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의 서술에 앞서 먼저 독자가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필자가 서술하는 내용은 순수이성비판의 전반적 내용에 관한 맛보기이며 둘째, 언어적 사용에 있어 과오를 줄이기 위해 필자가 사용한 참고문헌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 서술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이루어지는 바, 필자가 순수이성비판에 대해서 서술한다는 것은 필자의 순수이성비판에 관한 이해능력이 필자의 판단에 의해 봤을 때 충분하다고 인지되는 바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필자의 글에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그에 관한 이유와 내용을 상세히 밝혀주길 바라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제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사하도록 해보자.
1. 순수이성비판의 목적
1) 순수이성비판의 단어적 이해
우선 순수이성비판이 무엇을 목적하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비판이라는 독일어 [Kritik]는 단순히 비판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분석, 조사, 검사라는 의미를 함축한 의미로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판단된다. 결국 순수이성비판은 '순수한 의미로서의 이성비판' 으로서 이해하기 보다는 '순수한 의미로서의 이성분석' 으로서 이해하는 편이 보다 이해에 있어서 쉬울 듯 하다.
2) 순수이성비판의 배경적 상황
형이상학을 인정하고 있는 합리론, 그리고 경험적 관찰만을 인정하는 경험론, 이 사이에서 당시의 철학은 갈등하고 있었다.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된 합리론은 데카르트로 내려오면서 극에 달하는 발전상황을 보이게 되는데 합리론이 요구하는 바는 '감각경험만으로 결코 인식은 성립되지 않는다'였다. 인식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오성의 필연적인 수행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형이상학은 가능하다라는 것이 합리론의 입장이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은 이를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대립되는 경험론은 스토아학파를 전통으로 형이상학을 불가능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경헙론은 합리론의 우세 속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가 자연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상황을 역전시키고 만다. 당시 자연과학의 경험적이고 실험적인 특성이 합리론의 비 과학작 이론을 능가하게된 계기가 된 것이다.
경험론은 감각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인식은 오성(悟性)속에서도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라는 존 로크의 말처럼 형이상학이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합리론의 형이상학적 주장은 경험을 뛰어넘은 형이상학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며 경험론의 실제론 적 주장은 경험을 뛰어넘은 세계는 인지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형이상학적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둘의 양보할 수 없는 관계를 화해시키고 만다.
3)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가리켜 흔히 지징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우리는 왜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단어가 순수이성비판에 쓰이게 되었는 가에 대해서 먼저 알아 볼 필요성이 있다.
먼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코페르니쿠스는 그 유명한 '지동설'을 주장한 15세기의 폴란드의 천문학자이다. 당시 천문학계는 종교적 영향에 굴복하여 '천동설'을 주장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내어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천동설이라고 하는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 다른 별과 태양과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주장이었고, 지동설은 태양이 다른 별의 중심이 되어 다른 별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천동설의 입장은 당시의 종교적 입장에 의해서 이해된 천문학설이기에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동설의 입장은 지구에서 관측되는 금성의 크기 변화나 다른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었기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동설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천체 관측자가 '지구에서 부터 우주를 관측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부터 지구를 관측하여 이해하는 것'의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따라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 만이 성립되었던 천동설은 한계에 부딪쳤지만 오히려 우주가 중심이 되고 그 우주 속에서 지구를 관찰하였던 지동설은 그 한계를 극복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발견해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요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찰자의 시각 전환이다.
당시의 철학, 그러니까 경험론이든 합리론이든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목표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식으로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해야 하는가?' 였다. 그러나 칸트는 그 문제에 앞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인식은 무엇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어떻게 해서 우리의 인식은 성립되는가?'
칸트는 당황하고 있던 당시의 철학에서 문제를 역으로 생각하여 '이성이 사물을 인지하는 방법에 대해서'연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역으로서 '사물을 통한 이성의 통찰'을 연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명백해 졌다.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은 '이성의 자기 인식'이다.
'이성의 자기 인식', 이것을 명백히 하여 이성 스스로가 형이상학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에 관해서 이성 스스로가 해답을 도출해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의 목적인 것이다.
