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루 살로메 만남 그리고 이별
1881년에는 [서광(曙光)]이 출판되었고, 그해 8월에는 처음으로 ‘영원회귀’ 사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계속되는 유랑생활 속에서 문득 한 이름모를 호숫가의 큰 바위에서 그는 ‘짜라투스트라’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철학에 있어 가장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적인 결정체는 고독과 방랑생활 속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그의 사상적인 내면 속에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온 그의 혼돈이 잠식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영원회귀 사상을 깨우친 다음해인 1882년에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루 살로메’를 만나게 된 것이다.
루 살로메는 독일계 러시아장군의 딸로 국적은 러시아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경험한 불행한 연애경험과 지적인 탐구심으로 인해서 독일로 오게 되었고, 여러 정치적 망명자들과 교류를 쌓던 니체의 친구 매르비더가 운영하는 살롱에 자주 들르게 되어 결국 니체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니체가 처음 루 살로메에게 가졌던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루 살로메는 니체를 만난 소감을 기록하였다. 정확한 기록을 필자가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는 이상하리 만치 조용한 성격이었다. 마치 주위와 다른 공기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였다. 그것은 마치 뭐랄까…… 그렇다. 그것은 고독이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고독한 존재처럼 마치 모든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한 공간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사람이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러한 내면적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은 그의 손이였다. 그의 손은 전혀 노동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가녀린 학자의 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하게 두 손을 감싸쥐면서 마치 그 어떤 누구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필자가 당시에 읽은 기억으로는 약 1페이지 분량의 긴 글이였는데 필자의 뇌리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부분들만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정확한 자료를 입수하지 못한 점 사과를 드린다.
니체는 루 살로메(이하 ‘루’로 표기함)와 그리고 자신의 제자 파울루 레이(이하 ‘레이’로 표기함)와 함께 동거 생활에 들어간다. 레이는 시칠리아에서 니체와 같이 동거를 계속해 오다가 잠시 헤여졌다가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레이도 이국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이 이지적(理智的)인 여성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된다. 이 루 살로메라는 여성은 니체 이 외에도 릴케와도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으며 심지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마저도 교류를 가지게 된다. 이 루 살로메라는 여성은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과 매우 활발한 사교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에게 먼저 청혼을 신청한 것은 레이였다. 그러나 보기좋게 거절당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니체도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두 사람다 만난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혼을 한 것이였다. 레이는 어떠한 인물인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니체는 연예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무능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1876년 쥬네브라는 곳에서 만난 ‘마틸다’라는 여성을 만난 바로 다음날 편지로 청혼을 해서 답장도 받지 못한 경험까지 있는 니체였다. 그는 너무 고독했던 나머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어쨋든 간에 니체는 포기하지 않고 루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1882년 5월 세 사람은 스위스의 룩첸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떠난 도중에 몬테 사크로라는 산에서 루와 단 둘이 있게 된 니체는 산책을 신청한다. 둘이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루는 후에 “몬테 사크로에서 니체에게 키스했는지 어땠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기억나지 않아요.”라는 얄미운 대답을 남겼을 뿐이였다. 그리고 룩첸에서 사진관을 발견한 니체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는 권유로 니체와 레이가 차를 끌고 그것을 루가 채찍질하는 유명한 사진 까지 남겼다. 이러한 악취미 까지 서슴치 않았던 니체에게 있어서 생각해 볼 때, 루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각관계도 막을 내리게 되어간다.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니체의 여동생인 엘리자베스가 끼어든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이 동거생활을 부도덕한 행위라면서 비난하기 시작했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루를 철저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니체는 레이에게 경쟁심을 느낀 나머지 그의 성적을 깍아내리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이 루에게 알려지자 루는 레이와 함께 니체를 떠나 베를린에서 새로운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니체는 극렬한 외로움과 불쾌함 그리고 괴로움에 고통받아야 했다. 레이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등 말썽을 부리는 동시에 어머니와 동생에게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결렬(決裂)의 편지까지 쓰게된 것은 그의 괴로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예였다. 니체는 그가 말한대로 ‘몰락’ 해버린 것이였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가 자주 쓰는 표현.)
그러나 그렇게 계속 고통스러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고독은 그에게 있어 매우 익숙한 존재였고, 그 또한 역시 자신의 고독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고독은 철학자에게 있어서 냉엄한 현실을 바로 보여주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것인 것이다. 그는 곧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리고 1883년 2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제1부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같은 2월 바그너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바그너의 죽음은 니체에게 있어서 충격을 가져다 주었으나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바그너가 죽었다고는 하나 니체는 그의 남겨진 사상과 대결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였다.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바그너를 적대시 했다. 그의 불행한 인생은 용서의 미덕까지 잊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철학적인 문제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이것은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이데거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바그너는 정신적인 흥분으로 모든 것을 섞어버리는 마술사처럼 모든 것이 연기(演技)일 수 밖에는 없는 자로서 디오니소스와 아폴로가 분열한 후의 예술의 운명을 체현하는 존재였으며, 그에 반해 니체는 자신의 사상이 일종의 가면극 (假面劇)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식과 생의 융합을 아름다움의 이름으로 추구해 디오니소스의 세계의 재래(再來)를 계몽주의(啓蒙主義)이후의 지적반성을 방치하는 일 없이 추구한 존재였다. 이 들 둘에게 있어서 화해(和解)란 불가능한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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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