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고의 전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인식이 대상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상에 관한 무엇인가를 개념을 통해 선천적으로 규정하고 그 개념을 통해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인식이 대상에 의해 규정된다는 전제를 무너뜨렸다.
그러므로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의해 규정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형이상학의 여러가지 과제가 좀더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러한 시도는 한 번 해봄직 하다.
중략......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최초의 생각과도 같다. 그는 모든 천체가 관찰자의 주위를 운행한다고 가정했을 때 천체 운동의 설명이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관찰자가 돌고 반면에 별들을 고정시키면 그 설명이 전 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시도하였다. 형이상학에서도 대상의 직관에 이와 유사한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순수이성비판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각성전의 인식) 대상이 그러했기 때문에 인식이 그에 따라 순응하여야 한다는 전제아래 행한 인식체계 였으나 인식이 보다 더 심원한 세계로 가려고 했을 때, 이미 전제된 개념 때문에 인식은 보다 더 완성될 수 없는 처지에 놓여버리고 말거나 아니면 전제자체가 무너지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대상이 인식의 범주에 따른다는 정 반대의 과정을 선택한다면 방금 서술한 혼란에서 인식 혹은 이성은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보다 쉽게 설명하도록 하자. 인간의 정신은 지금까지 그러니까 이러한 사고적 전환을 거치기 전의 상태는 언제나 인식이 (혹은 이성)이 대상에 따른 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은 대상을 탐구하는데 그쳤을 뿐, 이성 스스로가 보다 더 발전된 인식을 도출하기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모순점을 낳고 마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반대로 생각하여 대상이 인식의 요구에 의하여 따른다고 할 경우 이성 자신은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인식이 대상에 따르는 것이 아닌 대상이 인식에 따르는 사고의 전환, 그것을 통해 이성 자신이 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 혹은 과제 , 순수이성비판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뉴턴과 사과장수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두 사람 모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일련의 인식을 도출해 내었으나 다른 인식과정으로 인하여 다른 인식이 도출되었다. 만일 그 두 가지의 인식 중 하나가 진리이어야 한다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 되는 것이다. 칸트 이전의 철학은 이렇게 둘 중 하나의 진리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끝없이 고뇌해왔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 그 두 가지의 사실이 진리인가 거짓인가의 문제를 떠나서 그러한 인식이 도출되기 위해서 이성은 무엇을 하였는가? 즉 이성은 그러한 인식 (그러니까 쌍방의 모든 인식)을 어떻게 도출하였는가?
3) 인식의 구별 - 순수인식과 경험적 인식 -
순수이성비판 중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는 것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인식 능력이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무엇에 의해서 그 활동을 시작하도록 깨우쳐지겠는가? 대상은 우리의 감관을 자극하여 한편으로는 스스로 표상을 만들고, 분리시켜서 감성적 인식이라는 원재료를 대상의 인식, 즉 경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으로 볼 때 (시간적 흐름에 따른 인식의 과정을 볼 때) 어떠한 인식도 경험에 앞서지 못하며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식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그 전부가 경험으로부터 발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경험인식이라는 것도 우리가 인상을 통해 받아들인 것과 (감성적 인상에 의해 단지 야기된)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우리의 고유한 인식 능력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식 능력의 부가물을 인식의 원소재와 구별하는 일은 오랜 훈련에 의해 이 부가물에 주의하게 되고 그것을 분리하는 데 숙달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경험으로 부터 독립되고 있고, 또한 감관의 모든 인상으로부터 독립된 그러한 인식이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는 더 깊은 연구를 요하며, 한 번 보고 당장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선천적 인식'이라 부르고, 이를 '경험적 인식'과 구별한다. 경험적 인식이란 그 원천이 후천적 즉 경험 속에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인식 할 때 그러니까 인식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우리의 정신적 범주 내로부
터 촉발되어 지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훈련'으로부터 기인할 수 있기에 쉽게 발견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훈련'이 전제된 상황 아래 인식을 관찰할 때, 인식이 성립되는 과정 속에서 외부러부터 오는 경험을 제외하고 남은 순수 인식상태가 있다. 바로 그것이 '선천적 인식' 이다.
그러나 이 선천적 인식은 시간적으로 앞서는 인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시간적으로 앞 설수 없는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험은 시간계에 관계하여 존재하며 그 경험에 앞선 인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은 시간적으로 앞설 수 없다. 그런데 왜 칸트는 선천적 'a priori'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인식이 완전히 순수오성에 의해서 해체되었을 때, 인식은 감성적 직관과 경험적 연결사고로 구분된다. 경험적 연결사고라는 것은 직관된 인식이 이성에게 인지되기 위해서 '이전에' 인지된 사실을 연결시키는 사고를 말한다. - 경험적 연결사고라는 말은 순수이성비판에 없다.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
만일 '필자'인 내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저것은 만류인력에 의해서 떨어진 사과이다.' 라고 인지했다고 하자. 나는 사과가 떨어지는 사실을 감성적 직관을 통해서 얻어내었고, 그 사실에 부가해서 만류인력의 법칙을 연계시켰다. 하지만 이 만류인력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낸 사실일 따름이지 내가 사과자체만으로 만류인력의 법칙을 연결시켰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류인력의 법칙을 사고했다는 것은 경험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분명히 필자의 인식 속에서 사과의 낙하와 만류인력의 법칙은 다른 경험적 개념 속에서 존재하는 거스로 순수한 의미에서 연관성은 전혀 발견될 수 없으나, 사과의 낙화와 만류인력의 법칙을 연결시키게 한 '이성의 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이 이성의 작용 이것이 순수인식 혹은 선천적 인식이다.
모든 경험으로 부터 독립된, 그러니까 인식이 성립되기 위해서 경험을 끌어들이지만 그 이전에 경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촉발되는 인식 혹은 사고, 그것이 선천적 인식 혹은 순수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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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