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길이어라.
그 끝에서 멈추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멈춤이 없고,
그래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이어라.
또한 그래서 더 많은 안식처로 통할 수 있는 길,
철학은
한없이 열린 세상이어라.


그 열린 세상으로의 길이 철학이다.

철학이 일종의 길과 같다는 말은, 철학이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활동이라고 이해하면 납득이 쉬울 것이다.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결국 어느 생각이 옳은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어떤 종류의 생각, 혹은 어떤 조건을 갖춘 생각이 옳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와 같은 철학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길을 알고자 하는 사람과 같다. 길을 아는 사람은 어딘가에 도착하지 않는다. 다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철학에 대한 이런 설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만스럽게 들릴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 삶에 대한 의미부여나 어떤 신비로운 성격을 밝혀내는 탐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운명’이나 ‘전설’과 같은 것 말이다. 아니면 여러 가지 것들에 다양한 의미들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든지. 내가 파란 옷을 입는 까닭에 대해서 어떤 ‘철학적인 이유’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이런 선입견을 조금은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면 이런 선입견을 버리게 될까?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진 선입견 중 많은 것은 버리거나 반성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 때문에 슬프거나 불쾌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역시 파란 옷이 그런 슬픔의 이유가 되곤 했다. 즉 단지 한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다닌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거나, 혹은 외모나 차림새가 별로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사소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언제나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게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살짝 큰’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나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던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평범한 모습일 뿐이다. 그건 내가 착한 척을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때로는 나 스스로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선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빨간 옷”만 입는 여자랑 결혼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나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나와 같이 눈에 띄는 차림새를 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결국에는 그런 면에서 평범하다. 그 사람은 빨간 옷을 입지도 않았고 노란 옷이나 파란 옷을 입지도 않았다.

실제로 빨간 옷만 입고 다니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정말 훌륭한 친구가 어떤 나름의 이유로 빨간 옷만 입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그 훌륭한 친구를 단지 옷 색깔 때문에 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선입견과 같은 우리의 생각들은, 아무런 반성 없이 받아들일 때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소한 이유로 좋은 친구를 잃게 된다면 아주 나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운명’과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어떤 것이 운명이라면 그것은 대략적으로 말해, 이미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는 어떤 일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홀로서기”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철학은 길이어라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서정윤의 “홀로서기”에서>
 

나도 대학 초년생 때에는 이런 시를 읽으며 내 운명 속에는 어떤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또 사실은 평범하게 그런 노력들을 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떤 것이 운명이라면 굳이 알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될 테니까. 알게 된다면 그것도 운명일 테고 그것을 잘못 안다면 그것도 운명일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에 대해 내가 운명적으로 사랑할 사람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했고 그 때문에 더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것도, 그리고는 아주 긴 시간 동안 가슴 아파 했었던 것도 말이다. 이런 생각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이렇게 우리가 가진 선입견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많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나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파란 옷이나 빨간 옷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혹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지도 않을지 모른다. 아주 평범하게 지금까지 모든 일에서 잘 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런 사람들에게는 철학이 필요 없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간단한 여행 정도는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까? 왜 여행을 하고 길을 알아야 할까?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생각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낯선 어려운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그렇다. 누구나 한번쯤은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지도를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낯선 마을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이듯이 생각의 세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이니까.
비 오는 밤에 낯선 곳에서 우산 없이 길을 헤매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산 속에서 길을 헤매어 본 적은 없는가? 산에서 길을 헤맬 때 우리는 처음엔 어디론가 곧장 나아가 본다. 그러다가 계속 걸어도 인가가 보이지 않고 숲이 우거지거나 길이 좁아지기만 할 때, 그리고 그 길로 나아가면 만나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시냇물,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듯이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결국에는 길을 멈추고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철학이 필요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그런 경우를 위해 미리 지도를 준비해 두거나 낯선 곳의 길을 알아 두어야 하는 것처럼 철학에 대한 공부도 미리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선입견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소중한 것을 잃을지 모른다.

 

지금 가랑비는 내리고
당신의 고별(告別)같이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며
나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끊어진 길에서 나는 차마 돌아서진 못하고
이젠 산꼭대기로 꼭대기로,
비가 가장 무성하게 모여드는 그 곳으로 가서
그 속에 나를 빠뜨리는 수밖에,
어디로 가겠습니까. <김세웅의 “길”에서>

 


여러분들이 자신을 빠뜨릴 산꼭대기는 어디일까? 내가 권하는 곳은 우리 생각의 산, 그 꼭대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