히고 만다”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계속 따지고 들어 길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들의 말은 대체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별로 분명하지 않은 생각에 기대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에는 말이 막히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있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던 그 사람이 소크라테스와 함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얘기를 끝내게 된다. 그만큼 대화에서 나타나는 모든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서 올바르다고 판명되는 생각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또한 사이비 학자는 많지만 훌륭한 학자가 적은 것이고, 사이비 이론도 많지만 훌륭한 이론은 적은 것이다.

즉 철학이 대화라는 극명한 증거 중의 하나를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통해서 철학을 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이 독백이 아닌 대화라는 내 설명이 옳다고 생각할 만한 또 다른 까닭이다.


간단한 서양 철학사 <2>: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그러면 도대체 경건이란 무엇이며 불경건이란 무엇이라고 자네는 주장하는 건가?

에우튀프론: 경건이란 바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와 같은 것이지요. 즉, 살인을 하건, 신전의 물건을 훔쳐내거나 혹은 이 밖의 어떠한 죄를 범하든, 어쨌든 부정을 행하는 사람을 그것이 자기 아버지이건 어머니이건, 혹은 다른 어떤 사람이건, 고소하는 것이예요. 이런 사람을 고소하지 않는 것이 불경건입니다. 불경건한 자는 그 누구이건,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인데, 이것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소크라테스: 내가 자네에게 부탁한 것은, 많은 경건한 일들의 예가 아니라, 모든 경건한 일을 경건한 일이 되게끔 하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네.

에우튀프론: 그러면, 이렇게 말하죠. 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경건이고,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불경건이예요.

소크라테스: 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사람은 경건한 것 또는 경건한 사람이며, 신이 미워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사람은 불경건한 것이요 불경건한 사람이란 말인가?

에우튀프론: 그래요.

소크라테스: 그러면 에우튀프론, (그리이스 신화에서는) 또 신들은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생각을 달리한다고 말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신들은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에 대해서 서로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되네. 그렇다면 동일한 것이 신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도 하는 것 같네그려.

에우튀프론: 그럴 것 같군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자네 대답에 따르면 경건한 것이 불경건한 것이 되기도 하고 그렇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