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그너와의 결별(決別)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가고 있을 무렵, 바그너와의 관계도 그의 건강처럼 악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시발점은 바이로이트에서 였다. 그곳에서 바그너는 자신의 역작인 [니벨룽겐의 반지]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로도 쓰여졌었다. -필자-)를 상영하게 된다. 그 작품을 보기 위해서 독일황제인 빌헬름1세도 특별열차를 타고 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보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세간의 주목을 끄는 이 곳에서 니체는 그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무언가를 직감했다. 바그너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바그너를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 개혁자로서 인정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그를 존경하고 좋아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는 그러한 개혁자가 아닌 상류계급사회의 일원으로서 부와 명예의 매력에 취한 사업가에 지나지 않았다. 니체는 격분하는 자신을 억눌렀다. 그 때문에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눈과 귀가 멀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1876년의 일이었다.
이러한 그의 불행 속에서 그는 그의 친구들로 부터 구원을 얻을려고 하였다. 한 명은 ‘파울루 레이’ 라고 하는 유대인의 젊은 사상가로서 [도덕적 감정의 기원]이라고 하는 저서를 남겨 니체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매르비더 폴 마이젠부크’라고 하는 니체보다 나이가 위인 귀족출신의 여성해방운동가였다. 그녀는 제법 큰 살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후에 ‘루 살로메’라고 하는 여성을 니체에게 소개시켜주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은 멜비더의 소개로 지중해가 보이는 소랜토의 한 여관에서 그해 겨울을 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그들이 체재(滯在)하고 있던 여관 근처의 다른 호텔에서 바그너가 묶고 있었다. 니체는 우연히 바그너와 만나게 되어 마지막 교우를 가지게 된다. 니체는 당시 바그너에게 단 한마디도 건내지 않았다.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 책은 그의 역사적 시각과 자연과학에 대한 시각에 대한 총체적인 관념이 실려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내려온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시점에서 역사와 자연과학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때 부터 형이상학은 우리의 인식적 한계를 넘어서 초인식적 진리를 구명하려고 노력을 기울여왔고 마치 그것이 실현되는 듯한 진리의 모습마저 연출하려고 애를 썼으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진정한 세계는 그러한 초인식적 진리와는 전혀 무관하게 진행되어져 왔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였다. 당시 까지 그러니까 형이상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이 독일에서 큰 영향을 끼칠 때 까지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진리라는 것이 시간적 무한성을 띄고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헤겔의 영향이 가장 컸다.) 그러나 역사란 기원이 있다면 발생이 존재할 것이고, 발생이 존재한다면 종말도 존재할 것이므로 따라서 역사적 무한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라고 하며 역사적인 무한성에 대해서 니체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유란 지금 현존해가는 인간들에게 주어져 있는 생애의 권리라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역사적 무한성을 인정하는 진리란 그에게 있어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역사와 자연과학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에게 다루어 졌다. 그는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수학은 김나지움시절 낙제를 당할 정도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한 그에게 있어서 자연과학이란 그 실제적인 문제의 탐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사상적인 내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차용된 것이었다.
즉 역사와 자연과학은 우리가 이 세계로 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 탐구되어져야할 지식의 도구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과학과 역사학이 인간의 목적이 아닌 도구로서 성취되어야 함을 역설해나갔다. 그것은 비극의 탄생에서도 어느 정도 그 색채가 묻어나왔던 것이다. 숭고한 아폴론적인 정신의 탐구를 통해서 우리는 보다 높은 단계로의 자유로 극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적 사상의 완성에 있어서 절정을 앞두게 된다. 그의 사상의 내용이 서서히 명확화 되어 가기 시작한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라는 책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79년에2판 80년에3판까지 출판되었으나 판매는 잘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건강은 더더욱 악화되어 1879년6월에 와서는 바젤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게 된다. 그해 겨울은 니체에게 있어서 생의 최악의 겨울이 되고야 말았다.
1880년에와서는 3월과 6월을 베니스에서 보내고, 11월이후에는 제노바에서 보내는 등 유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나이 40이 넘어서 까지 정착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고독과 타국을 유랑하는 방황 속에서 헤매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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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추억