2. 오성과 이성의 이해 (순수이성비판내의 단어이해)
사실 칸트 이전에도 오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엄밀히 이성과 구분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내용에 순수 이성에 관해서 분석하는 것이므로 엄밀히 이성과 오성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서술하는 오성과 이성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순수의미에서의 오성과 이성임을 인지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오성 : 경험을 분석하여 경험의 재료를 분할하여 사고하는 인식범주이다. 오성활동 그 자체는 경험 속성을 분석하여 개념에 대한 한계를 설정할 뿐 사고의 확장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성 : 정신이 혹은 인식이 자기 스스로의 발전과 확장을 위해 개념과 개념의 종합을 도출 결과적으로 인지된 사실에 관해 전체도식을 수행하는 인식 범주. 즉 이성은 '이러저러'한 개념의 종합을 수행하는 인식 범주이다.
필자의 오성과 이성의 구분은 어느 정도의 단어 사용에 미흡함이 발견됨을 필자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이에 관해서 엄밀히 구분할 능력이 없는 것과 동시에 오성과 이성의 구분이 결코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는 바이지만 오성과 이성의 구분은 매우 애매하다. 이것은 언어적 정의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인식을 완성시키기 위해 하나의 어떠한 개념을 언어라는 표상으로 부터 빌려온다. 즉 언어라고 하는 것은 인식을 완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분석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도구적 사용의 의미를 지니는 언어적 내용에 우리는 깊은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에 따른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바이며 (많은 지식인들은 단순한 언어 사용에 목숨을 걸어가면서 언어내용의 정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혹 이성과 오성 이러한 단어적 사용에 따른 잘못된 인식이 본문을 읽으면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오성과 이성 이것 이외에 선험적 인식, 물자체, 등등에 관련한 이해하기 매우 곤란한 단어가 등장하고는 한다. 하지만 지금 이것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단순히 언어적 정의가 내려진다고 해서 이해될 속성의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차 후에 글을 논의하면서 언급된 단어에 대해서 정의내리고자 한다.
3. 순수이성비판 서론 해제
이제 부터 순수이성비판의 서론을 본격적으로 논하기로 하자. 필자의 순수이성비판의 서론 해제는 어디까지나 순수이성비판의 이해를 돕기위한 해제일 뿐 비판이나 문제점 도출 전제 내용의 총괄은 아님을 먼저 인지해주길 바란다.
1) 대상의 인식
- 이성은 자연에 대해 단지 이성 자신이 이전에 자연 속에 집어넣어 생각한 것을 인식 할 수 있을 뿐이다. (랄프 루드비히 '쉽게 읽는 칸트' p.40) -
이성이라는 인식 주체가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성 스스로가 자신에게 어떠한 '합법칙성'을 사실을 인지하기 이전에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고자 한다.
만류인력의 발견자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을 깨달았다는 혹은 인식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기로 한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인지했고, 그것을 이성적 사고의 종합을 통하여 만류인력을 발견하였다. 이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만류인력의 인식은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명백한 사실은 따로 놔두고, 우리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어떻게 만류인력이 탄생하였는가에 대한 탐구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자연현상이 뉴턴의 이성에 인지되어 만류인력이 발견된 것은 당연한 사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이성에 이러한 단순한 자연현상이 인지되었다면 만류인력이 발견되었을까?
만일 사과장수가 그러한 자연현상을 인지했다고 하자. 그 사과장수의 이성에 인지된 자연현상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지 않을까?
'저 사과를 팔면 얼마의 이윤이 남을까?'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자연현상이라도 받아들이는 이성에 의해서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는 사실.
이것은 맨 처음 언급되었던 '이성은 자연에 대해 단지 이성 자신이 이전에 자연 속에 집어넣어 생각한 것을 인식 할 수 있을 뿐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자연현상을 인지하는 이성은 자연현상 속에 숨어있는 어떠한 진실에 관해서 알아낼려고 하는 노력을 언제나 기울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이 그 자연현상을 인지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부여했던 어떠한 '합 법칙성'에 근거한 사실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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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