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이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순수이성비판 中
II. 우리는 어떤 선천적 인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상식 자체에도 그런 것이 없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순수 인식과 경험적 인식을 구별할 수 있는 징표를 문제삼고자 한다. 경험은 물론 어떤 사물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만, 그것이 그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첫째, 하나의 명제가 동시에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선천적 판단이다. 그 밖에 그 명제 자체가 다시금 필연적 명제로서 타당하는 것 외에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출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명제는 절대적으로 선천적인 것이다. 둘째, 경험은 결코 그것의 판단에 찬된 혹은 엄밀한 보편성을 제공하지 못고, 단지 (귀납을 통하여) 가정된, 즉 비교적인 보편성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지각해 온 범위 내에서는 이 규칙이나 혹은 저 규칙에 예외가 없었다고 원래 말해야 한다. 따라서 만일 어떤 판단이 엄밀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즉 어떠한 예외도 가능하지 않다고 인정되면 그것은 경험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선천적인 타당성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경험적 보편성은 대다수의 경우 타당한 것을 모든 경우에 타당한 것으로 (다시 말해서) 타당성의 정도를 마음대로 끌어올려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모든 물체는 무게를 지닌다."라는 명제에 있어서와 같은 경우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의 판단이 본질적으로 엄밀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 이런 보편성은 판단의 특수한 인식의 원천, 즉 선천적 인식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성과 엄밀한 보편성은 선천적 인식의 확실한 특징이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이 두 특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판단에서의 우연성보다는 판단의 경험적 제한성을 지시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 한결 더 쉬울 수 있으며, 또는 판단의 필연성보다는 우리가 판단에 부여하는 무제한적인 보편성을 지시하는 것이 우리가 납득하기에 더 쉬운 경우가 많으므로, 지금 까지 말한 두 기준은 각각 하나만으로도 확실한 것이지만 서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필연적이며 또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즉 선천적으로 순수한 판단이 실제로 인간의 인식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쉽게 지적될 수 있다. 학문에서 그 실례를 구한다면 우리는 수학의 모든 명제를 들여다보기만 하면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실례를 상식적인 데서 찾는다면 "모든 변화는 원인을 가져야만 한다" 라는 명제가 적당할 것이다. 이 경우에 원인이란 개념 그 자체가 벌써 분명하게 결과와 결합하는 필연성의 개념과 규칙의 엄밀한 보편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칸트의 설명을 좀더 쉽게 풀이해 보도록 하자.
만일 "단풍은 붉게 물든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명제를 두고 우리는 어떠한 의의도 제기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단풍이 붉게 물든다. 라는 일종의 공인된 인식을 경험을 통해서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편성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단풍은 붉게 물든다."라는 명제가 제시된다고 해보자, 만일에 정말로 모든 단풍이 붉게 물든다 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모든 단풍이 붉게 물들지는 않는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보편성이 아닌 경험적 보편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풍이 불게 물든다. 라는 명제는 보편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 인지된 보편성에 따른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보편적 명제는 언제나 경험적 보편성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적 보편성이 아닌 순수한 의미의 보편성 엄밀한 보편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칸트가 말했듯이 "모든 변화는 원인을 가져야만 한다." 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모든 변화' 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사실을 제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이 명제가 틀렸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험된 사실은 아니지만 '변화 속에는 변화를 촉발시키는 원인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엄밀한 보편성과 경험적 보편성을 구분하기 위해서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의 구별을 요구한다. |
|
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